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는 ‘공무원 고양이’가 있다…직책명 ‘수석 수렵보좌관’

celsetta@donga.com 2017-05-12 15:05
“총리관저에는 온화하고 품격있는 고양이가 어울립니다. 바로 저처럼요.” 총리관저 수석 수렵보좌관 래리(Larry)
청탁? 뇌물? 그게 뭐냐옹?
영국에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절대 비리를 저지르지 않는 공무원이 셋 있습니다. 국민들은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뇌물이나 부정청탁을 받지도 않고 예산을 빼돌릴 염려도 전혀 없다는데요. 이 공무원들은 사람이 아닌 ‘고양이’이기 때문입니다.

재무부 글래드스톤(Gladstone), 외무부 파머스톤(Palmerston), 총리관저의 래리(Larry)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이들은 비록 고양이이지만 ‘내각 수석 수렵보좌관(Chief Mouser·쥐잡이 관리관)’이라는 어엿한 직책을 가진 진짜 공무원입니다.

고양이 공무원 전통은 수백 년 전 영국 왕 헨리 8세(1491~1547)시절 관공서 건물 쥐 퇴치를 위해 고양이를 기르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에는 직책 없이 그저 쥐잡이 목적으로 키웠지만 현대에는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지내던 고양이를 관공서에서 입양해 ‘수석 수렵보좌관’으로 임명하고 쥐잡이 겸 마스코트 임무를 맡기고 있습니다.

1924년 임기를 시작한 1대 수렵보좌관 빌(Bill)을 필두로 이 귀여운 고양이 공무원들은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2014년 사고로 은퇴한 뒤 시골에서 사는 프레야를 제외한 현직 래리, 글래드스톤, 파머스톤은 여느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세 마리 중 누가 제일 귀여운가’는 수다의 단골 소재입니다.

“그 누구도 날 가둘 순 없다. 설령 총리라 해도 말이지!” 타고난 사냥꾼 프레야(Freya, 2014년 은퇴).
“뭐야 넌! 비켜!” 래리에게 '앞발 펀치' 날리는 프레야. 사진=데일리메일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고양이 공무원들은 평생 근무합니다. 고양이가 사람처럼 부정부패를 저지를 리가 없으니 문자 그대로 평생직장이죠.

하지만 총리관저 고양이 래리는 2011년 취임한 뒤 몇 달이 지나도록 쥐를 거의 잡지 않고 누워만 있는 바람에 업무 불성실로 해고됐습니다. 비리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게을렀던 것이죠. 당시 래리의 ‘인간 동료’들은 “그(래리)는 사냥꾼 본능이 없는 것 같다”, “너무 평화주의자라 쥐가 지나가는 걸 보고도 태평하게 드러누워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결국 래리는 빠릿빠릿한 성격의 새 고양이 프레야에게 수렵보좌관 자리를 내어 줘야 했습니다. 래리와 달리 공격성이 뚜렷하고 민첩한 프레야는 쥐를 잘 잡았지만 호기심이 하도 왕성한 게 문제였습니다. 2014년 프레야는 총리관저를 벗어나 거리를 쏘다니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채 발견됐습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멀리까지 돌아다니며 사냥하는 걸 즐기는 프레야에게 관저 생활은 맞지 않았습니다. 인간 동료들은 프레야를 시골 가정으로 보내 자연 속에서 뛰어 놀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쥐를 잘 잡지는 못하지만 사람과의 친화력이 뛰어난 래리를 다시 복직시켰습니다. 래리는 여전히 천하태평한 성격이지만 워낙 애교가 많고 얌전해 마스코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네요.

래리(왼쪽)와 파머스톤(오른쪽)의 대격돌. 사진=BBC
원조 마스코트 이미지를 굳혀 가던 래리에게 강력한 라이벌이 나타났으니 바로 이웃인 외무장관 공관에 2016년 부임한 파머스톤입니다.

일간신문 ‘가디언’은 ‘다우닝 가 고양이 격돌’이라는 제목으로 두 고양이의 신경전을 보도하기도 했는데요. 첫 만남 때부터 심상찮은 눈빛을 주고받던 두 보좌관은 급기야 2016년 7월 17일 다우닝 가 한복판에서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어 인간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냐아앙...?” 순진한 눈망울과 귀여운 보타이가 매력적인 막내 '글래드스톤'.
그러나 파머스톤은 한 번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며칠 뒤 총리 공관에 몰래 잠입해 공격을 감행하려다 경비원에게 딱 걸려 쫓겨나야 했다네요. 시민들도 래리 파와 파머스톤 파로 나뉘어 유쾌한 공방전을 벌였습니다.

‌2016년 6월 들어온 신참 글래드스톤도 만만치 않은 인기를 자랑합니다. 글래드스톤은 취임한 지 얼마 안 되어 인기투표 1위에 등극하며 막내의 귀여움을 톡톡히 뽐냈습니다.

어엿한 공무원으로서 쥐도 잡고 홍보 역할도 수행하는 공무원 고양이들은 오늘도 삭막해지기 쉬운 정치 공간에 웃음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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