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명동 부자의 습관 ②] 한 놈만 판다

바이라인2020-04-1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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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사장님은 1985년도 명동 지하상가에서 작은 옷가게로 장사를 시작했다. 명동 지하상가는 지금의 4호선 지하철역과 연결된 길지 않은 상가이지만 당시만 해도 옷가게가 즐비한 유명 상권이었다. 지하상가의 작은 가게에서 사장님의 사모님이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가게 사장님이 캐나다에 이민을 하게 되어 가게를 인수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좋은 기회라고 여긴 사모님이 (J) 사장님에게 인수 이야기를 꺼내었고, (J) 사장님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명동 지하상가는 상당히 장사가 잘 되는 상권이기는 하나 주인이 수시로 바뀌는 곳도 많았다. 하지만 (J) 사장님 가게는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사장님의 가게에는 다른 가게에서 볼 수 없는 주력상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옷을 가지고 오는 공장 중 특히 독특하고 세련된 옷을 만드는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인기가 좋아 새벽잠을 자지 않고 가야지만 옷을 구해올 수 있었다. 사장님은 항상 그 공장의 옷을 가지고 왔으며 주로 20대 여성 고객을 타겟으로 하였다. 장사가 하도 잘되던 시절이라 전철이 끊길 때까지 장사하다 바로 남대문시장에 가서 내일 팔 옷을 떼 오기도 했다. 옷가게이다 보니 아침 일찍 문 열 일은 없었음에도 아침 7시부터 문을 열다 보니 일찍 관광에 나선 일본 관광객들이 아침부터 옷을 사 갔다.

글과 직접 관련 없는 참고사진. 동아일보DB
남다른 주력상품과 부지런함으로 가게 매출은 쑥쑥 신장하였다. 1992년 7년 만에 지상으로 매장을 옮길 무렵에는 무려 7칸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지하상가는 단체 상가여서 사장님이 개인행동을 하기 힘들어 지상으로 올라와 좀 더 넓은 시장에서 장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꿈은 실현되어 지하상가에서 벗어나 지상 번화가에 새로운 옷가게를 차리게 되었다.

지금은 도쿄와 서울 패션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도쿄 패션은 쉽게 접하기도 힘들고 이색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신주쿠, 하라주쿠 거리에서 유행하는 패션은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함을 그대로 표현하다 보니 명동에서도 인기몰이했다. (J) 사장님은 명동 사보이 호텔 옆에 ‘핑크 하우스’라는 옷가게를 차리고 하라쥬큐 스타일로 매장을 꾸몄다. 지금처럼 인스타그램이니 페이스북 같은 SNS는커녕 인터넷도 잘 없던 시절이다.

논노 잡지 정도를 통해 겨우 일본의 패션 트렌드를 일부 접할 뿐이었다. 논노 스타일로 디스플레이해두니 5평 남짓의 핑크 하우스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대박이 났다. 명동이라 하더라도 일본 스타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가게가 없었고 사장님 가게에는 항상 주력상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핑크 하우스의 노하우를 가지고 좀 더 큰 매장으로 확장하면서 사업은 점점 번창하게 되었다.

90년대 남대문시장 풍경. 동아일보DB
시 명동에서 옷가게를 하는 사장님들은 남대문에서 옷을 많이 구해왔다. 남대문에도 많은 가게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옷을 좀 만든다고 하는 가게가 대여섯 군데 있었다. 인기 많은 가게이다 보니 그 집 옷을 받아오기 위해 3시간만 자고 새벽마다 옷을 받으러 갔다. 매일같이 쪽잠을 자며 좋은 옷을 받아왔다. (J) 사장님을 따라 하려고 몇몇 다른 사장님들도 흉내 냈으나 며칠 가지를 못했다. 그렇게 받아온 옷은 (J) 사장님 가게의 주력상품이 되어 메인으로 디스플레이되었다. 디스플레이를 하고 잘 나가지 않는 옷은 바로바로 교체했다.

“백 가지 물건을 가지고 오면 들러리 물건이 50퍼센트, 시나브로 나가는 물건이 30퍼센트, 주력으로 나가는 물건이 20퍼센트 정도 돼요. 20퍼센트의 주력상품이 가게의 매출을 주도하는 거예요. 사람 눈은 다 똑같거든요, 누구든 보았을 때 사고 싶은 물건, 바로 그 물건을 가져와야 해요. 다른 가게에 없고 우리에게만 있으면 되는 거죠. 주력상품이 있으면 손님이 안 올 리가 없어요. 게다가 주력상품을 사러 들어와서 다른 물건까지 사 가게 돼요. ”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J) 사장님이 죽기 살기로 주력상품을 선점하는 이유다. 잘 나가는 남방 몇 장 가져오려고 다섯 시간이고 여섯 시간이고 기다렸다. 그 남방을 팔아서 남는 건 몇 푼 안 되지만 다른 가게에 없는 귀한 물건을 가지고 와야만 손님이 온다. “ 다른 사람은 못 갖다 놨어요. 그걸 가져다 놓으려면 잠을 못 자거든요.” 대표 제품 하나를 정해 전체 마케팅에 이용한다는 플래그십 마케팅 개념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도 전에 사장님은 이미 이 플래그십 마케팅을 몸소 실천했다.

“좋은 물건을 가지고 오려면 옷 싣고 오는 차가 언제 올지 모르니깐 새벽에 나가 기다려요. 그 깜깜한 달빛 아래 말이에요. 이대 같은 중요 상권에서 장사하는 사람 중에도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차가 도착하면 사람들이 서로 뜯고 싸우기도 해요. 공장에서 물건을 택시에 실어 보낼 때도 있는데 한 번은 한꺼번에 택시에 달려드는 통에 택시 문짝이 떨어지기도 했죠. 정말 아수라장이었죠. 도매상 주인 중에는 옷이 분실될까 봐 간섭하기도 하지만 그런 상황을 내버려 두는 주인도 있어요. 왜냐하면, 이 집 옷이 인기가 많다 소문나면 몰려오니까요. 도매상 주인으로서는 다른 옷이라도 가져가게 되니 그걸 노린 거죠.”

요즘은 올해 팔고 남은 재고를 놔두면 안 팔리지만, 당시에는 일 년 후에 지방에서 팔렸다. 하지만 점점 서울과 지방의 유행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팔리지 않는 옷을 도매상에 교환해야 했다. 도매상은 교환을 잘 안 해주려다 보니 몇 장을 바꾸려 서너 시간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다. 그러한 절박함, 끈질김, 부지런함으로 현재의 사장님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 힘들게 교환했지만, 지금은 (J) 사장님의 구매력이 커졌기 때문에 오히려 도매상에서 물건 교환도 잘해주고 주력상품을 밀어준다. 힘들었던 옛날과 비교해 보면 감회가 새로울 따름이다. 무엇을 이루려 하기보다 열심히 살다 보니 부는 자연스럽게 따라온 것이다. “돈을 벌려고 하면 돈을 못 벌어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얘기이지만, 돈에 너무 집착하면 결국 넘어지더라고요. 일이 재미있었어요. 돈만 벌려고 했다면 3시간만 자면서 못 했겠죠. 재미가 있으니 3시간 자면서 일했어요. 고생은 했지만, 그때가 재미있었어요.”

삼성 갤럭시S20. 동아일보DB
삼성 갤럭시, 애플 아이폰, 농심 신라면, 벤츠의 S클래스, CJ의 햇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상품들은 각 기업에서 매출을 이끄는 주력상품이다. 주력상품은 영어로 표현해 보면 ‘FLAGSHIP PRODUCT’ 정도로 풀이해 볼 수 있다. FLAG와 SHIP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깃발을 꽂고 가는 기함을 뜻한다. 항해를 하는 수십 척의 배 중 가장 앞서 지휘하는 배를 상상해 보라. 플래그십(기함)이 지휘선을 뜻하는 것에서 파생되어 마케팅 분야에서는 기업의 주력상품을 의미한다. 이 플래그십 전략으로 명동 지하상가에서부터 부를 일구어 낸 사람이 바로 (J) 사장님이다.

장사를 잘하려면 주력상품을 정하고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사장만 그러해서는 안 된다. 함께 일하는 종업원도 마찬가지다. 식당에 가는 고객은 어떤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미리 정하기보다 메뉴판을 보고서야 고민하기 시작한다. 주문을 받는 종업원이 주력상품을 먼저 권유할 줄 알아야 한다. 종종 음식점에서 ”어떤 메뉴가 맛있어요? “라고 물어보면 ”잠시만요 “하고 다른 직원에게 물어보려 종종걸음을 하는 뒷모습을 볼 때가 있다.

그 순간 그 가게의 음식 수준 역시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메뉴를 보고 고민하는 손님에게 먼저 다가가 ”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이 메뉴가 저희 가게에서 가장 인기가 좋아요. 맛은 이러이러합니다.”라고 응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열 명의 손님 중 아홉 명이 그 메뉴를 고르게 된다. 이런 예는 비단 음식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캡처
요식업의 대가 백종원이 직접 방문하여 식당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에도 백종원은 하나를 제대로 파는 전략을 항상 강조한다. 고객이 찾는다고 혹은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맛은 충실하지 못한 채 메뉴의 수를 늘려 나가다 보면 깊이가 없어지고 남들과 똑같은 메뉴일 뿐이다. 정 효평의 「단일 메뉴 하라 –백종원 메뉴판 연구」에서도 ‘모든 고객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모든 메뉴를 준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만약 그런 시도를 한다면 결국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하게 됩니다.’라고 강조한다.

직장인이라면 나의 주력상품을 찾아보자. 내가 평소 좋아하는 업무 분야, 강점이 있는 분야를 찾자. 업무를 할 때 직장 동료들이 나를 찾는 이유도 생각해 보자. 거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강점을 더욱 보완해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요즘 한창 브랜딩(Branding)이란 말이 유행이다. 기업만 브랜딩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라는 상품 역시 브랜딩을 통해 강화될 수 있다. 나에게는 어떠한 주력상품이 있는지 찾아보고 나를 멋지게 브랜딩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