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한반도에서 양의 사육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염소는 약 2000년 전부터 사육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에 염소가 명확히 등장하는 시점은 조선 초기다. 이처럼 언어적으로 양과 염소를 엄밀히 구별하지 못했던 인식은 한의학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의학에서는 양과 염소, 두 가축의 효능에 차이가 없다고 본다. 그래서 양과 염소를 통칭해 ‘양육(羊肉)’, 즉 ‘양고기’라고 불렀다.
세종 재위 13년 ‘세종실록’에는 세종의 소갈병(당뇨)이 심해지자, 당뇨병 환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갈증을 치료할 약물을 대신들에게 묻는 대목이 나온다. 대신은 의원들의 말을 인용해 “흰 장닭과 누른 암꿩, 양고기 등은 모두 갈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아뢰었지만, 세종은 “양은 본국에서 나는 가축이 아니니 더욱 먹을 수 없는 것”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이 같은 기록은 현대 의학의 연구 성과와도 맞닿아 있다. 흑염소에 풍부한 아라키돈산은 인슐린 민감성을 개선하고 염증을 조절해 당뇨의 예방과 관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염소고기는 인체 전반의 기력을 북돋는 음식이다. 또한 시력과 청력, 폐의 호흡 기능을 강화하는 데 효과가 있다. 염소의 눈은 초점이 없는 원시다. 염소의 원시는 먼 풍경을 보는 데 적합하다. 동의보감에는 “사람의 시력을 좋게 하는 데는 양의 간으로 만든 ‘양간환’이 좋다”고 기록돼 있다.
염소고기는 청력을 높이는 효능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월대보름에 마시는 술을 ‘귀밝이술’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귀를 전깃불처럼 밝힌다는 뜻이다. 동의보감은 귀를 밝히는 힘, 즉 청력을 강화하는 대표적 약재로 양신(羊腎), 즉 양의 콩팥을 꼽는다. 실제 양신이 들어간 ‘자석양신환’은 예부터 현재까지 오랫동안 청력이 저하된 사람에게 널리 쓰여 온 대표적인 처방이다.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민간 처방도 전해진다. 500g 안팎의 자라와 양고기 250g 정도를 함께 끓여 먹으면 이명이나 저하된 청력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이 밖에도 폐 기능이 약해 호흡에 지장을 겪는 사람에게 쓰인 대표적 처방인 ‘양폐탕’에도 양고기, 즉 염소고기가 들어간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