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사돈은 옛말”… 요즘 대기업 혼맥, 이렇게 변했다

황수영 기자 2025-11-12 15:36

최태원 SK그룹 회장 차녀 최민정씨와 예비 신랑 케빈 황의 웨딩 촬영 사진. 뉴스1

국내 대기업 오너 일가의 결혼 형태가 변화하고 있다. 과거 정계나 관료 집안과 사돈을 맺는 ‘정략결혼’이 주를 이뤘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재계 내부 또는 일반인과의 혼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정치권 인맥이 더 이상 사업 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감시와 규제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2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지정 총수가 있는 공시대상기업집단 81곳의 총수 일가 380명을 조사한 결과, 오너 3세 이후 세대부터 정·관계 혼맥 비중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세대 중심으로 이어진 정·관계 혼맥

대기업 혼맥, ‘정·관계’ 줄고 ‘재계·일반인’ 늘었다. ⓒ뉴시스



오너 2세대의 정·관계 혼맥 비중은 24.1%에 달했으며, 2000년 이전 총수 일가 결혼 중 24.2%가 정치권이나 관료 집안과의 혼맥으로 집계됐다. 대표적으로 HD현대, LS, SK그룹이 해당한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고(故) 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의 딸 김영명 씨와, 구자열 LS그룹 이사회 의장은 고 이재전 전 대통령 경호실 차장의 딸 이현주 씨와 각각 결혼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1988년 결혼했으나, 지난달 대법원에서 이혼이 확정됐다.

오너 3세 이후 ‘정·관계 혼맥’ 급감

반면 오너 3세의 정·관계 혼맥 비중은 14.1%, 4~5세는 6.9%로 감소했다. 2000년 이후 전체 혼인 중 정·관계 혼맥 비율은 7.4%로 급감했다.

대신 재계 간 혼맥과 일반인과의 결혼이 늘었다. 2000년 이전 39.2%였던 재계 간 혼맥은 2000년 이후 48.0%로 8.8%포인트 증가했으며, 일반인과의 혼맥도 같은 기간 24.6%에서 31.4%로 6.8%포인트 늘었다.

● LS, 7개 그룹과 혼맥…“가장 넓은 연결망”

그룹 간 혼맥에서는 LS그룹이 가장 활발했다. LS는 두산·현대자동차·OCI·BGF·삼표·사조·동국제강 등 7개 그룹과 연결됐다.

이어 LG와 GS가 각각 4개 그룹과 관계를 맺은 것으로 조사됐다. LG는 DL, 삼성, GS, 두산 그리고 GS는 LG, 삼표, 중앙, 태광과 혼맥을 형성했다. 특히 GS는 범(汎)GS 계열로 확장하면 금호석유화학과 세아그룹과도 이어진다.

● 연예인·일반인과 결혼하는 오너 4세들

최근에는 연예인을 포함한 일반인과의 결혼도 늘고 있다. CJ 오너 4세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 리더는 아나운서 이다희 씨와 결혼했으며, 현대자동차 4세 선아영 씨(정성이 이노션 고문 자녀)는 배우 길용우 씨의 아들과 혼인했다. 또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자녀 정유미 씨는 일반인과, 정준 씨는 세계적인 프로골프선수 리디아 고와 결혼했다.

● “정치권 인맥, 더 이상 자산 아냐…리스크 회피 전략”

CEO스코어는 “과거에는 정·관계와 혼맥을 맺는 것이 사업에 도움이 됐지만, 최근에는 정치권과의 연대가 오히려 감시와 규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며 “대기업 총수 일가의 혼맥이 사업 수단에서 벗어나, 서로를 잘 이해하는 기업이나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황수영 기자 ghkdtndud119@donga.com

당신을 위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