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한소희 “김희애 반도 못 따라간 내 연기에 무력감 느껴”

곽현수 기자2020-05-27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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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인터뷰] 한소희 “김희애 반도 못 따라간 내 연기에 무력감 느껴”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의 성패는 사실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에게 달렸다. 한 가정을 파괴한 불륜 남녀가 얼마나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내는가. 이것이 처음이자 끝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JTBC 금토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거둔 성공 역시 같은 맥락으로 봐야 옳다. 시청자가 마음껏 욕하고 미워할 수 있는 불륜녀의 존재. 그리고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지키지 못한 불륜녀가 일군 가정. 이 큰 흐름이 ‘부부의 세계’ 시청자들이 극에 몰입할 수 있는 원인이었다. 때문에 드라마 속의 여다경은 미워할 수 있지만 이를 연기한 한소희마저 미워할 수 없는 것이다.

“3차, 4차까지 오디션을 보면서 여다경이라는 캐릭터 위주로 생각했어요, 이 캐릭터는 뭘까 왜 이태오를 사랑하게 됐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죠.”

이런 그의 고민은 시청자들의 궁금증과도 일맥상통한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집안에서 태어나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자란 여다경은 왜 이태오라는 누추한 인간을 사랑하고 그를 곁에 두려한 것일까. 한소희가 본 여다경의 심리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호기심 혹은 신기함 때문이었다.

“극 설정상 다경이는 꿈이 없는 아이였어요.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뭘 해도 평타 이상은 해내는 삶을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태오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면서 본인의 예술적인 재능만 믿고 맨 땅에 헤딩을 하는 사람이었잖아요. 그러 면에 끌려서 태오에게 반한 것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태오를 연기한 박해준 선배님을 실제로 보면 정말 잘생기셨어요.(웃음)”


이렇게 한소희는 여다경을 이해하고 깊이 몰입했다. 그가 진심을 다해 여다경이 되어 갈수록 세간의 관심은 높아졌고 대중의 기대감도 커졌다. 특히, 대선배인 김희애에 밀리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을 이어가는 모습은 한소희의 이름과 얼굴을 대중에 확실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김희애라는 대선배와 마주하며 연기를 한다는 것이 힘들긴 했죠.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선우의 뒤통수를 때리는 장면이었는데 어설프게 때리면 안될 것 같고 제대로 하자니 제가 여다경을 지배하는 상황이 됐죠, 저희 둘 뿐만 아니라 다른 선배들도 있어서 더 힘들었던 장면으로 남았어요.”

이어 한소희는 김희애와의 호흡에 대해 “가장 대단한 부분은 몰입하는 모습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작품에 임하는 모든 사람들의 몰입도가 강했어요. 다들 우리가 인간적으로 소통을 하게 되면 그 감정의 틀이 깨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저 역시 김희애 선배와 배우로서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면 뭔가가 깨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였는지 김희애 선배는 늘 촬영장에 지선우인 모습으로 나타나셨어요. 저를 향한 배려였지 않았을까 싶어요.”

성공의 경험이 값진 까닭은 이겼다는 그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서 배운 것이 자신에 녹아들어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한소희 역시 ‘부부의 세계’를 통해, 김희애를 통해 배운 것이 있다.

“저는 지금 당장 첫 촬영 전으로 돌아갈래 라고 물으면 다시 돌아갈 것 같아요. 그만큼 아쉬움이 크게 와요. 선배들의 연기를 보면서 왜 저는 저 연기의 반도 못 따라가는지 싶어서 무기력함도 많이 느꼈어요. 굳이 제 스스로에게 칭찬을 한다면 끝까지 다경이를 놓아버리지 않았다는 거에요. 저조차도 다경이가 이해 안 가는 순간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저마저 다경이를 놓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그 부분을 칭찬해 주고 싶네요.”


‘부부의 세계’ 속 여다경의 존재감 혹은 성장은 굉장히 극적이다. 드라마 초반 지선우에게 궁지를 몰리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 지고 극 후반 라이벌 전 같은 심리전이 이어졌다. 한소희가 맡은 여다경의 체급이 올라가면서 볼만한 대결이 펼쳐졌다.

“나중에는 선우와 다경이 사이에 묘한 동질감이 생겨요. 극중 2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다경은 지선우를 안에서 배제하고 살아가죠. 그래서 ‘이태오를 믿지마’라는 말에 더 충격을 받고 불안을 느낀 것 같아요. 이렇게 다경은 지선우를 견제하기 시작하죠. 사실 지선우를 의식하고 견제하는 순간부터 다경이는 진 건데 말이죠. 극 후반의 다경이는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워 판단하고 행동했던 것 같아요.”

이런 치열한 고민 혹은 자괴감을 겪어가며 한소희는 훌륭히 한 사람 몫을 하는 배우가 됐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가 다가 아닌 그의 연기로도 대중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에 대중도 높은 관심으로 한소희에게 화답했다.


“처음에는 이걸 제가 감당할 수 있나 싶더라고요, 앞으로 드라마나 다른 작품으로 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고 계속 성장해야 하는데 제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죠. 저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너무 기분 좋다라는 생각보다 이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이 컸어요. 이럴 때일수록 저 자신을 더 믿어야 하는 것 같아요. 잘하는 횟수를 지금보다 늘리고 못하는 횟수를 최대한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한소희에 주어진 선결 과제는 ‘여다경 버리기’다. 그는 “내 몸에 밴 여다경을 버리고 잠시 대중의 눈에서 벗어나야 다음에 새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느냐”며 “다경이를 보내는 게 지금 가장 큰 숙제가 됐다”고 말한다.

“이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 한 생각은 앞으로 좀 더 기초공사를 더 잘 해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연기는 작품을 많이 보면 겉으로 흉내를 내면 어느 정도 비슷하게 할 수는 있어요. 그래도 기초공사가 제대로 안되어 있으면 연기를 진짜 잘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성공이라는 건 제가 정말 잘하면 저절로 따라오는 것 아닐까요.”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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