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띠부씰, 약과…먹거리를 덮친 레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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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2022-05-28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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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높이는 소비자 '보이슈머'의 힘이 큰 영향
[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옛날 것’이 가지는 촌스러움은 이제 사라진 듯하다. 오히려 ‘힙하다’라는 수식어가 생기며, 더욱 인기를 얻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레트로, 복고는 이제 매년 돌아오는 트렌드가 되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추억을, 또 다른 이들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6년만에 재출시되면서 인기를 얻고 있는 포켓몬빵 / SPC삼립 홈페이지
보통 복고는 옷이나 제품 등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특히 먹거리로 온 듯하다. 지난 2월 재출시되면서 품절 대란, 오픈런 등의 사태를 불러일으킨 포켓몬빵이 대표적이다. 어린 시절에는 빵도 먹고, 띠부띠부씰도 모았다면, 성인이 된 현재는 추억을 사기 위해 분주하기 때문이다.

포켓몬빵 외에도 단종되었던 과자나 아이스크림이 다시 새롭게 출시되거나, 명절에나 볼 수 있었던 전통 과자인 약과가 인기를 얻는 현상이 생겨났다.


2030 추억을 겨냥한 ‘포켓몬’

지금까지 인기가 이어지고 있는 ‘포켓몬빵’은 지난 2월 23일 SPC삼립이 재출시했다. 처음 출시된 1998년 이후 16년 만이다. 출시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편의점이나 슈퍼 등 판매처를 찾는 사람들의 문의가 빗발치기도 했으며, 각 편의점 문 앞에는 품절되었음을 알리는 문구가 걸렸는데, 이 역시 포켓몬 속 캐릭터를 활용한 문구로 웃음을 자아냈다.
대란을 일으킨 포켓몬빵은 구하기 어려울 정도다 / SPC삼립 홈페이지
포켓몬빵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어린 시절 맛보았던 빵의 맛도 있겠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띠부띠부씰’이라는 스티커 때문이다.

‘띠고 붙이고 띠고 붙이는 씰’의 줄임말이라는 이 스티커는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 159종의 모습을 형상화해 만들어 수집 욕구를 자극했다. 과거에 출시되었을 당시에도 띠부띠부씰을 모으기 위해 빵은 먹지 않고 버리기까지 하는 모습이 많았다.

재출시된 현재도 띠부띠부씰을 모으기 위한 ‘어른이’들의 욕구가 넘치고 있다. 포켓몬빵을 판매하는 매장에 오픈 전부터 대기하며 문 열자마자 뛰어가거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은 SNS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백화점 명품매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 의외의 장소에서 나타나는 셈이다.
포켓몬빵과 띠부띠부씰이 중고거래 되고 있다 / 당근마켓
구하기 어려운 만큼 중고시장에서 포켓몬빵의 시세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 중고시장인 당근마켓에는 개당 4~5천 원을 호가하고 있으며, 빵을 제외한 띠부띠부씰도 무료 나눔을 하거나 1장당 1원, 구하기 어려운 ‘레어템’의 경우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원래 포켓몬빵의 가격이 1,500원이라는 점에서 볼 때 2~3배로 가격이 뛰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인기를 힘입어 포켓몬빵을 출시한 SPC삼립의 실적도 크게 올랐다. 지난 10일 발표된 SPC삼립의 1분기 매출실적을 보면, 매출액은 전년 동기 6,525억 원에서 7,248억 원으로 약 11% 상승했으며, 영업이익도 전년 약 104억 원에서 136억 원으로 30% 올랐다. 시즌 1에 이어 시즌 2까지 출시한 포켓몬빵은 2,100만 개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갤럭시 Z 플립3 포켓몬 에디션 / 삼성전자 제공
베스킨라빈스 홈페이지
포켓몬빵의 인기에 이어 삼성전자도 지난 4월 ‘갤럭시 Z 플립3 포켓몬 에디션’을 출시했다. 약 128만 원이라는 고가의 가격이지만, 5분 만에 품절을 기록했다고 한다. 포켓몬 감성과 추억에 젖은 이들을 제대로 저격한 셈이다.

베스킨라빈스에서도 포켓몬 피규어 6종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는 포켓몬 블록팩을 출시했다. 지난 13일부터 18일까지 사전 예약을 받았는데, 이 역시 품절되었다.

던킨도너츠에서는 포켓몬 도넛, 하림에서는 포켓몬 치즈너겟과 치즈 핫도그, 농심켈로그에서는 첵스초코 포켓몬 기획팩을 한정으로 출시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포켓몬 전성시대’로, 당분간 포켓몬의 인기는 여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잊지 못할 그 맛’ 단종 과자의 귀환

포켓몬빵처럼 단종되었던 제품이 재출시되는 일은 많았다. 가장 최근에는 2030 세대에게는 익숙한 사탕인 새콤달콤 중에서 2010년 선보인 파인애플 맛이 12년 만에 재출시됐다.

크라운제과는 여름시즌 에디션으로 파인애플 맛을 출시한 이유에 대해 “파인애플의 상큼한 신맛을 기억하는 고객들의 요청”이라고 밝혔다. 소비자의 니즈를 적극 반영한 것이다.
재출시된 새콤달콤 파인애플 맛 / 크라운제과 제공
34년간 출시된 새콤달콤의 17가지 과일맛 중 다시 출시된 것도 파인애플 맛이 유일하다. 새콤달콤의 새로운 맛을 찾기 위한 고객 조사에서 매년 Top3에 오를 정도로 선호도가 높았다고 한다.
오리온에서 재출시한 제품 / 오리온 홈페이지
오리온에서는 2006년 단종되었던 제품인 ‘와클’을 지난해 3월 ‘돌아온 와클’이라는 이름으로 재출시했다. 출시 5주 만에 누적 판매량이 180만 개를 돌파할 만큼 성공적인 재출시였다. 와클 이전인 2018년에도 썬칩을 ‘태양의 맛 썬’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선보여, 출시 3년 만에 누적 판매량 1억 개를 달성했다고 한다.
소비자 요청으로 재출시된 롯데제과 조안나바와 빙그레 링키바 / 롯데제과, 빙그레 홈페이지
과자 말고도 아이스크림에도 재출시 바람은 불었다. 롯데제과는 지난해 ‘조안나바’를 6년 만에 다시 선보였다. 1991년 출시된 조안나바는 2015년 단종된 후, 소비자들의 재출시 요청에 다시 빛을 볼 수 있었다.

롯데제과는 “가정용 멀티 아이스크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현 트렌드와 레트로 열풍 등을 감안해 ‘조안나바’의 재출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제품의 품질은 업그레이드됐다. 우유 및 과즙 함량을 대폭 늘렸으며, 기존 비닐봉지 형태에서 종이 상자로 바꿨다고 한다.

빙그레 역시 비슷한 제품인 ‘링키바’를 지난 4월 재출시했다. 1992년 등장했던 링키바도 소비자들의 요청에 힘입어, 크기를 20% 늘려 출시했다. 소비자 후기에서는 ‘추억의 아이스크림’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아이스크림의 맛뿐만 아니라 추억까지 선사하는 계기가 됐다.


약게팅까지 만든 전통 과자 ‘약과’


먹거리 레트로 열풍을 가장 와닿게 느낄 수 있는 제품은 따로 있다. 명절이나 제사 등 특별한 날에만 볼 수 있는 전통 과자인 약과가 바로 그것.

특유의 꽃 모양과 기성 과자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할미 입맛’에 소외되기도 했지만, 힙한 것을 찾는 MZ세대에서 약과가 떠오르고 있다.

기성 제품 중에도 약과가 있어 쉽게 구매할 수 있지만,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약과 맛집의 약과를 맛보기 위해서는 치열한 주문을 해야 한다. 그 때문에 약과와 티켓팅을 합친 ‘약게팅’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위키미디어 (Hyeon-Jeong Suk)
약과는 밀가루 반죽을 빚어 말린 뒤, 기름에 튀겨 만든 유밀과 중 하나다. 꿀, 밀가루, 물, 식용유, 술을 섞어 반죽하기 때문에 특유의 달달함은 물론, 기름기가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전통 과자다. 어떤 틀에 넣고 만드느냐에 따라 모양은 달라지지만, 보통은 꽃 모양에 가깝다.

전해지는 유래에 따르면, 중국 전국 시대 노래인 ‘초혼부’에 쌀가루와 꿀을 섞은 전병인 ‘거여(粔籹)’, 기장쌀에 꿀을 섞어 구운 ‘밀이(蜜餌)’가 나온다. 성호사설을 지은 조선 시대 철학자이자 실학자인 이익은 거여와 밀이를 만드는 방식이 약과와 비슷하다고 여겼다고 한다.

약과에서 ‘약’은 꿀, ‘과’는 과일 모양을 뜻하는데, 고려 시대에는 제사상에 고기, 생선을 올릴 수 없는 불교문화에 따라 약과를 과일이나 짐승 모양으로 만들어 대체품으로 올렸다고 한다. 약과를 다른 이름으로 ‘조과(造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아마도 과일 모양(果)을 만들었다(造)는 점 때문인 듯하다.
pixabay
과일 모양이었던 약과는 높이 쌓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네모 모양으로 바뀌었는데, 이름만 그대로 남았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실학자인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는 약과를 ‘밀과(蜜果)’라고도 불렀는데, 꿀(蜜)은 사계절의 정기를 모두 받을 정도로 좋은 약이며, 약과를 만들 때 사용하는 기름은 벌레를 죽일 수 있는 약과 같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위키미디어 (코리아넷 / 해외문화홍보원)
다양한 이름만큼 약과는 만들기 까다로운 과자이기도 하다. 밀가루에 참기름을 넣어 반죽한 뒤, 술이나 꿀, 계핏가루 등을 넣어 반죽하기도 한다. 꽃 모양의 나무틀인 약과판으로 눌러 모양을 낸 후 기름에 튀긴다.

이때, 기름 온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165~170℃의 기름에 천천히 튀겨야 하는데, 기름 온도가 낮으면 모양이 틀어지고, 반대로 온도가 높으면 약과가 까맣게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특유의 갈색을 유지할 수 있도록 튀긴 뒤에 기름을 빼주면 된다. 튀긴 뒤에 꿀이나 조청에 한 번 더 담가주기도 하며, 잣이나 참깨 등을 뿌려 장식을 해주면 완성이다.

정성스러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약과는 기성 과자 특유의 바삭함과 자극적인 식감과 달리, 부드럽고 촉촉하며 단맛이 두드러진다. 아마도 일반 과자에서 느낄 수 없는 맛이 개성을 추구하는 MZ세대를 제대로 겨냥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먹거리 레트로 열풍, 보이슈머의 힘

포켓몬빵부터 단종된 과자가 부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에 있다. 해당 업체들이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재출시하게 됐다”고 밝힌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만큼 소비자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뜻이다.

이들을 특별히 지칭하는 신조어로 ‘보이슈머(voisumer)’가 있다. 보이슈머는 목소리를 뜻하는 ‘voice’와 소비자를 뜻하는 ‘consumer’의 합성어다. 자신의 주장을 제품, 기업에 반영시키는 이들을 말한다.
SNS를 중심으로 보이슈머의 힘이 커져간다 / pixabay
보이슈머의 힘이 커진 데에는 SNS가 한몫했다. SNS는 제품에 대한 반응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으며, 소비자와의 소통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보이슈머는 기업의 고객센터나 커뮤니티, SNS 댓글, 유선전화 등을 이용해 “이 제품을 다시 출시해달라”는 요청을 남긴다. 특히, 단종된 제품과 같이 과거 인기 있었던 제품에 보이슈머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
방탄소년단(BTS) RM의 요청으로 양을 늘린 팔도 비빔면 컵 1.2 / 팔도 인스타그램 @paldofood
이 때문에 기업들도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 이벤트를 통해 소비자의 반응을 살펴보고, 의견을 토대로 출시 전 제품을 수정하기도 한다. 양을 늘려 한정 출시되었던 ‘팔도 비빔면 컵 1.2’가 좋은 사례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RM이 지난해 SNS 라이브 방송에서 팔도 비빔면의 양이 적다며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방송 당시 RM은 “3일째 먹었는데 질리지 않는다. (비빔면 컵을) 2개 먹었는데 속이 안 좋았다. 1.5배 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는 일반 소비자도 공감하는 이야기다. 1개를 먹으면 아쉽고, 2개를 먹으면 양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RM의 의견을 수용한 팔도는 양을 20% 늘린 비빔면 컵라면 제품을 지난 1월 100만 개 한정 출시했다. 면 중량을 85g에서 17g 늘린 102g로, 액상 스프로 6g 더 늘렸다고 한다. 소비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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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소비자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다. 보이슈머가 늘어날수록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도 많이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먹거리 레트로 열풍은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 유행이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앞으로 또 어떤 먹거리가 시간을 거슬러 역주행을 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