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SNS스타’로 키우겠다는 부모…아동학대일까?

celsetta@donga.com 2018-12-19 16:49
사진=랄피 인스타그램(@ralphie.rw)
‘인플루언서’. 정식으로 데뷔한 연예인은 아니지만 연예인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진 온라인 스타를 일컫는 신조어입니다. 자신만의 영상을 올려 수십 수백 만 구독자를 모으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어엿한 직업으로 인정받는 시대, 자녀를 SNS스타로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영국 에섹스 주에 사는 귀여운 아기 랄피 월링턴(Ralphie Warlington)은 태어난 지 일 년밖에 안된 아기이지만 인스타그램에서는 2만 여 명의 팬을 보유한 유명인입니다. 물론 계정은 랄피의 어머니인 스테이시 우드햄(Stacey Woodhams·28)씨와 아버지 애덤 월링턴 씨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스테이시 씨는 랄피를 낳은 뒤 일주일 후에 곧바로 아기 전용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습니다.

영국 매체 미러에 따르면 ‘랄피’ 계정은 지금까지 1만 파운드(약 1400만 원)어치의 상품을 협찬 받고 그 대가로 홍보 사진을 올렸습니다. 옷 200여 벌, 유모차 8대, 아기 침대, 아기용 의자, 장난감,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외식 상품권, 살롱 이용권 등 협찬 의뢰는 끊이지 않습니다. 랄피가 입고 쓰고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팔로워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입니다.

‘랄피 브랜드’를 관리하기 위한 부모 나름의 매니지먼트 노하우도 있습니다. 부부는 친척들에게 ‘랄피가 찍힌 사진을 온라인에 절대 올리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한다는데요. 천방지축 뛰어다니거나 흙장난으로 지저분해진 모습, 소리를 지르며 우는 모습이 노출되었다가는 공들여 쌓은 천사 아기 이미지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랄피 인스타그램(@ralphie.rw)
사진=랄피 인스타그램(@ralphie.rw)
빛이 강한 만큼 그림자도 짙어지게 마련일까요. 랄피 계정 팔로워가 늘고 협찬 의뢰가 많아질수록 ‘악플’도 함께 늘었습니다. 아이를 이용해 부모의 욕심을 채우는 것 아니냐는 의심부터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폭언까지 온갖 비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테이시 씨와 애덤 씨는 “우리가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매일같이 쏟아진다. 부모 자격은 물론 지구에 살 자격조차 없다는 욕까지 들었다”면서도 SNS활동을 접을 생각은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부부는 랄피가 ‘아기 인플루언서’ 로서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고 사진 찍는 생활을 즐기고 있다며 SNS활동으로 모은 돈이 아이의 장래에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1년 만에 2만 여 명의 팬을 확보한 ‘인플루언서’ 랄피 사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온라인 명성이 곧 현실에서의 가치 창출로 이어지는 시대인 만큼 부모가 미리미리 아이를 준비시켜도 나쁠 것 없다는 의견이 있는 한편, 아직 사리판단도 하지 못 하는 어린 나이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얼굴이 알려지는 건 아이의 장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부모의 선택이 현명한 것이었는지 아닌지는 시간이 말해 줄 것이라며 판단을 유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머니 스테이시 씨는 “인스타그램 활동 덕분에 랄피는 남들보다 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즐겁게 자라고 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성장한 뒤에도 자기 과거를 자랑스러워 할 거라 믿는다”면서도 “만에 하나 아이가 싫어한다면 언제든 온라인 활동을 그만 둘 것”이라고 확언했습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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