“위고비 맞더니 술 안 마신다?”…증류주 32조원어치 쌓였다

황수영 기자ghkdtndud119@donga.com2026-01-19 16:16:00

위스키 판매점. 위스키·코냑·데킬라 등 고가 증류주 수요가 급감하면서 글로벌 주류업계가 최악의 침체에 직면했다. GettyImages
1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는 재무보고서를 기준으로, 디아지오·페르노리카·캄파리·브라운포맨·레미코앵트로 등 상장 주류업체 5곳이 보유한 숙성 중인 증류주 재고는 220억 달러(약 32조 원)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최근 10여 년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프랑스 코냑 제조사 레미의 숙성 재고는 18억 유로로, 연간 매출의 거의 두 배에 달하며 시가총액에 근접한 규모다. 또한 프랑스 코냑 산업협회(BNIC)에 따르면 2025년 2월 코냑 수출은 전년 대비 72% 급감했다.
팬데믹 당시 미국에서 한 병에 45달러까지 올랐던 LVMH의 헤네시 코냑은 이후 35달러 수준까지 내려갔다.
● ‘위고비 효과’부터 경기 둔화까지…급감 배경에는?
이번 침체를 두고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단기적인 경기 둔화의 영향인지, 아니면 보다 구조적인 사회 변화의 결과인지를 놓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음주량 감소가 위고비·오젬픽 등 체중 감량 약물의 확산과 전반적인 건강·웰빙 중시 트렌드와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다수의 학술 연구에서도 위고비 등 체중 감량 사용자의 경우 식욕뿐 아니라 음주량이 함께 감소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공급 과잉에 따른 재고 누적이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음주 수요 증가를 전제로 업체들이 생산량을 대폭 확대했지만, 팬데믹 이후 소비가 급격히 식으면서 늘어난 생산 물량이 그대로 재고로 남게 됐다는 설명이다.
● 생산시설 멈추고 가격 인하 압박 커져
기업들은 생산시설 가동을 잇달아 중단하고 있다. 일본 주류업체 산토리는 미국 켄터키에 위치한 짐빔 버번 증류소를 최소 1년간 폐쇄했으며, 디아지오도 텍사스와 테네시의 위스키 생산을 올여름까지 중단하기로 했다.
FT는 주류업체들의 부채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향후 가격 경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업계가 1980년대 이른바 ‘위스키 호수(whisky loch)’ 당시처럼 대규모 할인 경쟁에 나서지는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생산과 보관에 투입된 막대한 투자금이 기업들의 재무구조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드워드 먼디 투자 은행 제프리스 애널리스트는 숙성 증류주 생산 중단에 대해 “침체기에 재고를 줄이면, 5년 혹은 10년 뒤 수요가 되살아났을 때 공급 부족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최근 5년간 증류주 시장의 급등과 급락은 거의 예측이 불가능했다”고 덧붙였다. 황수영 기자 ghkdtndud119@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