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군 법무관 퇴직하고 유튜버 된 변호사

dlab@donga.com2020-01-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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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소중한 것인데,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강인한 스파르타인으로 살아서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원한다"

숙명여대 경제학과에서 고려대 법대로. 군 법무관에서 유튜버 '아는 변호사'로 변화해온 이지훈 씨(42)가 20대부터 삶의 지표로 삼고 있는 말입니다. 주체적인 삶을 쟁취하기 위해서 강인하게 살아가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한다는 의미를 되새기며 자주 떠올리는 말이라는데요. 그 말처럼 이 씨는 2019년 군 법무관이라는 안정적인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 씨는 2018년 12월에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채널에는 이 씨가 대한민국 40대 여성이자 변호사로 살아온 경험을 공유하는 영상이 주를 이룹니다. 결혼, 이혼에 관한 인생 조언과 사법 시험을 준비하면서 익힌 공부법이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또한 군 법무관으로 일한 이력을 살려 예비 군인과 부모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10년 넘게 군에서 근무를 하고 퇴임을 하셨잖아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셨나요? 

"제가 30대 때랑 40대 때랑 에너지가 다른 걸 느꼈어요. 30대 후반에는 진짜 아무런 거침이 없었고, 계획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니까 스스로 제한을 두지 않았는데, 40대가 되니까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상태로 가면 40대 후반에 아무것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예 새로운 시도를 못할 것 같은? 이미 늦었다고 생각을 한 거죠"

"연금까지 생각하면 네가 나가도 여기보다 더 못 벌 수도 있다는 얘기를 엄청 많이 들었어요. 변호사 개업하면 사무실 유지비 나가고, 네가 받아 가는 게 군에 있을 때가 더 많다. 물론 그게 안정적이긴 하지만 계속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사는 거는 참기 어려웠죠. 나가서 내가 열심히 하고 잘하면, 이보다 못할 것 같지는 않은데 라는 생각도 들었고. 자유를 억압당하면서 살고 싶지 않은 생각도 있었고. 예를 들어서 군인은 해외여행을 가려면 한 달 전에 허가를 받아야 해요. 그런 것도 조금 제약이라고 느껴졌고, 업무가 재미가 없고. 뭐 자유롭게 살다가 망할 수도 있겠죠. 그러면 뭐 어쩔 수 없는 거고"

출처 촬영 권혁성PD hskwon@donga.com
2005년 군 법무관으로 임관한 이 씨는 2019년 6월, 장장 14년의 군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진짜 하고 싶은 것, 진짜 재미있는 것을 하기 위해서 전역 지원서를 제출했지만 걱정과 두려움은 있었습니다.

"가장 두려웠던 거는 이 선택에 대한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는 게 두려웠고요. 솔직히 20대 때까지는 실패해도 다시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다른 사람들한테 의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마흔이 되어서는 제가 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족도 있으니까요. 1년만 더 있다가 나갈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결국은 나가는 거로 결정을 내렸어요. 근데 결정을 내리고 나서도 힘들잖아요. 그래서 유튜브를 하게 된 거예요. 몰입할 걸 찾았던 거죠"

출처='아는 변호사' 유튜브 캡쳐
평소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것을 좋아하던 이 씨에게 유튜브는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군인 신분으로 유튜브를 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법률 해석상으로는 가능하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전역 지원서는 이미 냈고. 퇴직하는 거는 생각하지 않고 남은 기간 힘든 걸 어떻게 이겨낼까 였는데 영상 찍는 거 생각하고, 편집하는 거로 바빴으니까. 뭔가 계속 아이디어를 내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출퇴근하면서 혼자 웃으면서 다니고, 그랬죠"

"처음에 12월에 영상을 올리면서 물론 쑥스럽기도 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편집하면서 혼자 막 웃고. 이게 어떤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행복했어요. 그 만드는 과정이. 또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 제가 군에 대한 얘기를 절대 하지 않고 군인이라는 얘기도 안 했거든요. 군인이기 때문에 정확히 밝힐 수도 없었지만 이름도 얘기 안 했고, 그냥 아는 변호사로. 사람들이 어떤 공무원이냐고 댓글에 막 물어보는 거죠. 자기들끼리 막 추측을 해요. 그런 걸 보고 있으면 너무 재미있었어요"

출처 촬영 권혁성PD hskwon@donga.com
요즘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다른 변호사분들도 계시잖아요. 그런 영상에 비해서 '아는 변호사' 채널이 특별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단은 여러 가지 경험이 있잖아요. 저 자신이 20대 30대에 여러 가지 경험을 했고, 그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많은 성장을 한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변호사로서 얘기한다기보다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 저의 모든 경험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죠. 그래서 내용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변호사분들이 올리는 공부법 같은 거는 겹치겠지만, 저는 공부도 인생의 과정이라고 보거든요. 공부법이 결국은 인생을 살아가는 법이라고 보고 있어서 그런 기술적인 것보다도 인간의 근본적인 것들을 조금 얘기하고 싶은 거죠. 저는 조금 더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외에도 이 씨는 군 법무관으로 복무한 이력을 살려 '군알못 가이드' 영상을 업로드하기도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군인도 권리가 있다는 거예요. 군인이면 다 참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우리 법은 분명히 일정한 권리를 주고 있단 말이에요. 근데 그거를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요. 특히 병사들이 군에 가면 여군, 간부도 마찬가지고 내 권리를 모르는 거죠. 그래서 되게 쉽게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커지거나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생겨요. 최소한 어떤 사례가 있었고, 어떻게 됐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군알못 가이드를 하는 거예요"

출처 촬영 권혁성PD hskwon@donga.com
군 법무관에서 변호사 유튜버로 직업을 바꾸시면서 변호사님 스스로가 변했다고 느끼는 점은 어떤 것인가요? 

"가장 큰 변화는 삼십 대 후반쯤에 찾아온 우울증이었어요. 그때 제가 십 개월 동안 고생을 했는데, 그게 제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군 법무관도 그렇고 내가 이런 삶을 원했나? 하는 의문이 드는 거예요. 되짚어 보니깐 내가 과연 20대 때는 어떤 시험이나 목표를 세우고 그걸 달성했는데 그 이후에 나는 어떤 목표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되게 놀랐죠, 어떻게 이러고 살았지 십 년을? 그러면서 이제 모든 게 무너지는 거죠"

그러면 그런 변화로 인해서 우울증이 조금 진정이 된 것인가요? 

"그랬던 거 같아요. 생각을 바꾸는 그 기간이 십 개월이 걸린 거죠. 나는 이미 많은 결정을 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이대로 살아야 해. 이 조건은 바뀌지 않아. 그런 생각을 했죠. 근데 이런 생각들을 하나씩 깨부수는 과정에서 이제 할 수 있다고 바뀐 거죠. 내가 무언가 계획을 다시 세우고 그 과정에서 전처럼 즐겁게 살 수 있고 50대에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출처 촬영 권혁성PD hskwon@donga.com
이렇게 변화를 시도해왔음에도, 이 씨는 또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변호사 일의 영역을 넓혀보고 싶어요. 변호사가 하는 일을. 우리는 변호사가 형사 변론하고 민사, 행정, 이런 사건을 수임해서 한다고 한정하고 있잖아요. 근데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많거든요. 새로운 걸 창조해낼 수 있는 거죠. 기존에 안 하던 일들을"

"간단하게는 교육 사업이 있겠고요. 지금은 군 관련 된 것이랑 생활 법률을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생활은 법이랑 떼려야 뗄 수 없거든요. 그거에 대한 교육, 특히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 이런 거는 상식으로 알아야 할 것 같아요. 또 군인들의 권리에 대해서. 군인 자신도, 가족들도. 그런 것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할 예정입니다"

동아닷컴 진묘경 인턴기자 dla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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