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어 있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517.3원에 주간거래를 마쳤다. 2026.3.23 ⓒ 뉴스1
23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6.1원 오른 1517.3원에 마감했다. 장중에는 1517.4원까지 오르며 1520원선에 육박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도 장 초반 4% 넘게 밀리며 사이드카가 발동되는 등 전형적인 ‘리스크오프(위험자산 회피)’ 장세를 보였다.
● 전쟁보다 ‘자금 이동’…달러로 향하는 시장
이번 환율 상승을 단순히 중동 변수로만 보긴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최근 시장을 움직이는 건 사건 자체보다, 그 이후의 자금 흐름이다.
위험을 피하려는 자금이 빠르게 달러 자산으로 몰리고 있다.
국제금융센터(KCIF)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에너지 수입국인 한국의 외환 수급에 구조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티그룹(Citigroup) 역시 고유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금리 인하 시점을 늦추며 달러 강세를 이어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자산 시장의 움직임도 같은 방향이다. 금 가격이 힘을 못 쓰고 있고, 미국 증시와 가상자산도 약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블룸버그(Bloomberg)에 따르면 최근 자산 가격 하락은 단순한 위험 회피를 넘어 투자자들이 현금 확보를 위해 금과 가상자산까지 매도하는 흐름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성격이 다른 자산이 동시에 흔들리는 건 개별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유동성이 빠르게 줄고 있고, 투자자들은 위험자산은 물론 일부 안전자산까지 정리하며 달러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이른바 ‘현금(달러) 중심 시장’이다.
문제는 같은 충격 속에서도 한국 시장이 더 크게 흔들린다는 점이다.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중동 사태를 대규모 원유 공급 충격으로 규정하며,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통화 가치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에너지 수출국으로서 유가 상승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흡수하는 반면, 한국 등은 에너지 비용과 환율 상승 부담을 동시에 떠안고 있다.
가계와 기업의 부채 부담도 변수다. 금리와 환율이 동시에 오르면 금융 비용이 빠르게 늘고, 결국 실물경제로 부담이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
● “1500원대, 잠깐 아닐 수도”
시장에서는 1500원대 환율을 일시적인 급등으로만 보지 않는 시각도 나온다.
과거에는 특정 사건 이후 환율이 빠르게 되돌아오는 흐름이 반복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전쟁 리스크와 고금리,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환율이 일정 수준 위에서 머무는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물론 변수는 있다. 외환당국의 구두 개입이나 시장 안정 조치에 따라 단기적인 흐름은 달라질 수 있다.
향후 환율은 중동 상황과 글로벌 자금 흐름에 따라 방향이 갈릴 전망이다. 다만 구조적인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원화 약세가 빠르게 되돌려지기는 쉽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결국 지금의 환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위기의 신호이자, 바뀐 환경을 드러내는 결과다. 1500원대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