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 김혜수 매니저로 시작해 소속사 대표이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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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2020-02-02 16: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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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준이 대표로 있던 배우 매니지먼트사.’

사람들이 ‘키이스트’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많이 떠올리는 이미지다. 틀린 건 아니다. 배우 손현주 우도환 정려원 주지훈 소이현 등이 소속된 손꼽히는 매니지먼트 업체다.



2012년 콘텐츠 제작 전담 자회사 ‘콘텐츠K’를 세워 드라마 ‘응급남녀’ ‘보이스’ 시리즈, ‘밤을 걷는 선비’ 등을 선보였다. 하지만 ‘배용준 회사’라는 딱지를 떼어낼 만한 작품을 배출하지는 못했다.

키이스트는 지금 한국판 윌리엄모리스인데버(WME)를 꿈꾼다. WME는 연예인 소속사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방송서부터 책, 디지털 콘텐츠까지 제작하는 종합 콘텐츠 업체다.

박성혜 대표이사/사진=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한국의 WME로 가는 길을 닦고 있는 이가 박성혜 대표이사(50)다. 2018년 11월 취임한 박 대표는 키이스트의 콘텐츠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는 연예계에서 스타 매니저로 불렸다. 1990년대 초반 배우 김혜수의 매니저로 시작해 황정민 임수정 공효진 하정우 공유 등을 발굴하며 2000년대 첫 10년간 연예기획사 ‘싸이더스HQ’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서울 강남구 키이스트 본사에서 만난 박 대표의 머릿속은 온통 콘텐츠로 가득했다. 그는 다짜고짜 “케이팝이 왜 세계에서 인기 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기자가 3초 정도 머뭇거리자 “보는 음악이라 그래요”라고 스스로 답했다. 그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사진=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고속도로를 배경으로 댄서 수십 명이 차들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며 춤추는 ‘라라랜드’ 오프닝 같은 거요. 그런 스케일의 ‘케이팝 드라마’를 보여줄 겁니다.”

케이팝의 인기 요소인 이른바 칼군무, 화려한 의상 같은 시각효과를 최대로 살린 ‘케이팝 드라마’를 올해 제작한다는 구상이었다.

박 대표는 지난해 1년을 이 같은 콘텐츠 제작을 위해 대열을 정비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2011년 콘텐츠 제작사 ‘오보이 프로젝트’를 만들어 ‘꽃미남 라면가게’ ‘화랑: 더 비기닝’ 같은 드라마를 만들며 겪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필요한 것들을 끌어들였다.


먼저 모회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제작역량을 키이스트에 집중시켰다. SM 계열사인 ‘SM C&C’의 드라마 사업 부문을 가져왔고 ‘콘텐츠K’와 합병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장태유 PD,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이형민 PD 같은 실력파 제작진도 대거 영입했다. 토대가 갖춰졌다.

키이스트는 올해 드라마 8편을 제작한다. 지상파 종편 넷플릭스를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에서 방영할 계획이다. 자체 제작 드라마 ‘하이에나’(SBS)가 오는 2월 21일 첫 시험대에 오른다. 김혜수와 주지훈이 변호사로 나오는 법정 드라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방영될 ‘보건교사 안은영’ ‘나의 위험한 아내’(MBN) ‘허쉬’(JTBC) 등도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정통파 드라마만이 아니다. 최근 업계 트렌드로 등장한 ‘숏폼(짧은 형식)’ 콘텐츠 제작업체 ‘플레이리스트’와 손잡고 학교를 배경으로 한 청춘 드라마를 만들 예정이다.

박 대표는 세계에서 먹히는 콘텐츠 제작이라는 큰 꿈을 꾸고 있다.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6부작으로 방영된 조선시대 좀비 드라마 ‘킹덤’은 그에게 모범답안 비슷하다.

박 대표는 방탄소년단과 영화 ‘기생충’으로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 주류 무대에 서기에 모자라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콘텐츠 제작사의 경쟁력은 글로벌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판 ‘어벤저스’, 저희가 못 만들라는 법 있나요?” 박 대표가 씩 웃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