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서 체중 재는 튀르키예…“비만도 단속하나” 불만 속출

김수연 기자2025-05-22 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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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정부가 거리와 광장에서 시민의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는 이례적인 건강 캠페인을 시작했다. 공식 취지는 ‘비만 예방’이지만, 현지에서는 “공공연한 모욕” “사생활 침해”라는 반발이 거세다.

튀르키예 보건부는 이달 10일부터 7월 10일까지 전국 81개 주에서 1000만 명을 목표로 공공장소에서 체중·키·체질량지수(BMI)를 측정하고 있다.

‘당신의 몸무게를 알고, 건강하게 살자’라는 슬로건 아래, 공원과 광장, 버스터미널, 경기장 등 사람들이 오가는 공공장소에서 불시에 측정이 진행된다.

튀르키예 보건부 장관은 “비만은 질병이며, 젊을 때는 버틸 수 있어도 나이가 들면 관절·심장 질환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장관은 본인도 수도 앙카라에서 공개 검사를 받았고, ‘정상 체중보다 약간 초과’ 판정을 받았다. 그는 “이제 매일 걷겠다”며 SNS에 체중 감량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측정 결과 BMI가 25 이상인 시민은 공공 보건센터로 연계돼 무료 영양 상담과 건강 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정부는 해당 캠페인을 “국가적 비만과의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의 체중 측정은 곧바로 논란에 불을 지폈다. 터키 SNS에서는 “마치 음주 단속처럼 ‘비만 단속’을 당했다”는 체험담이 속출하고 있다.

한 정신과 의사는 “광장에서 ‘비만 단속’에 걸렸다. 다행히 조금만 꾸중을 듣고 풀려났다. 곧바로 다른 통통한 분들께 그쪽 가지 말라고 알려줬다. 연대하자, 뚱보 동지들이여”라는 글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일부 시민은 “건강하지 못한 삶을 강요하는 사회 구조는 외면한 채, 거리에서 체중계만 들이댄다”고 비판했다.

이에 정부는 “강제는 아니며,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의존한다”고 설명했지만, 시민들은 “길을 걷다 체중을 재라는 것 자체가 모욕”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전문가들 “BMI는 건강 판단 기준으로 부적절”
튀르키예 일간지는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체질량지수(BMI)만으로 개인의 건강 상태를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운동선수처럼 근육량이 많은 사람도 BMI 수치상 ‘과체중’으로 판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튀르키예 성인 인구의 32%가 비만으로 분류됐다. 이는 유럽 최고 수준이다. 정부는 공공보건 위기 수준으로 보고 있지만, 시민들의 자존감과 인권을 배려하지 않은 방식이라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김수연 기자 xunnio4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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