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청년이 홀몸 노인에게 도시락 배달…코로나 이기는 ‘상생’

바이라인2020-04-23 1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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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발치에서 도시락을 챙겨 가시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뿌듯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합니다.”

4월 21일 오전, 서울 송파구 골목을 누비며 도시락을 배달하던 김지수 씨(28)는 가방에서 도시락 하나를 꺼내 문 앞에 놓고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잠시 뒤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김 씨는 얼른 자리를 떠나 골목 어귀로 몸을 감췄습니다. 다소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어르신이 나와 도시락을 챙겨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다음 김 씨는 다른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직접 접촉을 피하려고 (잘 가져가시는지)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진=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코로나19가 일상의 풍경을 바꿔버린 지금, 서울에서 작지만 소중한 상생의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송파구에서 지난달 말부터 시작된 ‘마을&청년과 함께, 살 만한 송파’ 프로젝트입니다.

취약계증에 식사를 제공하는 이 프로젝트 덕에 식당과 청년, 취약계층이 모두 힘을 얻고 있습니다. 장사가 안되던 식당은 다소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팔고, 일자리 구하기 힘든 청년은 사회봉사를 하며 보수도 얻습니다. 끼니 챙기기 힘든 홀몸노인 등 취약계층도 혜택을 받습니다.

김지수 씨도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취업준비생입니다. 그는 이 날 40분 가량 동네를 돌며 취약계층에 도시락을 배달했습니다. 노크 대신 전화로 배달을 알리면 “덕분에 끼니를 해결했네. 정말 고마워”라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요즘 일자리 구하기도 힘든데 좋은 일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제가 더 감사하죠.”

사진=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송파구는 코로나19이후 취약계층에 제공하던 점심식사를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다 ‘마을&청년…’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참여 대상은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와 전달을 맡을 청년층(만19~34세)입니다. 3인 미만의 작은 동네식당에서 도시락을 만들면 지역 청년들이 일주일에 2번 정도 배달합니다.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은 식당들에게는 이 프로젝트가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송파구에서 돈가스 가게를 운영하는 정종혁 씨(34)는 사태 이후 하루 매출이 절반 이상이 줄어 종업원도 내보내야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월 200만 원 정도의 고정 수입이 생긴 데다 어려운 분들까지 도울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고 고마워했습니다.

사진=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배달하는 청년들도 도움이 된다며 반기고 있습니다. 배달료는 건당 3000원, 교통비는 별도로 제공됩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좋은 일을 한다는 자긍심이 있습니다. 배달에 참여한 30대 김모 씨는 “코로나 19로 실직해서 절망하고 있었는데, 벌이가 크진 않아도 주변 이웃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습니다.

송파구 ‘마을&청년…’ 프로젝트에는 현재 자영업체 9곳과 청년 54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취약계층 260명에게 도시락이 전달됩니다.

송파구 관계자는 “좋은 취지가 알려지며 지금도 40명이 넘는 청년들이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며 “상생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다른 지역도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신지환 jhshin93@donga.com·강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