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 수십개에 영상 수만개 쏟아져… 유포 하루만에 조회 100만 넘기도 도박사이트 홍보하며 기업형 진화 피해 학생 이름-신상 여과없이 공유… 기절한 학생 얼굴 올려 2차 피해도
27일 텔레그램의 한 채널에 입장하자 곧바로 이런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 채널에는 약 200건의 학교폭력(학폭) 영상이 전시돼 있었다. 태어난 연도를 따서 붙여 이제 15세인 ‘11년생 vs 11년생’ 같은 제목 아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지하 주차장 등에서 서로 주먹을 휘두르는 잔혹한 영상은 여과 없이 공유됐다. 심지어 학생의 이름과 신상, 폭행 경위까지 상세히 ‘박제’된 영상 끝에는 “먹튀 없는 베팅 플랫폼”이라는 문구와 함께 불법 도박 사이트 홍보 메시지가 꼬리표처럼 뒤따랐다.
● 온라인 ‘학폭 영상’ 뒷배는 불법 도박 사이트
최근 이처럼 학폭 영상을 집중적으로 올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이 불법 도박 사이트 광고 등 수익 창출의 도구로 변질되며 활개를 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학폭’ ‘맞짱’(맞싸움) ‘현피’(현실에서 만나 싸우는 행위) 등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수십 개의 관련 채널과 수만 개의 게시물이 쏟아진다. 이들 채널은 자극적인 영상으로 접속자를 끌어모은 뒤 채널을 높은 가격에 판매하거나 불법 도박 사이트 광고를 실어 나르는 수익 구조로 운영된다.
이런 채널은 기업형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구독자 1만 명부터 많게는 5만 명까지 거느린 계정들은 ‘XX년생 vs XX년생’ 등 제목을 단 영상 아래 링크로 불법 도박 사이트를 광고하며 수익을 올린다. 폭행을 당해 기절한 학생의 얼굴을 확대하며 ‘죽은 것 아니냐’는 자막을 붙이고 주변에서 환호하는 학생들의 모습까지 담는 등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편집에도 열을 올린다.
● “플랫폼 방치에 확산돼 ‘낙인’”
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SNS 채널이 인기를 얻고, 학폭 피해 학생을 조롱하거나 가해 학생의 폭력성을 과시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서울 송파구의 중학생 이모 군(15)은 “(또래 사이에선)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문화가 있어 사소한 다툼이 벌어져도 촬영부터 한다”며 “당사자가 모르는 사이 SNS에 영상이 공유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교육 당국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와 핫라인을 구축하고 있지만 피해 학생이 직접 유포를 인지하고 삭제를 요청해야 하는 구조여서 선제적 예방은 어려운 상황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교육 당국과 수사기관이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피해 인지 이전 단계에서 유해 영상을 선제적으로 걸러낼 수 있도록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백 의원은 “플랫폼 삭제 협조 의무를 강화하고 관계기관 간 통합 대응 체계 구축을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