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내각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트럼프 행정부는 퇴직연금의 사모대출 등 대체자산 투자 허용을 추진하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Getty Images
3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 노동부는 퇴직연금 사업자가 대체자산을 투자 선택지에 포함할 때 따라야 할 절차를 담은 규정안을 발표했다.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수탁자의 법적 책임을 일부 완화해 주는 ‘세이프 하버(safe harbor)’ 요건도 포함됐다.
수탁자는 투자상품 선정 시 성과와 비용, 유동성, 자산 평가 방식, 벤치마킹, 상품 구조의 복잡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경우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단순 수익률뿐 아니라 상품 구조와 비교 기준까지 따져 ‘합리적 판단’을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조치는 투자 자체를 새로 허용했다기보다, 소송 리스크를 낮춰 사실상 시장 진입 장벽을 낮췄다는 데 핵심이 있다. 그동안 퇴직연금 수탁자는 ‘가입자 이익 최우선’이라는 포괄적 의무 때문에 투자 판단을 둘러싼 소송에 노출돼 왔고, 이로 인해 대체자산 편입을 꺼려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투자 기회의 확대’로 설명하고 있다. 블랙스톤, 아폴로, KKR 등 대형 운용사들도 기관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개인 자금 유입을 확대하기 위해 퇴직연금 시장 진출을 적극 모색해왔다.
미국 퇴직연금 시장 규모는 약 14조2000억 달러(약 2경1500조 원)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이 가운데 일부만 대체자산으로 이동해도 사모시장 전체의 자금 흐름이 크게 바뀔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위험의 민주화’인가 ‘손실의 전가’인가
특히 사모대출의 주요 대출처였던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산업 재편 압박을 받으면서, 대출 부실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시장 불안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이 자금 회수를 고민하는 시점에 개인의 퇴직연금 자금을 새로운 자금원으로 끌어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유동성이 낮은 자산이 개인 계좌에 편입될 경우, 시장 충격 시 자금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 핵심 리스크로 꼽힌다.
● “자동으로 들어온다”…TDF가 ‘게임 체인저’
TDF는 은퇴 시점에 맞춰 자산 비중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상품으로, 기본 투자 옵션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주요 운용사들이 TDF 포트폴리오에 사모대출 등 대체자산을 편입할 경우, 가입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대규모 자금이 자동으로 유입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TDF 편입 여부가 사실상 시장 확대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세이프 하버’에도 남는 불확실성
노동부는 ‘세이프 하버’를 통해 수탁자의 법적 부담을 줄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대체자산의 또 다른 쟁점은 가치 평가 방식이다. 상장 주식과 달리 사모자산은 거래가 제한적이어서 운용사의 자체 평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투자자는 자신의 퇴직연금 자산 가치가 실제 시장에서 어느 수준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높은 수수료 구조까지 더해질 경우 장기 수익률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제기된다.
WSJ은 이번 조치에 대해 “고비용 대체투자 상품을 퇴직연금 시장에 편입시키려는 월가 금융사들의 로비가 반영된 결과”라면서도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변화가 실제 투자 확대까지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면서도, 퇴직연금의 투자 범위 확대 흐름 자체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다만 투자 선택권 확대와 함께 개인 투자자 보호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을 경우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