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열정 뿜는다는 혈중알코올농도 0.05%?

동아일보
동아일보2022-01-18 1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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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나더 라운드’에서 고교 교사 마르틴(마스 미켈센)이 해변에서 졸업생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혈중알코올농도 0.05%인 사람은 0%인 사람보다 창의적이고 열정적이며 현명할까. 주변을 의식하거나 갖가지 고민을 하느라 짓눌렸던 잠재력은 0.05%의 농도일 때 폭발할 수 있을까.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노르웨이 철학자이자 의사인 핀 스코르데루의 ‘0.05% 예찬론’을 직접 실험해 보는 이들의 이야기다. 와인을 두 잔가량 마신, 취함과 취하지 않음의 경계선이 인간을 더 나은 삶으로 이끌 수 있는지를 검증해 보는 내용이다.

중년의 코펜하겐 고교 교사 4명의 수업은 하나같이 ‘노잼’.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기 일쑤다. 그러나 이들이 술을 마시자 수업 분위기는 180도 바뀐다. 각종 자료를 동원하고 자신감까지 더한 수업에 학생들은 빠져든다. 약간의 취기는 소심한 언변을 유창하게 만들고 교실에서는 연신 웃음이 터진다.

교사들은 0.05%를 넘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나만의 농도’를 찾아 나선다. 역사교사 마르틴(마스 미켈센)에게 최적의 농도는 0.1%. 열정 없는 수업으로 학부모로부터 항의까지 받았던 그는 일약 인기 교사가 되고 소원했던 아내와의 관계도 회복한다. 젊은 시절의 활력과 자신감을 되찾은 이들은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영화는 적당한 음주는 인간에게 마법 같은 힘을 주고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걸 부각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적당한 음주’에 한해서다. 이들이 혈중알코올농도 최고치를 실험해 본다며 짐승처럼 술을 퍼마신 다음 날의 결과는 비참하기 짝이 없다. 음주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다뤘지만 무게 추는 음주가 인생에 얼마나 밝은 빛을 비추는지에 조금 더 기울어져 있다.

술과 인생을 깊이 있게 고찰한 이 영화는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 장편영화상을 받는 등 해외 유명 영화제를 휩쓸었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할리우드 판으로 리메이크하기로 해 화제가 됐다.

혈중알코올농도별로 취한 상태를 세밀하게 표현한 배우들의 연기는 관전 포인트. 마스 미켈센이 선보이는 해변 음주 댄스신은 적당한 술이 인생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평소 주당이 아니더라도 내 안에 숨은 창의력과 열정을 끌어내기 위해 ‘낮술’을 마시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19일 개봉.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