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정상에 두고 홀로 하산…6시간 방치돼 동사

최재호 기자2025-12-07 00:15:00
공유하기 닫기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4807m).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DB

오스트리아 최고봉 그로스글로크너(해발 3798m)에서 여성 등반자가 탈진과 저체온증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는데도 남성이 홀로 하산해 약 6시간 넘게 방치했고, 결국 여성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은 숙련된 등반가였던 남성이 고지대 경험이 부족한 여자친구를 무리하게 데리고 오른 점을 문제 삼고 있다.

● 정상 50m 앞두고 탈진…여성 홀로 남겨둔 채 하산

4일(현지시간) 더선 등 외신에 따르면 사고는 지난 1월 발생했다. 남성과 여자친구는 그로스글로크너 정상을 약 50m 앞둔 지점에서 여성이 탈진과 저체온증, 방향 감각 상실 증세로 더 이상 이동하지 못하면서 조난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동행하던 남성은 여성을 산 위에 그대로 둔 채 ‘혼자 내려가 도움을 요청하겠다’며 하산을 택했다.

여성은 영하 20도 안팎의 혹한 속에서 6시간 30분 가까이 홀로 남겨졌고, 결국 동사한 채 발견됐다. 당시 풍속은 시속 74㎞, 기온은 영하 8도로 기록됐다.

● 비상 장비 없이 무리한 등반…경찰 연락도 ‘무음’

현지 조사 결과 이들은 출발이 예정보다 2시간 늦어졌음에도 무리하게 등반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지대 경험이 부족한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은 일정이었음에도 비상 장비조차 갖추지 않았다.

또한 두 사람이 조난에 빠진 시각은 전날 오후 8시 50분경이었지만, 남성은 인근을 수색하던 경찰 헬기의 구조 신호에도 대응하지 않았다. 경찰의 반복적인 연락 역시 남성이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해두어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남성이 실제 구조 요청을 한 시점은 다음날 오전 3시 30분. 하지만 강풍으로 헬기 출동이 지연됐고, 오전 10시경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여성은 이미 숨져 있었다.

● 검찰 “숙련된 등반가의 책임 소홀”…변호인 “비극적 사고”

검찰은 “숙련된 산악인인 남성이 먼저 등반 일정을 계획했다면, 동행자의 안전에 훨씬 높은 책임감을 가졌어야 한다”며 “기후와 지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한 등반을 강행한 점을 중대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남성 측 변호인은 “이는 고의가 아닌 비극적인 사고”라며 “의뢰인은 결과에 깊은 유감을 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성에 대한 재판은 오는 2월 19일 인스브루크 지방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