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때 상식처럼 통했으나 지금은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던 이 말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심장협회(AHA)가 지난 7월 학술지 서큘레이션(Circulation)에 발표한 과학적 검토 논문에서, 하루 1~2잔의 가벼운 음주는 관상동맥질환이나 뇌졸중 위험을 높이지 않으며 오히려 낮출 가능성도 있다고 정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결론을 두고 의료계와 공중 보건 전문가들 사이에서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방울의 알코올도 암 위험을 높인다”라는 최신 연구 결과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이유에서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이미 오래전 알코올을 ‘1군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구강암, 식도암, 간암, 대장암, 유방암 등 최소 7가지 이상의 암 발생 위험이 음주량에 비례해 증가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에서 입증됐다. 특히 최근 연구들은 소량·경도 음주에서도 암 위험이 상승한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보고했다.
그런데도 미국심장협회는 심혈관 질환만을 기준으로 “가벼운 음주는 해롭지 않을 수 있다”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협회 측은 “이는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심장 전문의를 위한 학술적 검토일 뿐”이라며 선을 긋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메시지 자체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소량의 술이 건강에 좋다는 이론은 존스홉킨스대 인체 생물학 교수였던 레이먼드 펄 박사가 1920년대 처음 제시했다. 이른바 ‘J자형 곡선’ 모델이다. 그의 관찰연구에 따르면 과음자는 사망률이 가장 높았고(J의 오른쪽 위), 가벼운 음주자는 사망률이 가장 낮았으며(J의 바닥), 금주자는 가벼운 음주자보다는 사망률이 높지만, 과음자보다는 낮았다(J의 왼쪽 끝).
하지만 2000년대 초 새로운 시각이 등장했다.
과거 연구에서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들’에는 이미 질병 때문에 술을 끊은 사람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고, ‘적당히 마시는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실천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 등이 지적됐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유전적 특성을 활용한 ‘멘델리안 무작위 분석’ 연구들이다. 이 연구들은 술을 잘 못 마시게 만드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을 분석했다. 체질 때문에 평생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이들은 J자형 곡선과 달리 심혈관 질환이나 조기 사망 위험이 가벼운 음주자와 비교해 더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적당한 음주가 심장을 보호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하지 못한 것이다.
유럽 심장 네트워크(European Heart Net 세계심장 연맹(World Heart Federation) 같은 단체들은 적당한 음주 역시 심혈관 질환 위험을 높인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번 논문은 AHA의 기존 식이·생활 습관 권고인 ‘알코올 섭취는 제한하거나 가능하면 하지 말 것’, 그리고 2023년 발표한 ‘안전한 알코올 섭취 수준은 없다’라는 발표와도 어긋나는 듯 보인다.
AHA의 태도 변화는 실제 미국민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현재 미국인 식이 지침에서는 남성은 하루 2잔, 여성은 하루 1잔까지를 허용하고 있다. (1잔은 순수 알코올 14g으로 맥주 355㎖, 와인 150㎖, 증류주 45㎖에 해당한다.)
일련의 변화에 미국 주류업계의 로비가 작동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번 건은 과학적 불확실성이 큰 결론을 정책 근거로 삼는 순간, 그 피해는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로 확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