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동화책으로 만나는 세상과의 소통, 앤서니 브라운 '원더랜드 뮤지엄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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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2022-05-04 09: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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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 <원더랜드 뮤지엄展> /아트센터이다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상상력 가득한 <원더랜드 뮤지엄展>이 2022년 4월 28일 예술의전당에서 화려한 개막을 알렸다. 이번 전시는 “세상과의 소통”이라는 콘셉트를 중심으로 상상의 공간 ‘원더랜드 뮤지엄’에서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신작 <넌 나의 우주야 Our Girl(2020)>, <어니스트의 멋진 하루 Ernest the Elephant(2021)>外 60점 이상의 원화는 국내 초연되어 앤서니 브라운의 소식을 기다려온 국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자리가 될 것이며, 영상 멀티미디어 등 다양한 미디어아트와 유명 셀럽들과 콜라보레이션한 NFT 아트 작품들은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을 더욱더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든다.

전시회 측은 전시 기간 동안 창의적인 예술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코로나 19로 집안에만 갇혀 사회 경험이 부족해진 어린 아이들이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세계에서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며 마음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 밝혔다.
Anthony Browne receiving his CBE at a Windsor Castle @ Photo by Hanne Bartholin
1976년 첫 작품 «거울 속으로 (Through the Magic Mirror)» 을 발표한 이후 2021년에 출간된 신작 «어니스트의 멋진 하루 (Ernest the Elephant)»까지 53권의 책에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쓴 브라운은 가족, 전래동화, 인간애, 행복, 어둠, 상상과 꿈, 사회 문제 등 어린이 독자는 물론 모든 세대가 두루 공감할 수 있는 광범위한 주제를 섬세하게 다루며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했으며 권위있는 케이트 그린어웨이상(Kate Greenaway Medal), 쿠르트 마슐러상(Kurt Maschler Award) 등을 수차례 수상했다.

2000년에는 아동 문학에 대한 일생의 공로를 인정 받아 영국인 일러스트레이터로서는 최초로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에서 수여하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ans Christian Andersen Award)을 받았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영국 계관 아동 문학가(Children’s Laureate)를 역임했으며, 2021년에는 대영제국훈장 CBE(Command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에 서훈되는 영예를 얻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도서들 /김서진 기자
전시에 출품된 도서들을 대략적으로 훑다 보면 서점에서, 혹은 미디어에서 한번씩은 봤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만큼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는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에게나 친숙하다.
앤서니 브라운의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들. 박세라, 송예린, 신정미, 정양회 '나의 팀' /김서진 기자
앤서니 브라운은 "어린이들이 어떻게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물어오면 나는 우선 최대한 주의깊게 보라고 말해 준다. 내게는 이것이 미술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어떤 무언가를 창작하려면 주변의 것들부터 주의깊게 살펴보고 관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작가는 정확히 알고 있다.
'이상한 놀이공원' /김서진 기자
박종덕 '회전목마' /김서진 기자
'동물 축제'는 19세기 후반부터 음유시인이나 선원들이 즐겨 불렀던 짤막한 동요다. 여러 동물들이 등장하는 이 노래는 앤서니 브라운에게 최적의 소재였다. 브라운이 그린 동물 축제의 주인공을 동물들로,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사람들도 등장하지만 배경의 역할에 머물러 있다.

오히려 동물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듯 보이며, 실제 책의 팝업 장치를 움직이면 사람들은 동물들이 타는 목마가 된다. 자신이 만든 유일한 팝업북인 이 작품에서 앤서니 브라운은 코끼리, 사자, 돼지 등 동물들을 앙증맞게 그린 묘사와 특유의 초현실주의적 유머를 곁들여 살짝 기이하지만 환상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 동물 축제를 선보인다.
'어니스트의 멋진 하루' /김서진 기자
2021년작 '어니스트의 멋진 하루'는 앤서니 브라운이 그림책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으려 하던 1974년 처음 구상했지만 당시 출간되지 못했던 이야기를 거장의 반열에 오른 지금 새롭게 그려 발표한 작품이다. 첫 그림책을 구상할 때 브라운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 종종 읽어주던 길을 잃은 코끼리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아기 코끼리가 엄마와 다시 만났을 때 자신의 느꼈던 안도감을 생생히 떠올렸다.

브라운은 그림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별로 알지 못하던 때 브라이언 와이들 스미스와 존 버닝햄 등 당대 유명 그림책 작가의 스타일과 1960년대 레코드판 표지도 참조해 초안을 제작했다. 초안을 해미시 해밀턴 출판사로 보냈을 때 편집자는 이야기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책으로는 발표되지 못했다. 브라운은 '어니스트의 멋진 하루'에서 미지에 대한 호기심, 타인에 대한 무관심, 예기치 않은 도움, 그리고 가족과의 재회 이야기를 따뜻하고 재치있는 서사로 풀어낸다.
'어니스트의 멋진 하루' 중 한 컷 /김서진 기자
아기 코끼리 어니스트는 몰래 들어간 정글에서 길을 잃는다. 덤불 속에서 고릴라, 사자, 하마, 악어 등을 마주치지만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어니스트는 결국 작은 생쥐의 도움을 받아 정글을 벗어난다. 브라운은 주인공 어니스트를 통해 미지의 세계와 처음 마주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 정글에 들어갔을 땐 신기한 풍경에 사로잡혀 신이 나지만 길을 잃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자 울음을 터뜨린다. 등장하는 동물들의 매우 사실적인 묘사와 작고 재미있는 그림으로 가득한 정글의 모습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코끼리' 원화 /김서진 기자
원화 속 코끼리 /김서진 기자
앤서니 브라운이 1974년 처음 구상했지만 당시 그림책으로 발표하지 못한 작품의 원화다. 브라운은 이 책을 계획하면서 동물이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판단해 코끼리를 주인공으로 했다고. 이야기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어니스트의 멋진 하루'와 같다. 두 작품 모두에 등장하는 동물들인 고릴라, 사자, 하마, 악어는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느낌을 준다. 특히 브라운은 '어니스트의 멋진 하루'에 그린 악어의 일러스트레이션을 1974년에 그린 악어와 매우 비슷하게 완성되어 좋아하는 그림이라고.
'우리 아빠가 최고야' /김서진 기자
앤서니 브라운은 가족 구성원 사이의 관계와 미묘한 심리를 절묘하게 파고든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의 모습은 어느 정도는 작가 본인의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우리 아빠가 최고야'의 주인공 아빠는 브라운이 아직 10대 후반일 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오마주다. 작가의 책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고릴라 캐릭터는 강하지만 동시에 자상하고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아버지를 상징한다.

브라운은 늘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책을 쓰고 싶어했다. 어느날 어머니의 낡은 여행 가방 속에서 아버지의 오래된 잠옷 가운을 발견하고 어린 시절을 돌아가 아버지를 추억했다. 이 경험이 브라운에게 '우리 아빠가 최고야'를 탄생시키도록 영감을 주었다. 본 작품은 작가 본인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따스한 헌사 그 자체다. 그림 속 아빠는 뭐든지 잘 할 수 있는 영웅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우리 아빠가 최고야'의 주인공 아빠가 입고 있는 잠옷의 무늬는 모든 그림을 관통하는 상징으로 쓰였다.
'우리 엄마' /김서진 기자
'우리 엄마'는 가족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으로, 앤서니 브라운에게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었다. 어머니를 우스꽝스럽게 그리거나 유머의 소재로 다루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엄마는 어느 정도는 작가 본인의 어머니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작가의 기억 속 어머니가 입던 것과 비슷한 꽃무늬 옷을 입고 있다. '우리 아빠가 최고야'에 등장하는 아빠 잠옷의 무늬처럼 엄마 옷의 꽃무늬 또한 각각의 그림을 잇는 서사적 연결 고리의 역할을 한다.
'터널' /김서진 기자
'터널'은 겉으로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닌 가상의 남매 이야기지만 일부는 앤서니 브라운이 어린 시절 살던 동네 외곽에 있었던 터널 속으로 형과 함께 기어 들어갔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두컴컴한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것이 당시 동네 소년들의 '통과의례'와 같은 행위였다고 한다.

외향적인 성격의 오빠는 브라운의 형을, 내성적이고 책 읽기 좋아하는 동생은 브라운 자신을 연상시킨다. 브라운은 이 남매의 이야기에 환상과 마법의 요소를 곁들였다. 이미지의 터널을 지나면 동화 속 마법이 걸린 숲이 등장하고 마지막에 동생은 저주에 걸린 듯 돌로 변해버린 오빠를 구한다. '터널'은 가족 이야기와 환상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명작으로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넌 나의 우주야' /김서진 기자
앤서니 브라운은 2020년작 '넌 나의 우주야'에서 가족 시리즈의 새로운 주인공을 소개한다. 브라운은 '우리 아빠가 최고야', '우리 엄마' 그리고 '우리 형'을 발표한 뒤 여자 형제에 대한 책을 만들 계획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누나나 여동생이 없었던 그에게는 어려운 소재였다. 기존의 가족 시리즈는 모두 작가의 가족을 모델로 했기 때문이다.

오랜 구상 끝에 브라운은 존재하지 않는 여자 형제 대신 자신의 딸 엘렌을 주인공으로 삼아 더욱 진실하게 가족 시리즈 4부작을 마무리하기로 결심했다. 작가는 스포츠를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며 옷도 멋지게 입는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애정 가득한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한 반복되는 꽃의 이미지는 책 전체를 연결하는 시각적인 모티브로 작용한다.
'동물원' 속 주인공들 /김서진 기자
어린이들이 세상을 알아가며 부딪힐 수 있는 각종 어려움과 이와 관련한 미묘한 심리의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조명해 '어린이의 시각'으로 세계를 묘사하는 앤서니 브라운의 예민한 통찰력을 살펴본다. 대표적으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받은 1992년작 '동물원'은 가족과 함께 동물원에 놀러간 형제의 미숙하고 때론 동물과 다르지 않은 행동, 가족 사이의 소통 부재를 동물원 울타리 속 음울하게 묘사된 동물들과 절묘하게 대비시킨다.

2010년작 '나와 너'에서는 영미권에서 널리 알려진 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다시한번 힘없는 약자의 이야기를 우린 앞에 펼쳐놓는다. 2011년작 '기분을 말해 봐'는 아기 침팬지 '아치'를 주인공으로 어린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온갖 감정을 다양한 색감과 따뜻한 화풍으로 풀어냈다. 2019년에 발표된 '나의 프리다'는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어린 시절 일기에서 영감을 얻어 외톨이 소녀 프리다가 상상 속 친구를 만나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렸다.
'동물원' /김서진 기자
'동물원'은 주말에 동물원으로 놀러간 일가족의 이야기다. 주인공 소년과 동생은 고릴라와 원숭이를 볼 생각에 신이 났지만 금세 지루함을 느낀다. 점심을 언제 먹는지 보채고, 마치 원숭이처럼 서로 뒤엉켜 싸운다. 아빠도 짓궂은 농담을 하거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우리에 갇힌 동물들은 활기도 없고 우울해 보이기까지 한다. 호랑이는 편집증 탓에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고, 오랑우탄은 아예 구석에 얼굴을 묻은 채 웅크리고 있다. '동물원'은 주인공 소년의 하루를 따라가면서 소통에 문제가 있는 가족,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들, 마치 동물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교차로 보여 주며 독자에게 많은 여운과 질문을 남긴다.
'나의 프리다' /김서진 기자
'나의 프리다'는 앤서니 브라운이 오랫동안 계획했던 작품이다. 약 20여년전 멕시코에 있는 프리다 칼로의 집을 방문한 브라운은 멕시코 출판사로부터 프리다 칼로에 대한 책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을 받는다.

브라운은 프리다 칼로가 소녀의 모습으로 빨대로 만든 날개를 달고 비행기를 들고 있는 그림, 김이 서린 창문에 손으로 문을 그려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로 날아간다는 어린 시절 일기에 큰 영감을 받아 이 책의 이야기를 만들게 됐다. 또한 프리다 칼로 역시 배경에 그림과 메시지를 숨겨 놓았다는 점에서 브라운은 자신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한다. '나의 프리다'는 거장 프리다 칼로에 대한 앤서니 브라운의 오마주이자 자유에 대한 열망, 그리고 약자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돋보이는 책이다.
'나와 너' /김서진 기자
앤서니 브라운은 '나와 너'에서 영어권 국가의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숲을 헤매던 골디락스가 곰들의 집에 들어가 곰들의 음식을 먹고,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집에 돌아온 곰들에게 들켜 도망치는 것이 원작의 이야기다. 브라운은 원작 동화의 줄거리를 그대로 가져가되 골디락스의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골디락스는 형편이 어려운 집의 소녀인 반면 곰 가족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가정으로 묘사된다.

풍선을 쫓다 길을 잃은 소녀는 곰들이 산책을 나간 사이 곰 가족네 집에 들어가 꼬마 곰이 먹으려 했던 죽을 먹고 아늑한 잠을 청한다. 골디락스와 대칭되는 캐릭터인 아기 곰도 마냥 행복하진 않다. 아빠 곰과 엄마 곰은 아기 곰에게 관심 없이 본인들의 이야기만 하니 말이다. 브라운은 골디락스의 이야기는 대사가 없이 불안한 잿빛 톤으로, 곰 가족은 색연필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표현해 두 그룹을 절묘하게 대비시킨다.
'겁쟁이 빌리' 속 걱정 인형들 /김서진 기자
빌리는 걱정이 많은 소년이다. 앤서니 브라운은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선물받은 '걱정 인형'에서 이야기의 영감을 받았다. 중앙아메리카 과테말라 원주민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 걱정 인형에게 잠들기 전 걱정거리를 말해주고 베개 밑에 넣어두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걱정이 모두 없어진다고 한다. 또한 늘 걱정이 많았던 브라운의 어머니도 이 작품에 대한 영감이 되었다. 온갖 걱정에 시달리는 소년 빌리는 할머니로부터 받은 걱정 인형 덕분에 걱정에서 벗어나고 자신을 위해 걱정을 대신해 주는 인형들을 위해 또 다른 인형들을 만들어 준다. '겁쟁이 빌리'는 극복과 성숙, 보살핌의 이야기다.
'겁쟁이 윌리' /김서진 기자
윌리는 산책을 나갈 때마다 벌레를 밟을까봐 걱정하는, 지나치게 사려가 깊고 신중한 침팬지다. 언제나 힘센 고릴라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겁쟁이라고 놀림받는다. 겁쟁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윌리는 다양한 운동을 하고 근육을 키운다. 윌리는 스포츠를 할 때 자신보다 덩치가 크고 힘도 셌던 형만큼 잘 하기 위해 노력했던 어린 시절의 앤서니 브라운과도 많이 닮은 캐릭터다. 윌리는 지금까지 전세계 많은 어린이들로부터 큰 사랑과 공감을 받고 있다.
'윌리' /김서진 기자
온화하고 사려 깊은 침팬지 윌리는 앤서니 브라운을 대표하는 캐릭터로서 작가의 유년기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윌리는 브라운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약자를 상징한다. 우리 사회에서 약자인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충분히 공감하고 그 감정에 이입할 수 있는 존재다. 앤서니 브라운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윌리는 악당 벌렁코에 맞서기도 하고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 미술 작품 속에 주인공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전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꼬마 침팬지에게 바치는 오마주다.
'미술관에 간 윌리' 풍경 /김서진 기자
'비너스의 탄생에 영감을 받은 미디어아트' /김서진 기자
'미술관에 간 윌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모나리자, 아담의 창조, 비너스의 탄생 등 윌리가 좋아하는 고전 명화들이 등장한다. 윌리는 걸작 그림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그려내며 자신과 친구들을 그림 속에 녹여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종의 셰이프 게임이다.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오묘한 미소를 띤 할머니 고릴라가 되고, 19세기 미국 화가 윈슬로 호머의 작품 '청어잡이 그물'의 어부들은 그물에서 물고기 대신 바나나를 건져 올린다. 앤서니 브라운은 이 책을 자신에 영감을 준 위대한 화가들에게 바쳤다. 이를 통해 이 책의 주인공인 윌리는 다름아닌 앤서니 브라운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임을 암시하고 있다.
'꿈꾸는 윌리' /김서진 기자
'꿈꾸는 윌리'는 꿈에 대한 책이다. 앤서니 브라운은 윌리를 주인공으로 삼아 한장 한장 다른 꿈을 그렸다. 꿈 속에서 윌리는 영화배우, 발레리노, 유명한 작가가 되거나 앙리 루소의 정글을 연상시키는 그림 속에서 프로이트 박사를 만나기도 한다. 또한 작품 곳곳에서 르네 마그리츠, 살바도르 달리, 앙리 루소, 조르조 데 키리고 등 거장 예술가들의 영향과 그들에게 대한 브라운의 오마주를 찾아볼 수 있다. 각각의 꿈들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연속해서 등장하는 바나나는 꿈들을 이어주는 장치의 역할을 한다. 브라운은 '꿈꾸는 윌리'가 가장 즐겁고 자유로웠던 작업이라 회고한다.
'거울 속으로' /김서진 기자
1976년작 '거울 속으로'는 앤서니 브라운의 데뷔 작품으로 다양한 초현실주의 기법을 차용했다. 체코 시인 미로슬라프 홀루프의 시 '문'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각각의 그림마다 르네 마그리트, 조르조 데 키리코 등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영향이 드러난다. 따분한 일상을 보내던 주인공 토비는 거울을 통해 낯선 세계로 들어간다. 그곳은 토비가 알고 있던 동네와 같았지만 모든 것이 기묘하게 바뀌었다. 현실과 셰이프 게임을 하는 책 '거울 속으로'는 이후 발표될 작품들의 초석이 되었다.
'우리 친구 하자' /김서진 기자
'우리 친구 하자'는 앤서니 브라운의 두 번째 책이다. 이 작품의 아이디어는 대학교 시절 처음 떠올렸다고 한다. 어느날 가난한 동네에 사는 스미스 씨는 딸 스머지와 강아지 알버트를 데리고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부유한 동네에 사는 스미드 부인도 아들 찰스와 강아지 빅토리아를 데리고 공원으로 나온다.

두 가족은 같은 공원에서 만나, 강아지들이 제일 먼저 친해지고 아이들도 점차 마음을 열고 같이 놀지만 어른들은 끝까지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브라운은 일러스트레이션의 배경에 재미있는 작은 그림들을 그렸다. 브라운은 처음에는 특별한 의미 없이 단지 책을 좀더 흥미롭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런 숨겨진 디테일들을 그렸다고 한다.
'헨젤과 그레텔' 속 잠든 헨젤과 그레텔 /김서진 기자
계모의 모습 /김서진 기자
다섯번째로 출간된 책 '헨젤과 그레텔'은 앤서니 브라운에게 본인이 직접 글을 쓰지 않은 책에 그림을 그리는 첫번째 작업이었다. 브라운은 일러스트레이션 배경에 그린 디테일을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도를 했다. 책의 여기저기에 헨젤과 그레텔 남매가 처한 가여운 처지와 무시무시한 계모의 계획을 암시하는 상징과 시각적 장치들이 숨어 있다.

예를 들어 계모가 잠이 든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장면의 배경 곳곳에 숨어 있는 삼각형은 마녀의 모자를 떠올리게 한다. 계모가 책의 후반부에 등장할 마녀와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브라운은 '헨젤과 그레텔'에서 글이 전달하지 않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들려주는 기법을 한층 더 성숙시켰다.
'돼지책' / 김서진 기자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앤서니 브라운의 책일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피곳 씨와 두 아들은 어떤 집안일도 하지 않고 엄마 혼자 모든 가사일을 도맡아한다. 이 작품에서도 브라운은 책의 장면 곳곳에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상상해볼 수 있는 상징들을 숨겨 놓았다. 피곳 씨와 아이들이 돼지로 변할 것을 암시하듯 돼지와 관련된 이미지를 책 구석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침 식사 중인 식탁, 피곳 씨의 자켓, 벽지 등 '돼지'들은 곳곳에 숨어 있다. 반면에 엄마가 단독으로 등장하는 컷에는 숨은 그림이나 유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엄마가 느낄 외로움과 가사일의 무게, 일종의 엄숙함까지 느껴진다. 피곳 씨와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컷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후 엄마가 집에 돌아오고 피곳 씨와 아이들을 용서한 이후에는 돼지의 이미지가 책에서 사라진다. 브라운은 '돼지책'의 피곳 씨네 가족은 자신이 아는 한 가족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고릴라와 꼬마곰' /김서진 기자
고릴라와 꼬마곰은 앤서니 브라운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브라운은 1970년대 연하장 디자인 일을 하면서 두 캐릭터를 처음 만들었다. 그림책 작가 경력 초기 출판사로부터 대중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브라운은 꼬마곰 캐릭터를 주인공 삼아 어린이를 비롯해 더 넓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책을 만들었다. 1983년 출간된 '고릴라'는 예술적, 비평적인 성공을 거두고 권위있는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받았다.
'고릴라' /김서진 기자
앤서니 브라운은 '고릴라'를 본인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 말한다. 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비로소 그림책을 제작하는 법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책의 주인공 한나는 고릴라를 너무 좋아하지만 정작 진짜 고릴라를 본 적이 없다. 언제나 바쁜 한나의 아빠는 함께 동물원에 갈 시간이 없다. 아빠는 생일 선물로 고릴라를 주겠다고 하지만 정작 고릴라 인형을 선물받은 한나는 실망하고 만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나가 잠든 사이 이 인형은 진짜 고릴라가 된다. 고릴라는 아빠의 코트를 입고 한나와 함께 환상적인 외출을 한다. 가고 싶었던 동물원도 가고 극장에서 영화도 본다. 배가 고프면 같이 맛있는 음식도 먹는다. '고릴라'는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중 고릴라가 등장하는 첫번째 작품이다. 브라운은 진짜 트럼펫을 원했지만 장난감 트럼펫을 선물받아 실망했던 어렸을 적 기억과 대학교 시절 본 영화 '킹콩'에서 등장하는 여주인공과 킹콩과의 관계에서 이 책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고릴라 가족' /김서진 기자
앤서니 브라운은 고릴라를 왜 그렇게 많이 그리냐는 질문을 늘 받는다. 그럴 때마다 그는 고릴라는 우리 인간과 많이 닮았고, 그림을 그리기에 환상적인 동물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고릴라 가족'은 영장류에 대한 앤서니 브라운의 한결같은 사랑과 따스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브라운은 우리 모두가 영장류 가족의 일원이라 말한다. 이 작품에서는 고릴라, 침팬지 등 여러 영장류과 동물들과 함께 본인의 초상화를 포함한 우리 인간의 모습이 등장한다. 생김새는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도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하나의 가족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마술 연필을 든 꼬마곰 /김서진 기자
'사냥꾼을 만난 꼬마곰' /김서진 기자
상상하는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는 마술 연필을 갖고 다니는 흰색 꼬마곰은 앤서니 브라운을 대표하는 인기 캐릭터다. '사냥꾼을 만난 꼬마곰'은 꼬마곰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아이들에게 좀 더 친근한 책을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 꼬마곰은 자신을 뒤쫓은 사냥꾼들에게 맞서 마술 연필을 이용해 온갖 재치 있는 방법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마술 연필로 그린 그림이 위기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는 이야기 전개는 책이 발표된 지 40년이 넘는 지금에야 다시 보아도 기발하다. 또한 책의 무대인 정글은 숨겨진 그림과 깨알같은 디테일로 가득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책에서 주인공 꼬마곰은 숲속으로 산책을 나와 동물 친구들을 만나고, 필요한 것을 그려준다. 혼자 있는 고릴라를 위해 곰인형을 그려주고, 입을 벌리고 있는 악어에게는 트럼펫을 그려주며 입을 다물게 한다. 사자를 마주쳤을 땐 정글의 왕에게 어울리는 멋진 왕관을 즉석에서 그려낸다. 앤서니 브라운은 꼬마곰을 통해 어린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의성을 북돋아 준다.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 /김서진 기자
앤서니 브라운은 2001년부터 1년간 영국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레지던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미술관이 진행한 '시각의 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미술관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워크샵을 주관하며 함께 고전 미술 작품에 대해 토론했다.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은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그림책이다. 여전히 어딘가 위태롭고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이 가족은 엄마의 생일날 미술관에 놀러간다.

처음에는 미술 작품을 보고 낯설어하지만 머지않아 서로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이렇게 그림을 매개로 하여 가족들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이 책은 가족의 화합을 다룬 이야기면서도 셰이프게임에 대한 찬사와도 같은 작품이다. 미술관에 다녀온 것을 계기로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게 되었다는 책의 주인공처럼 브라운도 지금까지 만든 모든 책에서 셰이프 게임(그림 완성 놀이)을 했다고 한다.
앤서니 브라운과 협력한 아티스트들의 인터뷰 영상 /김서진 기자
NFT 작품 /김서진 기자
셰이프 게임은 한 사람이 하나의 모양을 만들면 다른 사람이 그 모양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일종의 그림 놀이다. 셰이프 게임의 묘미는 비정형의 도형과 작가의 개성이 만나 각기 다른 작품으로 완성되고 이를 접하는 모두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뜻밖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 있다. 이번 컬레버레이션은 각기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앤서니 브라운과 작품 세계를 교류하고 이를 NFT 작품으로 선보인다.
'The Three Wishes' /김서진 기자
2022년 출간 예정인 앤서니 브라운의 신작 'The Three Wishes'은, TV를 보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램버트, 힐다, 로즈 앞에 나타난 신비한 요정의 이야기를 그린다. 요정은 세 친구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사라진다. 셋은 기뻐하지만 배가 고팠던 램버트가 커다란 바나나를 먹고 싶다고 말하는 바람에 첫번째 소원을 써 버리고 만다. 화가 난 힐다는 램버트의 코에 바나나가 붙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이것 역시 실현되어 버린다. 두 가지 소원을 낭비한 세 친구에게 과연 남은 하나의 소원은 무엇일까.

앤서니 브라운은 오래된 전래 동화인 '세 가지 소원'에서 영감을 얻었다. 흔히 알려진 이야기는 요정이 가난한 나무꾼 부부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하며, 부부는 모든 소원을 허무하게 낭비하고 결국 현실에 충실하며 행복하게 살게 됐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브라운은 특유의 초현실적인 접근과 위트 있고 따뜻한 그림체를 활용해 전래동화의 새로운 재해석을 선보인다.
전시 끝자락엔 어른과 아이를 위한 셰이프 게임 체험존이 마련되어 있다 /김서진 기자
앤서니 브라운의 책은 발간될 때마다 베스트셀러 기록을 세우며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따듯하면서 정교한 일러스트레이션과 어린이의 눈높이로 감성을 어루만지는 스토리텔링 방식은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큰 공감을 얻는다.

이토록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이기에 앤서니 브라운의 책을 읽으며 자란 청소년, 성인 관객은 아련한 향수와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으며 난생 처음으로 전시장을 방문하는 어린이 관객들은 앤서니 브라운이 펼쳐 보이는 상상으로 가득 찬 창의적인 영감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원더랜드 뮤지엄展> /김서진 기자
이번 전시에서는 어린이는 누구나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앤서니 브라운의 예술적 신념에 영감을 받은 교육적이고 창의적인 예술 체험 프로그램 운영을 예술의전당 1101 어린이라운지와 연계 진행할 예정이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