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찢기’ 챌린지까지…핀란드 여당 의원들 인종차별 옹호 논란

김영호 기자2025-12-15 16: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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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핀란드가 인종차별로 자격을 박탈당하자 여당 의원들이 항의하며 단체로 ‘눈 찢기’ 사진을 올려 파문이다. 왼쪽부터 핀란드 국회의원 세바스티안 튕퀴넨(Sebastian Tynkkynen), 유호 에롤라(Juho Eerola), 카이사 가레데브(Kaisa Garedew). 페이스북·엑스 갈무리

인종차별로 미스 핀란드 우승 자격이 박탈된 사건을 두고 핀란드 정치권이 오히려 차별을 옹호하는 듯한 행동에 나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반이민·우파 성향의 연립 여당 핀란드인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동양인을 조롱하는 ‘눈 찢기’ 동작을 보란 듯이 따라 하며 공개적으로 옹호에 나섰기 때문이다.

12일(현지 시간) 핀란드 언론 일탈레티(Iltalehti)에 따르면, 핀인당 유호 에롤라 핀란드 의원은 자신의 SNS 프로필을 ‘눈 찢기’ 사진으로 바꾼 것에 대해 “법치주의 토론을 하다 두통이 와 관자놀이를 눌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는 앞서 미스 핀란드 우승자가 문제의 행동을 두고 “눈 통증 때문에 마사지를 한 것”이라고 변명한 표현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 ‘중국인과 식사 중’ 게시물…우승 자격 즉각 박탈


2025 미스 핀란드 우승자 사라 자프체(Sarah Dzafce)의 모습. 그는 자신의 SNS에 눈을 양쪽으로 찢는 사진(오른쪽)을 올리며 “심한 두통 때문에 관자놀이를 문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스타그램 갈무리

논란의 발단은 ‘2025 미스 핀란드’ 우승자 사라 자프체(22)가 지난달 말 식당에서 양손으로 눈꼬리를 찢어 올린 채 “중국인과 식사 중”이라는 설명과 함께 사진을 게시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게시물은 동양인을 희화화한 인종차별적 표현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미스 핀란드 주최 측은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용납하지 않는다”며 즉각 우승 자격을 박탈했다.

개인의 일탈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사안은 이후 정치권 개입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핀인당 소속 의원들이 조직적으로 자프체를 감싸고 나서며 상황은 국제적 망신거리로 번졌다.

● 테러 추모 문구까지 악용한 ‘피해자 코스프레’


자프체를 옹호하고 나선 핀란드 국회의원 유호 에롤라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유호 에롤라 의원은 SNS 프로필 사진을 ‘눈 찢기’ 동작으로 바꾸고, 사진 설명에 “나는 사라다(Je suis Sarah)”라는 문구를 덧붙였다. 이는 2015년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테러 당시 희생자를 추모하며 사용된 “나는 샤를리다”를 차용한 표현으로, 인종차별 가해자를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는 피해자로 포장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같은 핀인당 소속 세바스티안 튕퀴넨(Sebastian Tynkkynen), 카이사 가레데브(Kaisa Garedew)의원도 유사한 사진을 SNS에 잇달아 올리며 논란에 가세했다. 

당 지도부는 한술 더 떠 이를 ‘정치적 올바름(PC)’에 대한 저항이라고 주장했다. 요아킴 비겔리우스 부대표는 “미스 핀란드 자격 박탈은 병적이고 무자비한 마녀사냥”이라며 “친구들끼리 장난 좀 쳤다고 중국 혐오자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유호 에롤라 또한 “인종차별과 전혀 무관하다. 별 일도 아닌데 괜히 크게 키우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 사태를 진보 진영의 도덕적 강박 탓이라고 주장했다.

● “무책임하고 유치”…핀란드 내부서도 비판 확산

인종차별 동작을 자신의 SNS에 공개한 핀란드 국회의원 세바스티안 튕퀴넨(Sebastian Tynkkynen·왼쪽)과 카이사 가레데브(Kaisa Garedew·오른쪽). 페이스북 갈무리

그러나 핀란드 내부에서는 정치인들의 행동을 두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안데르스 아들러크로이츠 교육장관은 “무책임하고 유치하며 어리석다. 명백히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행동”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동핀란드대 교수 투이야 사레스마도 “권력자가 약자를 조롱하는 명백한 ‘타자화’이자 인종차별”이라며 “과거에 용인됐던 농담이라도 더 이상은 허용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인권 선진국’으로 평가받던 핀란드에서 이같은 논란이 일어난 만큼, 이번 사건으로 유럽 정치권 내 인종 감수성과 책임 의식이 의심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