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조기발병 알츠하이머 환자인 그는 3년간의 경험을 묵히지 않았다. 31년간 노인 환자들을 돌본 전문 지식을 더해 ‘더욱 적극적인 조기 진단’의 필요성과 이를 뒷받침할 정책 마련을 제안했다.
사연의 주인공은 미국인이다. 한국과 미국은 의료 현실이 다르다. 그럼에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소개한다.
월스트리트저널과 폭스 뉴스에 자신의 사례를 기고한 이는 오클라호마대학교 의대에서 내과 전문의를 따고 존스 홉킨스에서 추가 전문 수련(펠로우십)을 마친 브렌트 비즐리(Brent Beasley)다. 올해 60세인 그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오클라호마 털사 지역 병원에서 근무하며 학술 클리닉을 운영하고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교육을 담당하던 베테랑 내과의사였다.
사실 그는 1년 전부터 이상 증상을 겪었다. 게임을 할 때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고, 설거지한 그릇을 엉뚱한 곳에 넣었으며, 휴대폰을 자주 잃어버렸다. 아내가 이미 답한 질문을 반복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나이 57세. 알츠하이머병을 떠올리기엔 너무 젊은 나이였다.
의료계에 인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알츠하이머병 확진을 받기까지 거의 1년이 걸렸다. 의사였음에도 진단까지 1년 가까이 걸렸다는 점은 조기 진단의 현실적 한계를 보여준다. 그는 알츠하이머 병리와 밀접하게 연관된 혈액 기반 생체지표(p-Tau217) 검사에서 이상 소견을 보였고, 이후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PET)과 척수액 검사(요추천자)에서 결국 진단이 확정됐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하여 의료진의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었다. 알츠하이머병을 조기에 진단하는 것은 치료 개입이 가능한 시기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1기 암을 발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캔자스대학교 알츠하이머 연구센터의 제안으로 뇌에 축적된 아밀로이드 단백질 제거를 표적으로 하는 단일클론항체 치료를 받았고, 이후 인지 기능 저하 속도가 늦춰졌으며 일부 기능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57세에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전직 의사 브렌드 비즈리 씨와 그의 아내.
이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알츠하이머병은 초기 단계에서 진행 억제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난다. 현재의 신약 치료는 초기 또는 경도 단계에서 가장 효과가 크고 진행된 이후에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그는 이처럼 삶을 되돌릴 수 있는 치료가 있다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 의료 시스템은 초기 치료가 아닌 말기 알츠하이머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인지 저하는 흔히 단순한 노화로 치부되고, 전문의 진료를 받기까지 대기 시간이 길다. 결국 치료가 가능한 시기를 놓친 뒤에야 진단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핵심은 조기 진단이다.
그는 1차 진료에서 조기진단이 일상화돼야 한다고 제안한다. 혈액 기반 바이오마커 검사나 표준화된 인지 평가를 통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이런 검사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신경과 전문의로 몰리면서 6개월~1년 지연이 발생한다. 이러한 검사는 일부 대형 병원이 아니라 누구나 이용 가능해야 하며 보험 적용도 이뤄져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국내에서도 조기 진단 대상 연령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보건복지부는 치매 조기 검진 사업을 펼치고 있다. 치매 발병 위험이 높은 만 60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치매 조기 검진을 실시하여 치매 환자를 조기에 발견·관리하는 게 골자다. 다만 현행 제도는 60세 이상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그보다 젊은 연령층은 상당 부분 자비로 검사를 받아야 하는 한계가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대상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45세 기준 평생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은 여성 5명 중 1명, 남성 10명 중 1명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앞서 소개했듯 치매는 최대한 빨리 발견해 대처하는 것이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