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톤이 꼽은 2026 올해의 색은 “색이 없다”

김영호 기자2025-12-06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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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 전문기업 팬톤이 2026년 색상으로 무채색 계열의 ‘클라우드 댄서’(흰색)를 선정하며 혹평과 논란에 휩싸였다. 팬톤은 ‘새로운 시작과 회복’을 강조했으나, 외신은 “치실 색깔 같다”, “정치적으로 방어적인 선택”이라며 비판했다. 팬톤 제공

26년째 ‘올해의 색’을 발표해 온 색채 전문 기업 팬톤(Pantone)이 2026년을 대표할 색상으로 무채색의 ‘흰색’을 지목했다. 이를 두고 혹평과 찬사가 오가는 가운데, 해외 주요 외신은 “지나치게 방어적인 선택이었다”고 지적했다.

5일(현지 시간) 팬톤은 2026년 올해의 색으로 흰색 계열의 ‘클라우드 댄서(Cloud Dancer)’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색은 구름을 연상시키는 미색 계열의 흰색으로, “휴식과 탈피”를 강조한 색이라는 설명이다.

팬톤 측이 강조한 의미는 현대 사회의 과부화와 소음으로부터의 탈피였다. 팬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 그저 존재하는 것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할 때”라며 “(클라우드 댄서는)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빈 캔버스와 같은 색”고 설명했다.

● “치실 색깔 같다“…쏟아지는 혹평에 정치적 논란까지

팬톤이 공개한 2026년 올해의 색 ‘클라우드 댄서’의 모습. 팬톤 제공

그러나 팬톤이 내세운 ‘치유’와 ‘회복’이라는 메시지와 달리, 대중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주요 외신은 이번 선정을 두고 정치적 의도가 느껴진다거나 지루한 색이라는 평가를 내놓으며 논쟁에 불을 지폈다.

가장 주된 비판은 “색채 자체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NYT의 패션 비평가 칼리 홀터만은 이 색을 두고 “치즈나 치실, 혹은 죽을 떠올리게 한다”며 “비판을 피하기 위해 지나치게 방어적인 선택을 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인 해석도 나온다. 최근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이나 소수자 포용(DEI) 문제가 민감한 이슈로 떠오른 시점에 하필 ‘백인’을 연상시키는 흰색을 내세운 것이 적절하냐는 비판이다.

NYT는 “최근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흰색’은 평온함보다는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고 짚었다. 겉으로는 번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처치 곤란한 문제를 뜻하는 ‘방 안의 흰 코끼리’에 비유하기도 했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부자들의 색’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때가 타기 쉬운 흰 옷을 입고 그 청결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여유’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NYT는 “역사적으로 흰색은 부를 상징해 왔다”며 팬톤의 의도가 서민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꼬집었다.

● ‘빈 캔버스’ 묘사한 것…새로운 시작과 안식 필요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미국 대표팀의 유니폼. AP/뉴시스

반면, 긍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일부 색채 평론가는 “전례 없는 문화적 정체기에 적합한 선택”이라고 짚었다. 유튜브·틱톡 등의 대중 문화 콘텐츠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피로감이 누적된 상황에서,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빈 캔버스’가 적절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패션 브랜드 랄프 로렌이 공개한 2026년 동계올림픽 미국 국가대표팀 유니폼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 화이트’로 디자인됐다. 한 NYT 기자는 이에 대해 “오히려 신비롭고 반항적인 태도가 느껴지는 선택”이라며 긍정적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혹평을 받았던 갈색 계열의 ‘모카 무스’가 결국 주요 패션쇼에 등장한 것을 감안하면, 팬톤의 예측 능력 자체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팬톤 컬러 연구소의 로리 프레스먼 부사장은 “클라우드 댄서는 어떤 것과도 잘 어울리는 구조적 색상이다. 올해의 색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색이 어떤 답을 줄 수 있는가’를 제시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