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몰릴까봐 순간 멈칫”…쓰러진 여학생 도운 의인의 씁쓸함 [e글e글]

김영호 기자 2025-12-04 08:38

지하철에서 쓰러진 여학생을 구조하려다 오해를 우려해 망설였다는 시민의 사연이 논란을 불러왔다. 응급 상황에서조차 구조자 위험이 제기되는 사회 분위기가 도마에 올랐다. 사진은 게티이미지뱅크 자료사진.

지하철에서 쓰러진 여학생을 구한 한 시민이 “혹시 성추행범으로 오해받을까 봐 구조를 망설였다”고 털어놓으면서, 위급 상황에서도 행동을 주저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가 논란이 되고 있다.

3일 보배드림에는 ‘쓰러진 여학생 도와주면서 든 생각’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 A 씨는 “남학생이었다면 바로 달려갔을 텐데 여학생이라 망설여졌다”며 실제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겪은 현실적 고민을 전했다.

A 씨는 이날 오전 11시40분경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 인근 열차 안에서 한 여학생이 갑자기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당시 주변 여성 승객은 먼저 쓰러진 학생에게 다가가 의식 여부를 확인했고, 다른 시민들은 즉시 119에 신고하고 있었다.

A 씨는 “여학생이라 섣불리 다가가기 조심스러워 30초 정도 지켜봤다”며 “결국 다가가 눈동자를 보니 의식이 있는 듯해 말을 걸었다”고 설명했다. 의식이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곧바로 구조 조치에 나섰다.

이후 그는 자신의 손가방과 겉옷을 벗어 즉석 베개를 만들어 학생의 머리를 괴어 주고, 손가락·발가락 반응을 확인하는 등 가능한 응급 조치를 취했다. 이어 주변 여성 승객에게 도움을 요청해 학생의 자세를 안정시키도록 도왔다.

● 왜 시민들은 위급 상황에서조차 행동을 망설이게 될까

A 씨의 선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역에 내려 벤치에 학생을 눕혀 안정을 취하게 만들어준 뒤, 입고 있던 조끼까지 벗어 덮어줬다. 이후 역무원과 119 구급대원이 도착해 학생을 인계할 때까지 현장을 지켰다.

이 일로 약속 시간에 15분 지각했다는 A 씨는 “그래도 착한 일 하나 해서 기분은 좋다”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그는 “시대가 저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지체 없이 행동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생각이 많아진다”고 토로했다.

그의 우려는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위급한 사람을 도우려다 오히려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사례가 발생해 왔다. 지난해 7월에는 차 안에서 실신한 여성을 구하기 위해 유리창을 깨고 구조에 나섰던 남성이, 여성이 아닌 그의 남편에게서 “신체 접촉이 있었다”며 성추행 신고 협박을 받았다는 글이 온라인에 공개돼 공분을 산 바 있다.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사람을 구할 때도 생각하는 시대가 됐다니” “그래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챙겨준 용기가 대단하다” “잠시 고민했더라도 도움을 실천했으니 의인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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