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요법 치료 시 완치 가능성 80% 의료진 권고 묵살 英 유명 반(反)의학 음모론자 어머니 관리 하에 대체요법 고집하다 사망
항암치료를 거절하고 대체요법을 고집하다 숨진 팔로마 셰미라니. 어머니 케이트 인스타그램 캡처.
영국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한 팔로마 셰미라니(Paloma Shemirani)는 혈액 암의 일종인 비호지킨 림프종을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려다 작년 7월 24일 종양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당시 나이 23세.
2023년 말 그녀를 검진한 의료진은 화학요법(항암치료)으로 치료하면 생존 가능성이 80%라며 예후를 낙관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거절하고 대체요법으로 암에 맞서다 몇 달 후 사망했다.
전직 간호사이자 유명 음모론자인 그녀의 어머니 케이트 셰미라니(Kate Shemirani)가 딸의 치료 프로그램에 적극 관여했다.
항암치료를 거절하고 대체요법을 고집하다 숨진 팔로마 셰미라니. 어머니 케이트 인스타그램 캡처.
팔로마의 이란성 쌍둥이인 가브리엘 셰미라니와 그의 형 세바스찬은 어머니의 현대 의학에 대한 비합리적 불신이 여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한다.
커피 관장(Coffee Enema)은 카페인이 포함된 커피를 항문을 통해 직장에 주입하여 대장을 세척하는 대체요법이다. 이는 주로 해독(detox), 장 정화, 피로 개선 등을 목적으로 사용하며, 과학적으로 입증된 의료행위는 아니다.
이날 심문에선 팔로마의 암 치료가 주로 엄격한 식단과 녹즙 다량 섭취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딸에게 항암치료 대신 대체요법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는 어머니 케이트 셰미라니. 그녀는 영국에서 유명한 반의학 음모론자다. 인스타그램 캡처.
화상으로 심문에 참석한 팔로마의 어머니는 법정 경고를 받았다. 이유는 소리를 끈 채로 카메라를 향에 손 팻말을 들거나, 증인 신문 중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 했기 때문이다.
검시관은 “법정모독에 가깝다”라며 경고했다. 심문은 계속될 예정이다.
세바스찬과 가브리엘 형제는 지난 6월 BBC와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9·11 테러를 미국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믿었으며, 학생 20명과 교직원 6명이 사망한 샌디훅 초등학교 총격 사건 또한 조작됐다는 주장을 폈다고 말했다.
세바스찬과 가브리엘 형제는 생사의 기로에 선 여동생이 반의학 음모론자인 어머니를 따르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추정했다.
부모 이혼 후 엄마와 연락을 끊은 남자 형제들과 달리 팔로마는 꾸준히 연락하고 친밀하게 지내며 어릴 때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항암치료를 거절하고 대체요법을 고집하다 숨진 팔로마 셰미라니. 어머니 케이트 인스타그램 캡처.
병원 항암치료를 포기한 팔로마는 대신 어머니의 뜻에 따라 ‘거슨요법’으로 암과 맞서기로 결정했다. 거슨요법은 우리 몸에서 생기는 독을 제거하고, 부족한 영양을 채워준다는 개념의 대체 요법이다. 제독을 위한 커피 관장, 유기농 야채즙, 그리고 곡식으로 구성한 무염식이가 핵심이다. 하지만 암 치료법으로 승인되지 않았으며 효과가 있다는 확인된 결과도 없다고 BBC는 지적했다.
세바스찬은 어머니가 여동생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비난하며 “내 여동생은 엄마의 행동과 믿음의 직접적인 결과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다른 누구도 내가 겪은 것과 같은 고통이나 상실을 경험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지난달 BBC 인터뷰에서 말했다.
영국 전역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사망원인 심문은 이달 시작됐다. 사망원인 심문은 의문사, 급사, 자연사로 보이지 않는 죽음의 경우에 사망 원인과 경위를 밝히기 위해 검시관이 진행하는 공식적·법적 조사 절차이며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진행한다.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