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고신분 여성만 입을 수 있던 옷 '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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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STREET2020-10-28 16: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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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비단을 수놓은 꿩과 오얏꽃 무늬, 커다란 머리장식, 금은보화로 만들어진 장신구… 보기만 해도 눈이 둥그래질 정도로 화려한 예복 ‘적의’. 이렇게 멋진 예복을 입을 수 있다면 마냥 행복할까요? 

사실 이 옷의 주인은 조선의 마지막 왕비인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였습니다. 격동의 시기에 일본에서 시집 와 대한제국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던 역사의 증인 영친왕비. 그는 언제,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적의를 입었을까요. 호화롭지만 그만큼 무거운 책임이 담긴 옷 적의에 담긴 이야기를 국립고궁박물관 주하나 학예연구원에게 들어보았습니다.
적의는 누가, 언제 입었던 옷인가요.
“적의는 조선왕실과 대한제국 황실 최고 신분 여성이 입었던 옷입니다. 나라에 큰 제사가 있거나 혼례를 올릴 때 입었던 예복이고요. 이 옷은 한자로 꿩무늬, 즉 ‘적문(翟紋)’이 새겨진 옷이라 해서 적의라고 불립니다.

왕실에서 착용하던 의상은 신발부터 관모, 머리장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엄격한 법식에 따라서 만들어지고 사용됐습니다. 최고신분 여성의 권위를 나타내는 적의도 그만큼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옷입니다. 꿩은 품위 있는 자태와 봉황에 견줄 수 있는 화려한 모습을 뽐내는 동물인데요. 서로 마주보는 꿩무늬는 부부 사이의 애정과 화합을 의미합니다.“

영친왕비는 언제 이 적의를 입었나요.
“현재 남아있는 적의는 세 점인데, 그 중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적의는 ‘이방자 여사’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대한제국 영친왕비(1901~1989)가 착용했습니다. 일본 황족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의 장녀로 도쿄에서 태어난 이방자 여사의 일본 이름은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인데요. 1920년 영친왕과 일본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2년 뒤인 1922년 일본에서 귀국한 영친왕비가 순종과 순정효황후를 처음으로 알현했던 근현례식 때 적의를 입고 있는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왕실 의상에는 모두 엄격한 법도가 있습니다. 적의에 꿩무늬가 많을수록 신분과 권위가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순정효황후가 입은 적의에는 꿩무늬가 12줄(154쌍) 있고, 영친왕비 적의에는 9줄(138쌍) 장식되어 있습니다.”
영친왕비 적의(좌), 1922년 근현례식 당시 영친왕 부부(우). 사진=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사진=국립고궁박물관 제공
1945년 일본이 패전했지만 영친왕 부부는 이승만 정부의 반대 때문에 귀국하지 못하고 일본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한국인, 한국에서는 일본인 취급을 받던 영친왕 부부는 1963년에야 비로소 귀국하여 창덕궁 낙선재에 기거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살게 된 이방자 여사는 예전부터 남편과 함께 구상하던 사회봉사를 시작했는데요. 1966년에는 장애인 재활을 위한 자행회를, 1967년에는 명휘원을 설립하며 봉사에 힘을 쏟았습니다. 1970년 영친왕이 타계한 뒤에도 지적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자혜학교를 설립하고 영친왕기념사업회를 출범하는 등 사회봉사에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도 글씨와 그림 작품을 만들어 그 수익으로 재단 운영비를 대기도 했습니다.

적의를 입을 때 함께 착용했던 대수머리. 대수머리는 가체와 각종 비녀장식 등 총 11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적의 배접지가 발견된 창덕궁 대조전 동쪽 온돌방. 사진=국립고궁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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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착용하던 장신구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적의는 중국 명나라의 복식제도를 계승해서 처음에는 붉은색 비단으로 만들었습니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뒤에는 황제국이 되면서 짙은 파란색 옷으로 바뀌었고요. 영친왕비 적의에는 꿩만 있는 게 아니라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도 있습니다. 어깨와 가슴 부분에는 황제국임을 나타내는 다섯 발톱의 오조룡을 수놓았습니다.

적의 안쪽에는 중단을 입고, 허리에는 옥대·대대·수를 착용했습니다. 옥을 엮어서 만든 패옥과 무릎을 가리는 폐슬도 장식했고요. 어깨에 걸어 내리는 하피와 양손으로 잡는 규, 말과 석이라 불리는 양말과 신발까지 한 세트입니다. 머리에도 대수머리와 갖가지 비녀를 착용했습니다.“

이런 귀한 옷은 아무나 만들 수 없었을 것 같아요. 누가 제작했나요?
"적의를 비롯한 왕실 옷과 장신구들은 따로 기관을 두어 제작하고 관리했습니다. 조선왕실 때는 상의원, 대한제국에서는 상의사라는 관청에서 맡았고요. 2011년 창덕궁 대조전을 수리하던 도중 장판지 뒷면에서 적의를 만들 때 썼던 옷본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지에 곱게 색칠한 꿩무늬가 그려진 옷본인데요. 적의의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만 입는 옷이다 보니 평상시에 적의를 어떻게 보관했는지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왕과 왕세자의 최고 예복을 주칠과 흑칠 상자에 넣어서 상의원 부속 건물인 ‘면복각’에 보관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적의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귀중히 보관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백 년 전 신분사회에서 가장 높은 여성만이 입을 수 있었던 아름다운 옷 적의. 아픈 역사 속에 세월은 흘러가고 이 옷의 주인이었던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도 벌써 30여 년 전 타계했으나 적의는 아직도 선명한 색채를 뽐내며 우리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디터 LEE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