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가 원래 금보다 비쌌다?'...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인도 향신료

바이라인2020-06-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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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자극의 맛과 향을 가진 향신료, 인도 식문화는 물론 유럽의 역사도 바꿔
다양한 종류와 쓰임가진 향신료, 현대의 우리에게도 소중한 식재료
다양한 향신료 / pixabay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인도 요리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코와 혀를 강하게 자극하는 향신료가 떠오른다. 한국 음식도 맵고 자극적인 것들이 꽤 있다. 하지만 한국인이 맵게 먹은 것이 오래된 것은 아니다. 인도 음식의 자극적인 맛과 향은 역사가 있다. 인도인들이 음식에 강한 향신료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도는 상당히 더운 나라이다. 그렇기에 바질, 커민, 고추, 머스터드, 계피, 강황, 겨자, 후추 등등 갖가지 향신료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이었다. 또한 더운 기후로 음식이 금방 부패하기 때문에 이 향신료를 넣어주는 것은 필수였다. 그렇기에 기후가 비슷한 다른 남아시아 국가들의 식문화도 향신료를 많이 사용했다.

그런데 특히 서아시아와 남아시아 모든 나라 중에서도 인도의 요리가 가장 널리 알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인도가 굉장히 큰 나라이기 때문이다. 중국 다음으로 많은 13억의 인구와 넓은 영토는 물론 4대 문명의 발상지였으며, 오랫동안 남아시아의 문화와 정치를 선도해온 패자였기에 당연히 이쪽 지역 요리의 대표는 인도가 될 수밖에 없다.

최초로 인도 해상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 / 위키피디아, roque gameiro 그림
인도의 향신료에 열광했던 유럽인들

유럽인들은 인도의 향신료를 얻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 이미 유럽은 그리스와 로마시대부터 인도와 무역을 하여 향신료, 비단, 상아 등을 들여왔다. 물론 이때는 인도와 직접 교역을 하는 경우보다는 중간에 아라비아 상인들을 거치는 경우가 많았다.

'후추'는 오늘날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향신료이다. 근데 중세 이전만 해도 유럽에서는 후추가 금값보다 비쌌다. 15세기 유럽의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도 이 후추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동의 오스만 제국이 육상의 교역로를 막자, 유럽에서는 항해를 통해 돌아 인도로 가서 향신료를 가져오고자 했던 것이다.

후추는 당시 향신료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후추가 유럽인의 입맛을 홀리게 했던 것일까? 아니면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해주어서 였을까? 고작 음식 보관용으로 후추가 사용됐다면, 후추가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차라리 즉석에서 신선한 음식을 구하는 것이 더 낫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로 후추가 귀했지만, 유럽인들만큼 후추에 목숨을 걸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후추는 유럽인들에게 실용적인 양념보다는 일종의 사치품이자 과시용이었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유럽 왕실 혹은 아주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는 후추를 금 항아리 등에 넣어 정성껏 보관했고, 남들에게 이 후추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부를 과시했다. 그리고 정말 필요할 때만 사용했다.

후추를 유럽에 들여오면, 떼부자가 될 수 있었기에 유럽인들은 목숨을 걸고 인도에 가고자 했다. 또한 포르투칼, 네덜란드, 영국 등 수많은 나라가 교역로를 차지하기 위해 다퉜다. 물론 나중에는 아프리카에서도 후추가 재배됐고, 공급이 늘어나 희소성이 줄자 유럽인들은 대신 바질이나 월계수잎 등의 향신료를 찾았다고 한다.

강황 / pixabay
정황 / pixabay
인도의 대표적 향신료들은 무엇이 있을까?

그렇다면 인도의 향신료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을까? 향신료를 정확히 정의하자면 향과 맛이 있는 다양한 식물의 잎, 줄기, 열매 등을 말한다. 식물과 열매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가루를 내서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음식 외에도 방향제, 향수, 의약품, 화장품 등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

앞서 말한 후추는 후추나무의 열매를 가루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후추열매를 따로 통후추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유럽에서도 자체적으로 재배되는 향신료가 있다. 바로 라벤더, 로즈메리 등의 허브이다. 하지만 유럽에는 그 종류가 많지 않았고, 허브의 맛과 향도 인도의 것보다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강황은 카레에 들어가는 맵고 노란 향신료로 유명하다. 전 세계 소비량의 80%가 인도에서 생산되는 만큼, 후추 이상으로 인도의 대표 향신료라고 할 수 있다. 강황은 뿌리줄기 부분을 삶은 다음에 가루낸 것이며, 뿌리덩이 부분은 따로 '울금'이라고 부른다. 또한 진한 노란색을 가진 덕분에 인도에서는 의류를 물들이는 천연 염료로 강황을 사용했다.

역시 잘알려진 계피는 계피나무의 연한 속껍질을 벗겨서 말린 것을 가루 낸 것이다. 독특한 향과 맛으로 다양한 음식에 조미료로 쓰인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계피는 카시아 계피로, 남중국에서 재배되며 색이 진하고 맵다. 반면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재배되는 계피는 실론 시나몬이라고 부른다. 색깔이 더 연하고 단맛이 강한데, 덕분에 요즘 디저트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정향은 계피, 후추와 3대 향신료로 손꼽힌다. 물론 그 향과 맛이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선호되는 향신료는 아니다. 하지만 카레에도 필수적으로 들어가고 해외에서는 고기의 비린내를 없애주거나, 음료, 소스, 방향제 등으로도 활용한다. 또한 은단 등 의약품과 치과용, 향수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되니 생각보다 만능의 향신료라고 할 수 있다.

가람 마살라를 넣은 인도식 카레 / 위키피디아
가람 마살라를 만드는 향신료 / 위키피디아
다양한 향신료를 섞어 만든 마살라, 인도 요리에는 필수품

특히 인도인들은 다양한 향신료를 함께 섞어서 요리에 사용하는데, 이를 마살라(masala)라고 한다. 마살라는 파우더 형태 혹은 페이스트 형태로 만들어진다. 2~3가지를 섞기도 하지만 정말 많으면 수십 가지를 섞을 수도 있다. 대부분 인도 요리에는 이 마살라가 들어가며, 우리나라의 '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람 마살라'는 후추, 커민, 카다멈, 계피, 정향, 고수, 월계수 등을 섞고 가루 낸 것인데, 인도 북부에서 매운맛을 내는 데에 쓰였다. 인도식 커리(카레)에는 이 가람 마살라가 들어간다. 조리 마지막에 소량을 넣으면 되는데, 카레에 더 깊은 맛을 내게 해준다.

'탄두리 마살라'는 북부 펀자브 지방에서 커민, 강황, 생강, 칠리 등을 섞어 만든 것이다. '탄두리 치킨'도 이 향신료를 사용해 만들었다. 흙으로 만든 전통 화덕에 요구르트와 탄두리 마살라를 섞어서, 닭고기에 골고루 바른 다음에, 꼬챙이에 끼우고 구우면서 만든다. 펀자브에서 만든 요리지만, 현재 인도 전역은 물론 세계에도 잘 알려진 요리가 됐다.

탄두리 치킨 / pixabay
'차트 마살라'는 검은 소금과 망고 가루, 후추, 커민, 칠리 등으로 만든 것이다. 챠트(chaat)는 인도에서 발달한 길거리 음식들을 말하기도 하는데, 감자튀김과 차트 마살라를 넣은 샌드위치인 바다 빠브(vada pav), 삶은 감자에 차트 마살라를 양념한 알루 차트(aloo chaat) 등이 있다.

'판치 포론(panch phoron)'은 남부 벵골 지방에서 쓰이는 마살라이다. 겨자씨, 커민, 회향씨, 호로파씨, 니젤라 등 5가지 씨앗을 섞은 것이다. 매콤한 겨자씨, 쌉쌀한 호로파씨과 회향의 달콤함, 커민의 톡 쏘는 향, 니젤라의 매운 향이 섞여, 아주 풍부한 향과 맛이 나타난다. 각종 고기와 야채 요리, 렌틸콩 요리에 넣어서 볶는 용도로 사용한다.

요리의 필수품인 향신료는 인도의 것이 가장 다양하고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이 수많은 향신료들도 인도에서 온 것이 많다. 아울러 인도의 향신료로 인해 유럽에서 대항해 시대가 열릴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세계 역사가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으니, 우리의 일상에 아주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각종 향신료는 독특한 맛과 향을 내어 음식의 풍미를 돋우어 주지만, 우리 몸에도 유익하고 다양한 기능을 한다. 아울러 음식 외에도 아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니 이런 만능의 재료가 없다. 맛있는 것도 먹고, 건강도 챙기려면 인도 음식과 다양한 향신료와 한번 친해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