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과학을 만났을 때, ‘키네틱 아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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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2020-08-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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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4차 산업혁명의 포인트 중 하나는 ‘융합’이다. 더 이상 하나만을 전문적으로 알아서는 안 되며, 여러 분야가 함께 조화를 이뤄 협력해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포인트다. 이는 예술계도 마찬가지다. 캔버스에 그려지는 그림, 깎아 만드는 조각도 필요하지만, 예술도 과학기술과 결합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 광장에 위치한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해머링맨’. 작품 자체가 움직이는 예술작품인 ‘키네틱 아트’ 중 하나다 / 세화미술관 홈페이지
키네틱 아트(Kinetic Art)는 ‘움직이는 예술’이라는 의미로, 물리적인 힘이나 자극을 주어 움직이는 예술을 말한다. 색채와 선으로 움직임을 표현하는 옵티컬 아트(Optical Art)와도 비슷한 개념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키네틱 아트는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키네틱 아트 작품에는 ‘과학’의 원리가 더해진다.

키네틱 아트의 시작은 각종 전문서적이나 논문에 따라 언급하는 시기가 다르지만, ‘현대예술과 키네틱아트에 관한 연구-비디오아트를 중심으로(배영애, 2008)’에 따르면, 기계, 속도, 힘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미학을 제시하며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전위예술 운동인 미래주의, 1920~30년대 추상적 경향을 띠며 기계주의를 지향했던 러시아 구성주의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pixabay
가장 처음으로 등장한 작품은 변기 오브제로 유명한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프랑스 미술가 마르셀 뒤샹이 1913년에 만든 ‘자전거 바퀴’라고 한다. 등받이 없는 흰 의자에 자전거 바퀴 하나를 붙여놓은 형태의 작품은 ‘조각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작품이었다고 한다.


관람객이 참여하거나, 스스로 움직인다


키네틱 아트의 종류와 범위는 굉장히 넓다. 스스로 움직이며 운동을 하는 작품, 자극을 주어 운동을 하며 키네틱 효과를 만드는 정적인 작품, 빛을 투과하는 작품, 관람객이 참여하는 작품 등으로 나뉜다.

단순히, 어떤 형태를 가진 작품의 움직임 뿐만 아니라 작품 주변의 환경, 빛, 소리, 색채 등도 포함되어 기기를 사용하는 비디오아트, 컴퓨터아트, 레이저아트, 홀로그램아트 등도 포함될 수 있다.
나인블럭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반고흐 인사이드. 반고흐의 작품을 음악, 미디어와 결합해 표현해 놓았다 / www.dfdplus.co.kr
최근 늘어나고 있는 참여형 전시나 기존의 회화작품과 미디어 기술의 결합으로 새롭게 즐길 수 있는 방식도 넓은 의미에서 키네틱 아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키네틱 아트의 대표 작가들

마르셀 뒤샹이 키네틱 아트의 문을 연 선구자라면, 그 뒤를 이어 유명해진 작가들로는 미국의 조각가인 알렉산더 칼더, 네덜란드 출신의 설치미술가 겸 키네틱 아티스트인 테오 얀센, 그리고 비디오 아트를 창시한 한국의 백남준을 언급할 수 있다.
알렉산더 칼더의 다양한 작품들 / 칼더 재단 홈페이지(www.calder.org)
미국의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는 키네틱 아트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부모는 조각가, 화가일 정도로 타고난 피부터 예술의 끼가 있었다. 11살 때, 첫 조각품으로 논쇠를 구부려 만든 개와 오리를 부모에게 선물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예술활동을 시작한 것은 1923년. 이전에는 공학을 전공해 자동차 엔지니어, 선박 보일러실 소방관 등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그는 뉴욕의 아트스튜던츠 리그를 다니며 예술 공부를 했으며, 다양한 재료로 서커스 공연을 연출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후 파리에서 가까이 지내던 화가 몬드리안에 영감을 얻어, 그의 작품을 움직이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1935년부터 움직이는 조각 ‘모빌’을 제작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대형 조각품이 인기를 끌면서 그의 작품이 여러 곳에 전시되기도 했다.
테오 얀센의 키네틱 아트 작품인 해변동물(Strandbeest)/ 테오 얀센 공식 홈페이지(www.strandbeest.com)
네덜란드 설치미술가이자 키네틱 아티스트인 테오 얀센도 예술가이기 전에 물리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예술활동을 하며 키네틱 아트에 집중한 것은 1990년이다. 그는 예술과 기술, 생물학과 공학의 결합을 가장 중시하며 그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 BMW 자동차 광고에도 그의 작품이 등장했으며, 그는 광고에서 “예술과 공학의 장벽은 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해변동물’ 또는 ‘해변괴물’은 동력을 추진하는 엔진이나 모터가 없이 바람을 이용해 저절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주 재료는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 튜브와 끈, 고무링을 사람의 관절처럼 연결해 다소 기이한 동물의 형태를 만들고, 돛을 달아서 바람이 불면 움직이는 방식이다. 마치 발이 많은 지네가 걷는 듯한 모양이다. 그의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그의 작품이 해변에 주로 전시되어 있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테오 얀센의 키네틱 아트 작품인 해변동물(Strandbeest)/ 테오 얀센 공식 홈페이지(www.strandbeest.com)
그는 지난 2009년과 2010년 우리나라에도 방문해 작품전시를 열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지만, 바람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친환경적인 작품이라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2009년에는 유엔환경계획(UNEP) 제정한 에코 아트 어워드(Eco Art Award)를 수상하기도 했다. 아마도 예술과 기술의 결합 이전에 자연과 생명 존중을 중시하는 그의 철학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백남준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 ‘다다익선’. 2년 전부터 가동이 중지됐으며, 현재 모니터 교체 작업이 진행 중이다. 2022년쯤 다시 공개될 예정이다 / 위키미디어
한국의 예술가 중에서 뽑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백남준이다. 키네틱 아트의 한 부분이라고 하는 비디오 아트를 창시한 예술가로, ‘다다익선’하면 알 정도다. 그 역시도 처음에는 음악을 전공했던 사람이었다. 1952년 일본 유학을 하면서 미술사학으로 전공을 정했지만, 작곡과 음악사학을 공부했을 정도다.

그가 예술에 있어 실험적인 시도를 접한 것은 1958년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를 만나면서부터다. 그에게 영감을 얻고, 1959년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부면서 다소 과격한 예술을 보여주었다. 이후 예술의 표현 범위를 점점 넓혀가며 음악, 퍼포먼스, 비디오를 결합한 작품을 선보였으며, 1974년 ‘TV 정원’에서 모니터를 정원에 핀 꽃처럼 표현하면서 비디오 설치, 설치 미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백남준 작가의 첫 번째 로봇 작품인 ‘로봇 K-456’ / 백남준아트센터 홈페이지
그의 첫 로봇 작품인 ‘로봇 K-456’는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와 소리를 결합한 미디어 아트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작품은 20채널로 원격 조정되는 로봇으로, 일본 엔지니어들과 공동 제작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No.18 B플랫’의 쾨헬 번호를 따서 이름 붙인 로봇은 거리를 활보하며 라디오 스피커가 부착된 입으로는 존.F.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을 재생하고 마치 배변을 하듯 콩을 배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키네틱 아트 교육은

키네틱 아트는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예술이기도 하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주요 핵심은 학생들이 자신의 끼를 발견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것을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학생의 창의적 역량을 개발시킨다는 목적도 있다. 이에 요즘 학교에서는 여러 교과가 융합되어 진행되는 STEAM교육이 주목받고 있다.

교사연구회 사이에서도 STEAM교육에 키네틱 아트를 도입하는 시도도 있었다. ‘키네틱 아트를 도입한 STEAM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적용(지경준‧홍은주, 2015)’에 따르면, 실제 초등학교에서 과학과 미술 과목을 융합해 진행한 수업 사례와 그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각 학교에서는 과학, 수학, 미술 등이 결합된 STEAM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STEAM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 / 경북도교육청
수업은 키네틱 아트의 종류라고 할 수 있는 모빌, 빛과 색, 회전, 에너지 등을 주제로 관련된 원리와 이론을 이해하고, 그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어보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수업에서 만든 것을은 전시회를 통해 다시 한번 과학적 원리와 예술적 요소를 되짚어보게 했다.

그 효과 또한 놀라웠다. 수업을 시연해 본 교사들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에 대한 반응을 인터뷰했는데, “과학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만들 수 ㅇ있어 좋았다”, “창의성이 발달되는 기회였다”, “친구들과 친해지며 협동할 수 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교사들은 키네틱 아트를 도입한 수업을 통해 ▲융합적 소양 능력이 유의미하게 향상되었고 ▲전통적 수업보다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실제 산출물 제작을 통해 과학지식을 이해하는데 도움되었으며 ▲전시회를 통해 다른 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STEAM교육의 효과를 알릴 수 있었고, 그 반응 또한 긍정적이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만큼 키네틱 아트가 교육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교사들도 학생들이 참여하는 예술교육이 될 수 있도록 연수에 활발히 참여한다 / 전남도교육청
이 외에도 각 교육청에서도 예술교육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교사연수도 진행되고 있다. 전라남도교육청은 8월 5일부터 9월 5일까지 학교예술교육 강화와 모든 학생의 예술체험 생활화를 위해 이번 활동 중심 예술수업 연수프로그램인 ‘예술로 꿈꾸는 선생님’을 운영한다.

이번 연수는 2018년 교육부에서 발표한 학교예술교육 중장기 계획에 발맞춰 ‘예술적 감수성으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행복한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마련됐다.

연수 프로그램에 주목할 점은 ‘키네틱 아티스트’다. 학생들의 예술 수업 참여 기회를 넓히겠다는 취지가 담겨있다. 이 외에도 ▲사운드 디자이너 ▲예술로 수업해요(미적체험-소리) ▲행복한 미술체험 등 7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연수는 교사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교사는 “평소 관심 있던 예술 분야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고, 체험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해서 만족도가 높았다”며 “참여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1개 밖에 참여하지 못해 이런 연수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교육청은 모든 교원이 교육과정에서 실천 가능한 예술교육 역량을 강화하고 학생의 예술체험 기회확대와 학생중심의 예술수업 혁신을 위한 예술교육 내실화를 이룬다는 방침이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키네틱 아트

키네틱 아트는 현대미술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으며, 한번쯤 만들어봤을 법하다.
모빌 / pixabay
영화 ‘아이언맨’에도 등장한 스윙스틱. 진자운동을 하며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 소품이다 / 아마존닷컴 제품사진
아기들이 가장 처음 접하는 장난감인 ‘모빌’은 균형을 이루며 일정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키네틱 아트 작품이다. 알렉산더 칼더가 가장 많이 제작한 것이 모빌이기도 하다. 모빌은 집중력을 높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자극을 주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진자 운동을 보여주는 소품도 많다. 영화 아이언맨에도 등장했던 스윙스틱은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제격인 키네틱 아트다. 인터넷에 키네틱 아트를 검색하면 다양한 형태의 소품을 볼 수 있다.
국립이천호국원의 태극기 문양 바람개비 / pixabay
바람개비 역시 바람의 힘을 이용해 움직이는 것으로, 어릴적 한번쯤 만들어본 장난감이기도 하다. 이렇게 흔히 볼 수 있는 바람개비는 하나의 작품이 되기도 한다.

국립이천호국원에도 태극기 문양의 바람개비가 설치되어 있으며,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는 김언경 작가의 ‘바람의 언덕’이라는 작품이 설치됐다. 이 작품은 3000여개의 색색깔의 바람개비가 무리지어 있는 모습으로, 공원을 찾은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주면서 평화누리 공원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대표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렌티큘러 방식을 도입한 서울시의 소녀상 입체 포스터 / 서울시
어릴 적 가지고 있던 책받침이 좌우, 상하로 움직일 때마다 그림이 변하는 것을 봤을 것이다. 이를 렌티큘러라고 한다. 렌티큘러 필름의 각 면에 다른 그림을 인쇄해 움직일 때마다 다른 그림이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관람객이 참여하는 키네틱 아트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렌티큘러는 광고 이미지에도 많이 활용된다. 서울시는 지난 2019년 남산 ‘기억의 터’ 홍보를 위해 소녀상 입체포스터를 제작했는데, 여기에 렌티큘러 방식을 도입했다. 명동역과 충무로역에서 기억의 터에 이르는 길에 부착했다.

이 포스터는 보는 각도에 따라 소녀상이 점차 사라지며 빈 의자만 덩그러니 남고 ‘기억하지 않으면 진실은 사라집니다’라는 문구가 나타나 우리 사회의 아픈 역사를 잊지 말라는 당부를 전하며 경각심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에 설치된 해머링맨 / 위키미디어
광화문을 지나다닌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봤을 법한 이 조각상은 ‘해머링 맨’이다. 미국의 조각가 조나단 보로프스키가 제작한 키네틱 아트 작품으로, 우리나라 외에도 세계 11개 도시에 설치됐다. 한국에는 7번째로 설치됐으며, 크기는 22m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35초에 한 번씩 팔이 움직이며 망치질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토‧일요일‧공휴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망치질을 하며, 노동과 삶의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

키네틱 아트는 이름처럼 다소 정적이었던 미술작품이, 미래에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보여준다. 움직임과 입체감을 더해도 예술이 전해주는 감흥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과학이라는 분야와 결합하면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해준다. 또한, 우리의 일상과 멀지 않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종이와 가위, 막대기만 있으면 바람개비를 만들 수 있고, 실이나 철사만 있으면 모빌을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마르셀 뒤샹처럼 기존에 있는 기성품으로도 움직이는 예술을 만들 수 있으니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