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일가족 살인 혐의를 받아 1980년 사형이 확정됐다가 사건 58년 만에 2심서 무죄판결을 받은 전직 복서 하카마다 이와오 씨. 사진출처 하카다마 블로그
세계에서 가장 오래 복역한 사형수로 알려진 전직 일본 프로복서 하카마다 이와오(袴田巖·88) 씨가 법원에서 재심(再審)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살인범으로 붙잡힌지 58년 만에 모든 누명을 벗게 됐다.
일본 시즈오카지법은 26일 일가족 4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던 하카마다를 “범인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증거를 날조했다”고도 인정했다.
이른바 ‘하카마다 사건’이라 불리는 해당 사건은 일본에서 형사사법 제도의 문제점과 사형 폐지 논란을 다룰 때마다 등장한다. 하카마다는 1966년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에서 자신이 일하던 된장 공장의 전무 일가족 4명을 살해하고 불을 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폭행과 강압 수사로 어쩔 수 없이 거짓 진술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1980년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까지 받았다.
강제 자백과 조작된 증거에 근거한 살인 유죄 판결을 받은 후 거의 60년 동안 사형수 생활을 해온 88세의 전직 복서 이와오 하카마다(왼쪽)가 25일 일본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에서 지지자의 도움을 받으며 산책을 하고 있다. 시즈오카=AP 뉴시스
하지만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누나 히데코 씨는 꾸준히 동생의 무죄를 주장했다. 사형 판결 증거였던 혈흔이 묻은 옷이 이와오 씨의 몸에 맞지 않고 사건 발생 9개월 만에 발견됐다는 이유였다. 이후 유전자 검사에서 실제로 혈흔이 하카마다 유전자와 불일치한다는 게 밝혀지며 상황은 역전됐다. 2차에 걸친 재심 청구 끝에 2014년 재심이 결정되면서 하카마다는 48년 만에 보석으로 석방됐다. 2020년 대법원에서 재심 결정이 최종 확정됐고, 이날 재심에서 무죄로 인정됐다.
석방 뒤 자택에서 지내고 있는 하카마다는 오랜 복역 후유증과 고령 탓에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다. 10년 전 판사로 재심 결정을 내린 무라야마 히로아키(村山浩昭) 변호사는 “내가 재심 개시를 내렸기 때문에 무죄를 간절히 바랐다”며 “검찰은 절대 항소해선 안 된다. 무죄 판결이 나왔으니 그에게 자유의 몸이 됐다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카마다 사건의 진범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