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박정권. 잠실|김종원 기자 won@donga.com
SK 와이번스 박정권(37)은 요즘 야구장으로 가는 길이 즐겁다. 평소와는 다른 묵직한 함성, 초록 그라운드를 감싸는 묘한 긴장감이 야구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가을 사나이’, ‘미스터 옥토버’로 통하는 박정권이 가을을 사랑하는 이유다.
박정권이 6년 만에 마주한 한국시리즈(KS)의 문을 힘차게 열었다. 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KS 1차전 6회 승부를 뒤집는 역전 결승 2점 홈런을 쏘아 올렸다. 수많은 가을 무대를 누벼온 그의 포스트시즌(PS) 개인 통산 10호(PO 6·KS 4)다. 부문 1위 기록(14홈런·이승엽)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현역 선수 가운데서는 최고 성적이다. 무엇보다 팀을 시리즈 첫 승(7-3)으로 이끈 결승타로서 가장 큰 의미가 담겼다.
‘가을’은 박정권의 선수 생활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단어다. 2년간 호흡을 맞춘 SK 트레이 힐만 감독도 가을과 관련된 그의 수식어를 익히 알고 있다. 가을에 유독 반짝이는 그의 노하우는 의외로 간단하다. “내가 못하면 동료들이 해준다는 믿음이 있다. 굳이 내가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 힘이 안 들어가는 비결이다. 모두들 힘 빼고 즐겼으면 좋겠다.”
SK의 맏형 격인 박정권은 올해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페넌트레이스 14경기에 나선 것이 전부다. 10월 2일에서야 1군에 합류해 SK의 새로운 가을을 이끌고 있다. “2군에서 힘든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를 붙잡았다. 엔트리에 들지 못하더라도 시즌을 꼭 완주해내고 싶었다. 참다보니 엔트리에 들었고, 기회가 오고, 결과가 따랐다.” 강화도에서 인고의 생활을 이겨낸 박정권은 덕아웃으로 돌아와 그간 나누지 못했던 후배들의 짐을 마음껏 등에 업는다.
박정권은 매 시리즈 1차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와 플레이오프 1차전서도 끝내기 홈런을 때려냈던 그는 KS 1차전서도 큼직한 한방으로 후배들에게 값진 1승을 선물했다. 1차전 데일리 MVP의 주인공도 당연히 박정권의 몫이었다.
KS 1차전 승리 팀이 우승에 닿을 확률은 73.5%다. 박정권이 마련해놓은 놀이터에서 후배들은 마음껏 뛰어놀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 ‘미스터 옥토버’라는 단어만으로는 박정권을 설명할 수 없게 됐다. 쌀쌀해진 11월에도 뜨겁게 달아오르는 그는 이제 ‘미스터 노벰버’로서 명성을 새로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