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자들은 몇 살에 '종잣돈'을 모았을까?

동아일보
동아일보2020-04-03 11: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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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2020 한국 부자 보고서’
빈부격차를 조명한 영화 '기생충' 스틸컷/기사와 직접 연관 없는 참고 사진
대한민국 부자들은 대략 41세 정도에 부자가 되기 위한 종잣돈(시드머니)을 손에 쥐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잣돈을 마련하고 이후 자산을 불려가는 수단은 사업 소득이 가장 많았다. 65세쯤엔 자녀들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나은행과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4월 2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2020 한국의 부자 보고서’를 발표했다.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하나은행 프라이빗뱅커(PB) 고객 3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이들의 총자산은 평균 160억 원, 연소득은 평균 4억7700만 원이었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한 달간 조사한 결과여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전망과 자산관리 전략 변화 등은 반영되지 않았다.
평균 68세인 설문 대상 부자들이 종잣돈을 확보한 시점은 평균 41.3세로 조사됐다. 40대 이하 부자들이 종잣돈을 마련한 나이는 평균 34.8세였다. 50대 부자는 39.7세, 60대는 42.5세, 70대는 44.7세에 종잣돈을 모았다. 부자의 문턱을 넘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종잣돈을 확보하는 수단은 사업 소득이 32.3%로 가장 많았으며, 50대를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상속·증여(25.4%), 근로 소득(18.7%), 부동산 투자(18.2%) 순이었다. 금융자산 투자를 통한 시드머니 확보는 5.1%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상속 및 증여가 부자가 되기 위한 1순위 수단이 아니며 소위 ‘금수저’만이 부자가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해석했다.

종잣돈을 확보한 뒤 현재까지 자산을 불린 1순위 수단도 사업 소득(31.5%)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부동산 투자(25.3%), 상속·증여(18.9%), 근로 소득(15.1%), 금융자산 투자(9.0%) 순이었다. 자기 사업이 종잣돈과 자산을 모아 부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뜻이다.
부자들은 이렇게 축적한 자산을 노후 준비(49.6%), 상속(24.8%), 증여(18.1%) 등으로 처분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기부는 3.1%에 불과했다. 자산이 많을수록 노후 준비보다 상속과 증여에 쓰는 경우가 많았다. 부자들은 평균 65.2세에 자녀에게 증여하며 증여받는 자녀들의 평균 나이는 34.9세였다. 물려주는 자산 형태는 부동산(68.9%)이 가장 많았고 현금 및 예금(62.5%)이 그 뒤를 이었다.

부자들의 총자산에서 부동산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50.9%로, 전년 대비 2.2%포인트 낮아졌다. 2013년(44%) 이후 매년 비중이 높아지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꺾인 것이다. 보고서는 “부동산 규제 강화에 따른 부동산 가격 상승세 둔화와 다주택자들의 주택 매도, 절세를 위한 증여 등에 따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부자들이 보는 경기 전망은 어두웠다. 향후 5년간 실물 경기 전망을 묻는 말에 절반 이상(54.7%)이 ‘침체’라고 답했다. 부동산 경기 전망도 부정적이었지만 최근 4년간 설문조사 중에선 가장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될 것으로 보는 전망은 34.7%로 전년 대비 10.6%포인트 낮아진 반면 회복될 것으로 보는 전망은 27.9%로 12.5%포인트 높아졌다. 보고서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부자들의 신뢰가 여전히 높아 고액 자산가일수록 상업용 부동산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