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하나 보이지 않던 독서실이야 말로 인생의 부귀영화를 꿈꾸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다. 그곳에서 관람한 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고독에 잠기는 남자. 적당한 와인과 위스키를 꺼내어 마시며 “구세계와 신세계를 가로지르는 요단강 위에서 춤추는 탱고 여인의 눈물이 느껴지는군.” 따위의 말을 내뱉는 삶이었다. 나는 성공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와인 만화책 <신의 물방울>로 철저한 예습 복습을 해 왔거든.
분명 넷플릭스 드라마 같은 인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쪽대본이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쪽대본으로 만든 자기 소개서를 표창처럼 던졌으니까. 일종의 ‘취업 닌자’였던 나는 방송국과 신문사에 이력서를 투척했다. 그러고 나선 나를 떨어뜨리는 곳은 진정한 언론사가 아니라며 이름을 지웠는데, 불과 몇 개월 만에 대한민국의 언론사는 디스패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언론사 입사 시험은 일종의 과거 시험이다. 종이를 펴놓고 심사관이 아무 단어를 던지면 막힘없이 쓴다. 그중에 오직 한두 명만이 입사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장원급제를 위해 글쓰기 스터디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글을 잘 쓰는 친구가 있었다. 저 놈만 없었더라면!
분명 넷플릭스 드라마 같은 인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쪽대본이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쪽대본으로 만든 자기 소개서를 표창처럼 던졌으니까. 일종의 ‘취업 닌자’였던 나는 방송국과 신문사에 이력서를 투척했다. 그러고 나선 나를 떨어뜨리는 곳은 진정한 언론사가 아니라며 이름을 지웠는데, 불과 몇 개월 만에 대한민국의 언론사는 디스패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언론사 입사 시험은 일종의 과거 시험이다. 종이를 펴놓고 심사관이 아무 단어를 던지면 막힘없이 쓴다. 그중에 오직 한두 명만이 입사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장원급제를 위해 글쓰기 스터디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글을 잘 쓰는 친구가 있었다. 저 놈만 없었더라면!
그래서 뒤를 밟았다. 이 친구의 특징은 언제나 글을 쓰다가 밖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5분을 사라진다는 것은 수상하기 그지없었으니까. 그리고 현장을 목격했다. 녀석의 비밀은 바로 학교 건물 앞에 있는 자판기였다. 정확히 말하면 자판기에 있는 캔 커피! 그렇다. 녀석은 도핑테스트에 걸린 것이다.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렇게 나도 글을 쓰는 중간에 캔 커피를 마시러 떠나게 되었다.
잠깐 이 캔 커피에 대해 알아보자. 이름은 ‘조지아 맥스’. 아기 입맛인 나에게 인생의 단맛을 모두 농축시켜 놓은 달콤함이 딱이었다. 또한 당시 캔커피들 사이에서는 카페인 함량이 높아 ‘인간 건전지’라고 불렸던 녀석이다. 카페인의 각성 효과는 졸음과 무기력증을 날려 준다. 물론 그전에도 다른 커피를 마셨지만, 조지아 맥스에는 플라시보 효과라는 게 있다. 전문 용어로 말하면 ‘기분 탓’.
덕분에 나의 입지는 나날이 커졌다. 글쓰기가 막힐 때면 자판기에 달려갔고, 동전만 넣으면 조지아, 아니 아이디어가 탁하고 떨어졌다. 덕분에 어떤 주제를 던져도 주저함이 없었다. 함께 스터디를 했던 친구들도, 가끔씩 글을 봐 주신 교수님도 빵빵 터지며 엄지를 올려 주었다. 그렇다. 나는 무서울 게 없는 ‘글 깡패’였다. 어떤 언론사든지 걸리기만 하면 간판을 깨부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깨지는 것은 역시 나였다. 서류탈락만 해 본 나는 몰랐다. 언론사의 필기시험에는 쉬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하물며 시험장에서 탈출하더라도 자판기나 맥스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하나씩 지워 가던 언론사들 이름으로 빙고를 맞춰 버렸다. 다 지웠다! 나는 책상 위에 소원 탑처럼 쌓인 조지아 맥스 캔을 남기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깐 이 캔 커피에 대해 알아보자. 이름은 ‘조지아 맥스’. 아기 입맛인 나에게 인생의 단맛을 모두 농축시켜 놓은 달콤함이 딱이었다. 또한 당시 캔커피들 사이에서는 카페인 함량이 높아 ‘인간 건전지’라고 불렸던 녀석이다. 카페인의 각성 효과는 졸음과 무기력증을 날려 준다. 물론 그전에도 다른 커피를 마셨지만, 조지아 맥스에는 플라시보 효과라는 게 있다. 전문 용어로 말하면 ‘기분 탓’.
덕분에 나의 입지는 나날이 커졌다. 글쓰기가 막힐 때면 자판기에 달려갔고, 동전만 넣으면 조지아, 아니 아이디어가 탁하고 떨어졌다. 덕분에 어떤 주제를 던져도 주저함이 없었다. 함께 스터디를 했던 친구들도, 가끔씩 글을 봐 주신 교수님도 빵빵 터지며 엄지를 올려 주었다. 그렇다. 나는 무서울 게 없는 ‘글 깡패’였다. 어떤 언론사든지 걸리기만 하면 간판을 깨부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깨지는 것은 역시 나였다. 서류탈락만 해 본 나는 몰랐다. 언론사의 필기시험에는 쉬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하물며 시험장에서 탈출하더라도 자판기나 맥스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하나씩 지워 가던 언론사들 이름으로 빙고를 맞춰 버렸다. 다 지웠다! 나는 책상 위에 소원 탑처럼 쌓인 조지아 맥스 캔을 남기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쪽대본 같은 인생의 매력은 언제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지 모른다는 점에 있다. 조지아 맥스빨(?)로 써 온 글 덕분에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미디어 창업을 할 거니까 좋아하는 것, 꿈꾸는 것을 마음껏 쓰라고 했다. 그렇게 음료 미디어 ‘마시즘’의 에디터가 되었다.
오늘도 나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다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콜라나 와인, 위스키를 마시면서 “친구 아버지가 장롱에 숨겨 놓은 양주의 맛이 난다.” 같은 글을 쓴다. 돌이켜보면 독서실에서 그려 왔던 꿈과 억울하게 닮은 일상이다. 뭔가 이게 맞으면서 아니었던 거 같은데.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훌륭한 커피도 많지만 일을 시작할 때면 언제나 조지아 맥스를 찾게 된다는 것. 취업은 했어도 여전히 막막하고 초조함을 느끼는 준비생이라 그렇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성공을 음미하는 순간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준비’ 혹은 ‘더 나은 준비를 위한 준비’를 반복하는 과정이 주가 아닐까? 그러다 고꾸라지는 순간도 오겠지만 괜찮다. 때로 인생이 쓸지 몰라도, 내가 마시는 커피는 언제나 다니까.
오늘도 나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다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콜라나 와인, 위스키를 마시면서 “친구 아버지가 장롱에 숨겨 놓은 양주의 맛이 난다.” 같은 글을 쓴다. 돌이켜보면 독서실에서 그려 왔던 꿈과 억울하게 닮은 일상이다. 뭔가 이게 맞으면서 아니었던 거 같은데.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훌륭한 커피도 많지만 일을 시작할 때면 언제나 조지아 맥스를 찾게 된다는 것. 취업은 했어도 여전히 막막하고 초조함을 느끼는 준비생이라 그렇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성공을 음미하는 순간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준비’ 혹은 ‘더 나은 준비를 위한 준비’를 반복하는 과정이 주가 아닐까? 그러다 고꾸라지는 순간도 오겠지만 괜찮다. 때로 인생이 쓸지 몰라도, 내가 마시는 커피는 언제나 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