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0일 벨기에 브뤼셀 그랑플라스 광장에서 농민들이 EU-메르코수르 무역협정에 반대하며 트랙터에 실은 감자를 쏟아내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세계 최대 냉동 감자튀김 수출국인 벨기에에서 감자튀김 가공용 감자의 현물시장 가격은 수개월째 t당 0유로에 머물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t당 가격은 600유로(약 100만 원)안팎에 달했다.
유럽 전역에서는 감자튀김용 감자 약 500만 t이 남아도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호한 기상 여건으로 유럽 감자 수확량이 8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수요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공급 과잉이 심화된 것이다.
벨기에 동부에서 감자 농장을 운영하는 크리스 드헤이레는 최근 팔리지 않은 감자 1000t을 밭에 다시 버렸다. t당 몇 유로에라도 팔려고 했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감자에 싹이 나 더 이상 처분할 수 없게 됐다. 그는 토지, 종자, 비료, 인건비 등으로 16만 유로(약 2억5000만 원)의 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감자튀김은 벨기에의 국가적 상징으로 꼽힌다. 유럽연합(EU) 통계기관에 따르면 벨기에는 2025년 조리·냉동 감자 제품을 33억 달러어치 수출했다. 이는 10년 전의 약 3배에 달하는 규모다. 그러나 NYT는 벨기에 감자튀김 산업이 과거와 같은 성장세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2026년 3월 1일 벨기에 루벤의 한 감자튀김 매장 앞에 전통 벨기에식 감자튀김을 홍보하는 캐릭터 간판이 세워져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 관세·이란 전쟁에 수출길도 막혔다
공급 과잉에 더해 국제 정세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로 미국 내 유럽산 감자튀김 가격이 오르면서 수출이 타격을 입었고, 중국·인도·이집트 등 새로운 경쟁국들이 저가 제품을 앞세워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냉장 보관과 운송 비용이 함께 상승한다. 비료 가격 급등 또한 농가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비료 원료를 실은 선박 운항에 차질이 빚어지고, 카타르·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감자튀김 소비국으로의 수출도 어려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벨기에 감자 가공협회 벨가폼의 크리스토프 베르뮐렌 최고경영자는 NYT에 “이란 전쟁은 냉동 감자튀김 공급망에 부담을 주는 가장 최근의 요인”이라고 말했다.
미국 시장의 부진도 벨기에 감자 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영국에 이어 유럽산 감자튀김의 두 번째로 큰 시장이다. 그러나 미국의 수입 관세로 유럽산 감자튀김 가격이 오르면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됐다. 감자 시장 전문지 월드포테이토마켓에 따르면 지난 2월 28일까지 12개월 동안 유럽연합(EU)의 대미 냉동 감자튀김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8% 감소했다.
● GLP-1 약물 확산에 튀김류 수요도 영향
소비자들의 식습관 변화도 장기적인 변수로 꼽힌다. NYT는 건강한 간식에 대한 선호가 커지고, 오젬픽·위고비 등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사용이 늘면서 감자튀김 같은 가공·튀김 식품에 대한 수요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월드포테이토마켓에 따르면 세계 냉동 감자튀김 수요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지만, 최근 성장률은 연 2.5% 수준에 그치고 있다. 5년 전 성장률이 연 5%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황수영 기자 ghkdtndud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