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척(盜·노나라 때 사람으로 9000여 명의 무리를 이끈 도둑)의 부하가 도척에게 물었다.
“도둑질에도 길(道)이 있습니까.”
“어디엔들 길이 없겠느냐. 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맞히는 게 훌륭함(聖)이다. 먼저 들어가는 게 용기(勇)다. 나중에 나오는 게 의리(義)다. 될지 안 될지 아는 게 지혜(知)다. 고루 나누는 게 사랑(仁)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고 큰 도둑이 된 자는 아무도 없다.”
이는 ‘장자’ ‘거협’ 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여기서 거협은 도둑질을 위해 ‘상자를 연다’는 뜻이다.
장자는 왜 성인도 아닌 도둑의 도를 이야기한 것일까. ‘장자’를 번역한 조현숙의 설명을 들어보자.
“상자를 단단히 묶고 잠가두는 것은 도둑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큰 도둑은 상자째 훔쳐가면서 오히려 상자가 단단히 묶여 있지 않을까 봐 걱정합니다. 도둑들은 ‘사랑과 정의(仁義)’마저 훔쳐 도둑질의 도구와 노리개로 이용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성인은 사랑과 정의를 외치고, 지식인은 앎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결국 최고 지식인과 성인들은 세상을 훔치는 큰 도둑을 위해 상자를 단단히 묶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장자는 ‘천하(天下)’ 편에서 “세상이 혼탁해져 바른말 하기가 어려워졌다”며 “치언(言)으로 바꾸고” “중언(重言)으로 진실을 말하고” “우언(寓言)으로 폭넓게 말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치언’이란 글자 그대로는 앞뒤로 사리가 어긋나는 말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변화무쌍한 장자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가리킨다.
앞의 ‘도척’이야기에서 장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사랑과 정의를 만들면 도둑은 그 사랑과 정의까지 훔쳐가고, 혁대(허리띠) 고리를 훔친 사람은 사형을 당하지만 나라를 훔친 사람은 제후가 되고, 제후의 문 앞에 사랑과 정의가 내걸린다. 이렇게 도척을 이롭게 해주면서도 막을 수 없게 된 것은 성인의 잘못이다. 고로 “훌륭함과 앎을 잘라버려야 큰 도둑이 없어진다(故絶聖棄知 大盜乃止).”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섬네일 사진출처 | ⓒGettyImagesBank
“도둑질에도 길(道)이 있습니까.”
“어디엔들 길이 없겠느냐. 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맞히는 게 훌륭함(聖)이다. 먼저 들어가는 게 용기(勇)다. 나중에 나오는 게 의리(義)다. 될지 안 될지 아는 게 지혜(知)다. 고루 나누는 게 사랑(仁)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고 큰 도둑이 된 자는 아무도 없다.”
이는 ‘장자’ ‘거협’ 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여기서 거협은 도둑질을 위해 ‘상자를 연다’는 뜻이다.
장자는 왜 성인도 아닌 도둑의 도를 이야기한 것일까. ‘장자’를 번역한 조현숙의 설명을 들어보자.
“상자를 단단히 묶고 잠가두는 것은 도둑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큰 도둑은 상자째 훔쳐가면서 오히려 상자가 단단히 묶여 있지 않을까 봐 걱정합니다. 도둑들은 ‘사랑과 정의(仁義)’마저 훔쳐 도둑질의 도구와 노리개로 이용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성인은 사랑과 정의를 외치고, 지식인은 앎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결국 최고 지식인과 성인들은 세상을 훔치는 큰 도둑을 위해 상자를 단단히 묶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장자는 ‘천하(天下)’ 편에서 “세상이 혼탁해져 바른말 하기가 어려워졌다”며 “치언(言)으로 바꾸고” “중언(重言)으로 진실을 말하고” “우언(寓言)으로 폭넓게 말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치언’이란 글자 그대로는 앞뒤로 사리가 어긋나는 말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변화무쌍한 장자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가리킨다.
앞의 ‘도척’이야기에서 장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사랑과 정의를 만들면 도둑은 그 사랑과 정의까지 훔쳐가고, 혁대(허리띠) 고리를 훔친 사람은 사형을 당하지만 나라를 훔친 사람은 제후가 되고, 제후의 문 앞에 사랑과 정의가 내걸린다. 이렇게 도척을 이롭게 해주면서도 막을 수 없게 된 것은 성인의 잘못이다. 고로 “훌륭함과 앎을 잘라버려야 큰 도둑이 없어진다(故絶聖棄知 大盜乃止).”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섬네일 사진출처 | ⓒGettyImagesBa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