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정부는 내년에는 1인당 GDP가 4만 달러를 처음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발 관세 폭풍에 주요 수출국이 고전하는 것과 딴판이다. 대만은 앞서 미국 정부가 부과한 상호관세를 당초 32%에서 20%로 하향 조정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도 4%대 고성장으로,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자신감을 표출한 것이다.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와 안보 환경 등이 비슷한 대만의 국민소득이 한국을 추월할 수 있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의 꽃인 인공지능(AI) 붐에 제대로 올라탔기 때문이다. 간판기업 TSMC는 엔비디아 등 주요 빅테크의 AI 칩을 생산하며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70%를 휩쓸고 있다. TSMC 외에도 반도체 부품·장비·설계 등에서 다수의 혁신 기업이 쏟아져 AI 생태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를 위해 대만 정부는 필요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21년 대가뭄 때 농업용수를 끌어다 TSMC 공장에 우선 공급했을 정도다. 산업계가 인력 부족을 호소하자 대학에 6개월마다 반도체 전공 신입생을 뽑도록 했다.
이와 달리 한국은 11년째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벽에 갇힌 데다 0%대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 4만 달러 도약은 2029년에야 가능하다는 것이 국제통화기금(IMF) 진단이다.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 중 8개가 20년째 그대로일 정도로 새로운 산업을 키우지 못한 탓이 크다. 새 정부가 AI 3대 강국 도약을 선언했지만, 경제 체질을 바꿀 구조개혁이나 기업 활성화 전략은 보이지 않아 우려스럽다. 혁신 역량을 지닌 기업이 끊임없이 배출돼 AI 대전환을 이끌 수 있도록 기업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