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원짜리 킹스맨 우산 vs 만 원짜리 깜찍이 우산

29STREET
29STREET2021-04-13 13: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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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주고 산 기억이 없는데 저절로 집에 생겨나는(?) 물건들이 있다. 메모지, 일회용 물티슈, 수건, 그리고 우산이다. 개업 기념품으로 자주 쓰이는 이 물건들은 가게나 브랜드 이름을 전면에 대문짝만하게 써붙인 채 실용성을 무기로 자연스레 집 안으로 침투한다. 특히 우산이 그렇다. 예쁘지는 않지만 빗물만 잘 막아주면 그만이다. 깜빡 하고 버스에 놓고 내렸어도 그리 마음 상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집에 가면 몇 개 더 있고, 정 급하면 편의점에 뛰어들어가서 사면 되니까.

그래도 가끔 예쁜 우산을 쓰고 싶은 날이 있다. 종일 우중충하고 으슬으슬한 날, 혹은 정반대로 묘하게 산뜻한 보슬비가 내리는 날. 평소와 다른 감성이 필요한 이런 날들을 위해 편의점 로고 박힌 우산 말고 좀 그럴싸한 물건을 갖춰 놓고 싶다. 극한의 클래식 취향과 극한의 팝 취향을 동시에 가진 에디터 LEE의 눈에 쏙 들어온 우산들을 소개한다.
클래식 우산 (저절로 겸손해지는 가격 주의)
사진=파소티
사진=파소티
사진=파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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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소티 / 맨럭셔리 빈티지 팬더 자동우산 MX961K1V 블랙 / 43만 7000원

“엄마, 밖에 비 오는데 제 ‘맨럭셔리 빈티지 팬더 자동우산 MX961K1V 블랙’ 못 보셨어요?”  기나긴 모델명을 자랑하는 우산이다. 이탈리아 고급 우산 브랜드 파소티에서 나왔으며, 가격만 봐도 일반 공산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1956년부터 우산 명장들이 수작업으로 만들어 온 브랜드라고 한다.

우산 손잡이에 표범(panther) 머리통이 붙어 있는 모양새가 참 특이하다. 20세기 초 배경 추리소설 속 사연 많은 신사가 이 우산을 들고 다니다가 중요한 순간에 무기로 쓸 것 같은 이미지라고나 할까. 20세기 초 사람도 아니고 사연 있는 신사도 아니지만, 왠지 이 우산을 들고 다니면 마치 시대극 주인공인 양 ‘덕후 감성’에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표범머리 말고도 새 머리, 곰 머리, 푸들 머리, 보석 장식 등 다양한 콘셉트 우산들은 스왈로브스키 크리스탈로 장식해 더 돋보인다. 한국 공식대리점이 있어서 온라인으로 편하게 살 수 있다. 가격은 편하지 않다. 돈 많이 벌면 다시 올게요.

사진=Swaine Adeney Brigg
사진=Swaine Adeney Brigg
사진=Swaine Adeney Bri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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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인 애드니 브리그 / 토마스 브리그 콜렉션 – Stripped Cherry / 395파운드

고풍스럽고 우아한 우산 하면 킹스맨 우산을 빼놓을 수 없다. 스웨인 애드니 브리그(Swaine Adeney Brigg)가 바로 킹스맨 우산을 만든 영국 회사다. 일 년 내내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영국에서 만든 우산이라고 하니 무언가 더 ‘진정성’ 있게 느껴진다. 영국 왕실에 납품도 하는 브랜드라고. 가격은 395파운드, 우리 돈으로 60만 원이 넘는다(돈 많이 벌면 다시 올게요 222).

에디터 LEE의 눈에 들어온 모델은 체리목을 다듬어 만든 우산이다. 우산 손잡이 금속장식은 도금이 기본이고 은(스털링 실버)으로 변경할 수도 있다. 깔끔한 단색 우산(천 색깔도 변경 가능)이지만, 오히려 이렇게 단순한 디자인일수록 고급스러운 디테일의 차이가 크다. 전부 주문제작이며 우산 천 부분도 전통방식 그대로 ‘실크’로 바꿀 수 있다. 손잡이 장식을 은으로 바꾸고 천도 실크로 변경해서 커스텀하면 770파운드(약 119만 원)가 된다. 돈 많이 벌면... 로또 맞으면 사러 올게요. 안녕!

귀여운 우산 (내 통장이 감당 가능한 가격)
사진=위글위글
사진=위글위글
사진=위글위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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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글위글 / 귀여운 캐릭터 투명우산 ‘Smiles’ / 1만 5100원

고오급 우산을 보고 의기소침해진 어깨를 펼 시간이다. 국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위글위글에서 귀엽고 가격도 적당한 우산을 팔고 있다. 미소 짓는 하얀 꽃, 어딘가 하찮아 보이는 호랑이, 둥그렇고 귀여운 곰돌이와 무지개 무늬 등 단순해 보이지만 잘 보면 디자이너의 고뇌가 느껴지는 콘셉트들이다. 밝고 알록달록하며 살짝 유치한 느낌마저 드는 디자인이 볼수록 매력 있다. 축 처지고 우울한 날 발랄하게 들고 나가면 기분전환이 좀 될 듯. 

어린아이 우산 같아서 다 큰 성인이 쓰기는 민망할 것 같다고? 원래 키치(kitsch) 스타일은 그런 맛에 쓰는 겁니다. 나잇값 안 하는 취미, 남들 고정관념 깨 주는 취미가 있는 분께 적극 추천.

사진=토스
사진=토스
사진=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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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totes) / totes(토스) 8살 버블 돔형 수동 장우산 / 3만 7000원

솔직히 고백합니다. ‘8살’ 이라고 해서 설마 8세 어린이용인가, 이게 예뻐 보이다니 내 취향이 그렇게까지 유치했던가 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만약 같은 의문을 품은 분이 있다면 부끄러워 마시기를). 모델 컷을 보니 다행히 다 자란 어른 여성이 우산을 들고 있다. 우산살이 8개인 모델이라는 뜻이었다(우산살이 더 촘촘하게 배열된 ‘16살’ 모델도 있다).

투명 비닐에 동그라미들이 콕콕 찍혀 있는 디자인이 제법 귀엽고 산뜻하다. 일반 우산처럼 넓적한 파라솔 형태가 아니라 양 옆이 아래로 깊게 모아진 돔(dome) 모양이라 어깨에 빗물도 덜 튈 것 같다. 토스는 미국 우양산 브랜드로, 디자인은 미국에서 하고 생산은 중국 공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에디터 LEE dla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