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창고지기, 대통령이 되다

마시즘
마시즘2020-10-26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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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는 역사상 가장 평등한 음료다.
승자를 위하여, 또는 패자를 위로하며 우리는 같은 맥주잔을 들기 때문이다.
여기 패자를 위한 맥주가 만들어지는 곳이 있다. 시골의 작은 양조장에 찾아온 그는 맥주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적어도 1974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더욱더. 그는 양조장 일꾼을 모집한다는 이야기에 이곳을 찾아왔다. 그는 몸을 떨며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바츨라프 하벨
당국의 요주 인물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vaclavhavel-library.org)
1,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체코슬로바키아는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 하벨은 공산당의 집권을 풍자하는 극을 쓰는 작가였다. 1968년 민주주의의 꽃이 펴졌던 ‘프라하의 봄’이 일어날 때까지 그는 글의 힘을 믿었다. 하지만 프라하의 봄은 소련에서 내려온 탱크에 의해 꺾인다. 하벨의 글은 금지가 되었다. 아니 그들이 막지 않아도 그의 펜은 이미 꺾인 상태였다. 그는 글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양조장 사람들은 술렁였다. 뽑아 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독기 가득한 청년을 앞에 두고 양조장 총감독은 웃으며 환영한다. “우리 양조장에는 집시들도 있다네.”
내가 하는 일은
맥주를 망치는 일이었지
하벨은 자신의 양조장 생활을 이렇게 추억한다. 그의 첫 임무는 맥주 창고지기. 홉과 보리자루를 나르고, 맥주통을 옮기는 일이었다. 100리터짜리 맥주통은 비어있어도 무게가 94KG이었다. 허약한 하벨이 이를 옮길리는 만무했다. 그는 이후에 양조장 내부 여과장치를 담당했는데, 진정한 맥주의 맛을 알게 되었다. 맥주는 여과장치에 들어오기 전의 상태가 가장 맛있다는 것을.

양조가 막 끝난 맥주에는 효모가 아직 살아있다. 때문에 향이 더욱 풍부하다. 하지만 통에 넣고 장거리 이동을 하다 보면 폭발할 염려가 있기에 살균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일이 맥주를 망친다고 말했다. 여하튼 양조장 생활 덕분에 그는 시와 연극, 정치를 잊어갔다. 동료들 역시 하벨은 조용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그가
양조장에 사표를 낸다
당국에서 파견된 비밀경찰 때문이다. 공산당은 하벨이 양조장에 취직을 했을 때부터 그를 고용하지 말 것을 통보했다. 하지만 양조장에서 그에 응하지 않자 비밀경찰을 보내 내부 녹음기를 설치하고 그를 감시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자기보다 무거운 맥주통을 나르느라 끙끙대는 하벨의 신음소리밖에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하벨도 비밀경찰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폭설이 내리는 날, 비밀경찰들이 그의 집 주변 도로의 눈을 치우지 못하게 한 것이다. 걸어서 출근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정확한 거리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월급의 3분의 1을 기름값에 썼다고 하면 예상이 갈 것이다. 결국 그는 사표를 낸다. 그리고 다시 펜을 잡는다.
하벨의 복귀작이
세상에 나온다
(연극 관객, 이미지 출처 : Michal Hančovský)
1975년 겨울이 잦아들 때였다. 하루, 이틀 만에 작성한 단편극의 이름은 ‘관객(Audience)’이었다. 이야기에는 양조장에 취직한 지식인 바넥과 맥주를 좋아하는 상사가 등장한다. 상사는 높은 곳으로부터 바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상사는 바넥에게 자신을 알아서 감시하고 보고서를 쓰도록 부탁한다.

지하에서 알음알음 퍼져나가는 관객은 시골 양조장 노동자의 손까지 들어간다. 그들은 단번에 알았다. 극에 등장하는 바넥과 상사가 누구를 말하는지.
양조장 일꾼
대통령이 되다
(이미지 출처 : http://madrid.czechcentres.cz)
창작열을 되찾은 하벨은 민주화 운동의 선구자가 된다. 그는 언제나 프라하의 맥주집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구상을 했다. 프라하의 봄이 피우지 못한 꽃을 피우는 것. 그 꿈은 1989년 11월에 이루어진다.

자유와 민주를 외치는 군중이 프라하 광장에 모였다. 처음에는 배우와 학생들이 모였고, 나중에는 국민의 75%가 모였다. 그들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민주화 운동을 성공시켰다. 우리는 이를 ‘벨벳혁명’이라고 부른다. 이 운동 한가운데에 있던 하벨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이 된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경호원 몰래 술집을 가곤 했다. 첫 미국 순방 때도 그렇다. 일과 후에 술집에 들러 조용히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한 미국인이 옆에 앉아 물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하벨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왔다고 말했지만 미국인은 낯선 나라를 알지 못했다. “아 체코…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지요?”

하벨은 자신이 체코의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폭소를 터트렸다. 곧 대답이 마음에 든다면 하벨에게 맥주를 사주었다. 그리고 술집 사람들에게 즐겁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체코 대통령과 맥주를 나눈다고요 여러분!”
필스너 우르켈
살균 없이 생맥주로
(이미지 출처 : http://pilsnerurquell.com)
반대로 체코에 방문한 인사들은 언제나 하벨의 단골 맥주집에 향했다. 빌 클린턴이 그랬고, 미 국무장관이 그랬다. 롤링스톤즈도 하벨과 함께 단골 술집에 향했다. 하벨의 옛집에서 가까운 술집이었다.

하벨이 대접한 맥주는 체코 최고의 맥주이자 과거 체코 시민들이 만들어낸 라거의 원조 맥주였다. 당연히 진정한 맥주 맛을 보여주기 위해 여과처리가 되기 전 생맥주만을 고집했다. 이 맥주의 이름은 플젠스키 프라즈로이. 우리에게는 ‘필스너 우르켈’이라고 불리는 그 맥주다.

프라하의 봄과 벨벳혁명. 실패할 때 들었던 그 술이, 성공 후에도 여전하다는 것. 바츨라프 하벨에게 맥주는 음료 이상의 동반자였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맥주를 좋아하는 이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건배!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맥주만은 곁에서 영원하기를!

- 참고문헌 : <그때, 맥주가 있었다> 미카리싸넨, 유하타흐바나이넨 지음
- 메인이미지 : http://www.vaclavhavel-library.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