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찾아 도시로 온 ‘무고한’ 26세 청년, 시민들 구타에 숨져

hwangjh@donga.com 2018-07-04 17:00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인도 뱅갈루루를 찾은 26세 청년이 지역 주민들에게 구타 당해 목숨을 잃었다. 그는 범죄자였나? 아니었다. 그렇다면 현지인들에게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꿈을 찾아 뱅갈루루에 당도한 이 청년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난달 영국 BBC는 인도 제3의 도시이자 IT산업의 심장인 뱅갈루루에서 26세 청년 카루 람(Kaalu Ram)이 집단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고 전했다. 그의 목숨을 빼앗은 것은 주민들의 폭행이었지만, 더 근본적 원인은 소셜미디어 왓츠앱을 뒤흔든 한 편의 영상에 있었다. 
출처 BBC뉴스 ‘The India WhatsApp video driving people to murder’ 캡처
5월 인도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오토바이를 탄 두 명의 괴한에게 아이가 납치 당하는’ 영상이 퍼졌다. 밝은 대낮, 검은 헬멧을 쓴 괴한들은 거리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 아이 한 명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유유히 사라졌다. 놀란 친구들이 오토바이를 뒤쫓아갔지만 괴한들은 아이를 데리고 유유히 자리를 떴다.

이 충격적인 영상은 왓츠앱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200명의 납치범들이 아이들을 노리고 있다는 경고문, 영상과 관계없는 끔찍한 사진들도 함께였다. 때를 맞춰 한 지역 뉴스 채널에서는 5000명의 유괴범들이 인도 남부에 잠입했다고 보도했다. 지역 주민들이 공포에 떠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출처 BBC뉴스 ‘The India WhatsApp video driving people to murder’ 캡처
한 주민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영상과 뉴스들은 본 후 두려웠다. 아이들을 밖에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는 심경을 밝혔다. 문제는 이러한 집단적 공포심이 잘못된 방향으로 발현됐다는 것에 있었다. 카루는 그 희생양이었다.

일부 주민들은 카루를 납치범으로 ‘오인’했다. 그들은 카루의 손과 다리를 묶고 잔인하게 폭행했다. 쓰러진 카루를 길거리에서 끌고 다니기도 했다. 결국 그는 병원으로 이송되는 중 목숨을 잃었다. 
출처 BBC뉴스 ‘The India WhatsApp video driving people to murder’ 캡처
다시 처음에 언급한 영상으로 돌아가 보자. 오토바이 괴한들에게 납치당하는 아이의 영상. 영상 후반부, 사라졌던 괴한들은 잠시 후 아이를 납치했던 자리로 돌아와 아이를 제자리에 내려놓고 ‘카라치의 길거리에서 아이를 납치하는 것은 아주 잠깐의 시간이다’라는 경고문이 적힌 종이를 펼쳐든다. ‘납치 영상’이라는 이름으로 퍼져나간 것과 달리 해당 영상은 ‘납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연출 영상’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무분별하게 전파된 ‘가짜 뉴스’에 현혹됐다. 현지 경찰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온라인에 확산된 루머들을 바로잡으려 노력했고, 오프라인에서도 순찰차를 동원해 해당 영상이 가짜뉴스라는 것을 알렸다. 하지만 카루는 이미 무고한 희생양이 된 후였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대표적 글로벌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은 최근 ‘가짜 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영국 AI기업을 인수하는 등 실질적 방책을 강구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어느덧 ‘팩트체크’가 ‘뉴스’에 항상 따라붙는 단어가 됐다. 가짜 뉴스라는 방아쇠가 빼앗아간 20대 청년의 목숨은 또 얼만큼의 무게를 갖게 될까. 

당신을 위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