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기춘은 대체 왜?…올림픽 영웅의 날개 없는 추락

남장현 기자2020-05-03 16:04:00
공유하기 닫기


참담한 몰락이다. 올림픽 영웅은 처참하게 추락했다.

2008베이징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왕기춘(32)이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사실이 2일 알려졌다. 3월 16일 대구수성경찰서에 고소장이 접수된 뒤 대구지방경찰청이 수사에 나섰고, 1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경찰은 추가 수사를 진행한 뒤 다음주 중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얼마 전만 해도 왕기춘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맹활약한 스포츠 영웅이었다. 1995년 유도에 입문해 서울체고, 용인대를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07년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역대 한국남자선수 최연소 우승자 타이틀을 얻었고, ‘한판승 사나이’ 이원희를 따돌리며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그가 본격적인 스타의 대열에 올라선 계기는 베이징올림픽 유도 남자 73㎏급 무대에서 보여준 불굴의 투혼이었다. 대회 8강전에서 갈비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고도 결승에 올라 강렬한 인상을 전 세계에 남겼다. 엘누르 맘마들리(아제르바이잔)에게 경기 시작 10여초 만에 한판으로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모두의 찬사를 받았다.

2012런던올림픽에서의 퍼포먼스도 대단했다. 대회 4강에서 경고 2개를 상대에 내주며 유효패를 당한 그는 동메달결정전에서 왼쪽 팔꿈치를 다치고도 연장전까지 잘 버텼지만 절반을 허용해 아쉽게 무너진 바 있다.

그러나 유도장 밖에서 영웅의 삶은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전혀 달랐다. 베이징올림픽 이듬해인 2009년 경기도 용인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20대 여성을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당시 함께 술을 마시던 여성 일행과 시비가 붙어 뺨을 때렸고, 양측 합의로 법적 처벌은 피했다.

2013년에도 불미스러운 사고를 저질렀다. 육군훈련소에 입소하면서 휴대전화를 몰래 반입해 영창 처분을 받아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다. 2014년에는 모교 용인대 유도부의 체벌 사고가 공론화되자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체벌한 선배의 행위를 옹호하는 메시지를 남겨 공분을 샀다.

왕기춘은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자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이후 ‘국가대표 왕기춘의 실전유도 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고,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한 유도관을 개관했다. 2016년 대구에 처음 연 ’왕기춘 간지 유도관‘ 프랜차이즈 지점은 전국 6곳까지 늘었으나 이번 사건으로 법적 대응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체육계도 발칵 뒤집어졌다. 불미스러운 사건의 중심이 된 유도계가 뒤숭숭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도계 인사는 “(왕기춘은) 현역 선수나 지도자 신분이 아니어서 당장 향후 조치를 언급하기는 어렵다”며 조심스러워했지만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했다.

한편 왕기춘은 체육계 규정에 따라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으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 국제대회 입상으로 받아온 연금을 더는 수령하지 못할 수 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