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일까, 무리수일까? 90년대 세기말 컨셉 음료 7

sodamasism2019-09-21 16: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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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음료라기에는 너무 앞서간 것이었다”

시간을 되감기 할 수 있다면 가보고 싶은 시대는 80년대에서 90년대를 가보고 싶다. 옷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음료까지도 세기말 컨셉이 가득한 녀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매실사이다… 수정과콜라…. 어떻게 출시했을지 모를 음료들이 우후죽순 나왔다. 독특한 음료가 나오니까, 마셔본 사람들은 더 독특해지고, 경쟁심에 더 독특한 음료를 만들고…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로쇠 수액을 팔아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 것 같은 해외에서도 ’90년대’라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피하지 못했다. 오늘은 강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진 ‘세기말 음료’세계를 들춰본다. 그런데 지금 보기에는 되게 잘 만든 것 같은데?

1 OK 소다
이보다 힙한 탄산음료는 없다. 다른 탄산음료들이 파티에서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는 느낌이라면, OK소다는 그 파티장 한가운데에 무표정하게 앉아서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사색에 빠지는… 튀는 녀석들 사이에서 제일 튀는 녀석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코카콜라의 동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1993년 코카콜라에서는 90년대 X세대의 감성을 겨냥한 탄산음료를 만든다. OK소다라는 이름은 코카콜라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알려진 단어고, 첫번째가 OK였기 때문이다. 라벨에는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세상 시크한 표정의 캐릭터를 그려 넣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탄산음료를 마실 때는 그런 감성에 빠지고 싶지 않았던 것. 음료계의 카뮈가 되려고 나온 OK소다는 2년 만에 생산중단이 되며 이방인으로 남아버렸다.

2 뉴 코크
이 구역에서 뉴 코크보다 충격적인 데뷔와 퇴장을 한 음료는 없다(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99년 만의 코카콜라의 맛을 바꿔버린 대단한 녀석. 하지만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고객들의 봉기(?)로 인해 79일 만에 자리에서 내려온 녀석이다.

‘원래의 코카콜라가 너무 맛있으니까’ 정도로 생각했는데 막상 마셔보니 뉴코크도 엄청 맛있다는 게 함정. 그 시대의 사람들이 더욱 좋아할 맛을 찾아 너무 발전을 시키다 보니까 오리지널과 너무 멀어져 버렸다. 방학숙제로 일기를 제출하랬는데 조선왕조실록을 써온 느낌이랄까.

3 쿠어스 록키 마운틴 스파클링 워터
탄산음료 이야기만 했더니 물이 당긴다. 문제는 누구도 이 음료가 탄산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맥주회사로 유명한 쿠어스는 1990년에 맥주에만 사용하기 아까운 로키산맥의 물을 생수로 출시하기로 결정했다. 맛도 있었고, 성공할 것이라고 자부했다. 문제는 아무도 이 병을 보고 생수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그렇다. 물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쿠어스라는 이름과 병의 모양 때문에 이 녀석을 맥주 내지는 알콜이라고 생각해서 안 마셨다,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골랐다가 뜻밖의 탄산수에 봉변을 당해 안 마셨다. 쿠어스에서는 병모양에서 어떻게 맥주 이미지를 지울까를 고민했다. 그냥 쿠어스란 이름을 빼면 되잖아.

4 크리스탈 펩시
코카콜라에게 뉴 코크가 있다면, 펩시에게는 크리스탈 펩시가 있다. 1992년 펩시는 콜라의 색깔을 투명하게 만들어서 고급스러운 이미지, 투명함, 그리고 카페인이 없음을 강조하고 싶었다. 실제로 각종 컨셉러들이 난무하던 시대에 투명한 콜라의 등장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사람들은 어두운 색이 아닌 콜라를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한 투명한 콜라에 카페인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다. 콜라만 두고 봤을 때는 특이한 모양이지만, 전체적인 음료를 봤을 때는 이게 사이다인지, 탄산수인지, 콜라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결국 2년 만에 판매 중단이 된다.

투명한 색깔의 콜라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번엔 파란색 콜라를 만들고 실수를 반복한다. 마시즘도 마셔봤는데 파란색은 너무 부동액 스타일이야…

5 오비츠
1997년, 무려 우주컨셉으로 나온 음료 ‘오비츠’다. 미국판 봉봉이라고 할까? 행성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동글동글한 알갱이(타피오카 펄)를 음료에 넣었고. 알갱이를 가라앉지 않고 둥둥 떠다닐 수 있도록 음료를 만들었다.

이런 우주적 음료를 일반 매장에서 판매하면 뭔가 심심하다. 오비츠는 월드 와이드 웹 시대(당시는 인터넷이 혁명적이었으니까)를 맞이하여 온라인을 주요 판매채널로 만들었다. 컨셉부터 판매까지 완벽히 90년대 느낌을 재현했다.

문제는 외국인들에게 알갱이의 식감이 유쾌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당시 인터넷이 무언가를 구매하기에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음료 하나 마시는데 회원가입에 엑티브엑스 폭격을 맞는 느낌이랄까? 결국 오비츠는 1년 만에 생산중단이 된다. 뒤늦게 알갱이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 때문에 콜렉터들이 오비츠 미개봉 음료를 찾아 이베이를 헤매고 있다고 한다.

6 존스 소다
맛의 광기를 찾아가는 곳. 존스 소다는 시대적인 너그러움이 키운 깜찍한(?) 괴물이다. 1987년에 만들어진 존스 소다는 음료의 라벨에 소비자들의 사진을 붙여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미국의 10대 20대들은 음료수에 자신의 얼굴을 올리기 위해 존스 소다에 셀카를 보냈다.

유쾌한 컨셉의 사진은 그래도 양반이다. 이 양반들은 각종 세상없는 맛의 탄산음료를 내면서 이 구역의 미친 음료 타이틀을 가져온다. 으깬 감자맛, 훈제 연어맛, 고기맛 탄산음료를 발표하며 팬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했다. 가장 최고는 2005년 추수감사절 에디션. 여기에는 추수감사절에 먹는 음식들을 탄산음료로 만들었다. 칠면조맛, 양배추맛, 호박파이맛 등… 존스 소다 역사상 최악의 음료 5개가 한팩에 담겨있다(포크까지 들어있는 게 센스).

7 서지
심상치 않은 디자인들 중에 가장 심상치 않은 녀석이다. 감귤류 향이 첨가된 탄산음료 서지는 90년대 대중문화들을 적극 활용해서 마케팅을 했다. 문제는 X세대들도 받아들이기에 무거울 정도로 컬트적이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상대편에는 마운틴듀가 있고, 같은 회사에는 멜로옐로라는 비슷한 맛의 음료들이 있었다. 결국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음료는 사라졌어도 충격과 공포의 디자인은 잊히지 않았다. <서지 무브먼트, 단종된 음료를 3명의 청년이 살리다> 에서도 말했지만 소수의 팬들로 인해 서지는 부활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대중문화가 레트로로 가면서 그 시절 서지의 마케팅이나 라벨이 굉장히 멋지게 보였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서지가 이렇게 멋지게 돌아오다니! 사실은 변한 게 없는데도 말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는 X세대의 음료
90년대의 바람을 타고 충격과 공포의 컨셉을 선보이고 사라진 음료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종종 한정 출시가 되거나, 아예 재출시가 될 정도로 늦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어떤 음료가 판매되지 않는다고 하여 그 음료의 맛이나 품질을 평가절하할 수 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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