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팬이라 한국어 배웠다가…20대에 임원 됐습니다”

kimgaong@donga.com2019-09-22 16:00:01
공유하기 닫기
초등학생 시절 1세대 아이돌 ‘신화’를 좋아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배웠다는 대만 여성. 그는 20대에 한국 기업 임원이 됐습니다.

3년 전 성인 실무 교육 기업 ‘패스트캠퍼스’에 입사하면서 한국으로 이민 온 서유라(先玉; Xianyu·28) 씨는 “신화를 좋아해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 것이 내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2016년 2월 패스트캠퍼스 신입 직원으로 입사한 그는 2018년 8월 사내 교육 브랜드인 ‘패스트원’이 ‘패스트캠퍼스랭귀지’로 분사하면서 총괄이사직에 올랐습니다.

서유라 총괄이사. 사진=권혁성 PD hskwon@donga.com
대만 국적인 그는 어릴 적부터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 미국, 캐나다 등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덕분에 영어,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합니다.

초등학생 시절 서 씨는 ‘아리랑TV’에서 신화의 ‘Hey, Come On!’ 무대를 본 후 푹 빠져버렸습니다.

“신화 팬클럽에 가입하고 싶었는데 영어로 된 사이트가 없었어요. 필리핀에서 국제학교에 다니던 때 한국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서 신화 팬클럽에 가입했습니다.”

동아일보DB
그는 한국의 신화 팬들과 대화를 하고 팬픽을 읽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합니다. 토론토대학교 재학 중에는 고려대학교로 교환학생을 오기도 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가족 같은 문화’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했어요. 저에게 무료로 가이드를 해주었죠.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정신없이 놀았습니다. 고연전도 가고, 막걸리도 먹으러 다니고, 쇼핑도 다녔는데 너무 즐겁고 새로웠습니다.”

지하 2층 파리 날리는 사무실... 다단계 회사인 줄 알았죠
서 씨는 대학 졸업 후 캐나다의 벤처투자사에 콘텐츠 마케터로 입사했습니다. 오후 4시면 통근버스가 떠날 정도로 ‘워라밸’이 최고인 회사였지만 만족스럽지 못 했습니다.

“이대로 살다간 서른 살까지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 상해, 도쿄 등 바쁜 도시로 이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패스트캠퍼스’ 채용공고를 접했고 2016년 2월 입사했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으로 이민을 온 겁니다.

당시 패스트캠퍼스는 엑셀, 마케팅 등 직장인 실무교육에집중하는 회사였습니다. 서 씨는 ‘외국어 교육 사업’ TF팀으로 들어갔습니다.

서유라 이사 제공
“초기에 지하 2층에 파리 날아다니는 사무실에서 일했어요. 친구들이 사무실을 보고 다단계 회사 같다면서 제가 외국인이라 모르는 것 같다며 저를 말리더라고요.”

그는 국내 외국어시장을 분석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서 씨는 “다른 학원에서 올린 채용공고를 보는데 '쓰레기' 같은 곳이 많았어요. ‘백인이면 그냥 앞에 서있기만 하면 된다’ 이런 말들이 적혀 있었어요. 더 이상 한국에 ‘어학 호구’가 없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의지대로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30명 직장인이 그룹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습니다. 1년 간 적자를 본 회사 대표는 외국어 사업을 접자고 말했습니다.

외국어 사업이 없어지면 한국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처했던 서 씨는 대표에게 1:1 외국어 교육 모델을 제안했습니다. 그룹보다 수업료가 비쌌지만 수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서유라 총괄이사. 사진=권혁성 PD hskwon@donga.com
“TF를 운영하면서 이것저것 ‘삽질’을 많이 했는데 1:1 영어교육 수요가 있었어요. 제가 실제로 시간당 15만 원(지금은 6만원대)에 수업을 해봤는데 수강생이 50명이 몰렸거든요.” 

서 씨가 제안한 1:1 원어민 영어교육 모델은 사업 첫 날 2800만 원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2017년 2월 역삼에 영어교육 센터가 개설됐고, 현재 실 수강생이 1300명으로 늘었습니다. 교육센터도 4개로 늘었습니다.

삼성 다니는 친구에게 ‘이메일’ 검사받았죠
서유라 총괄이사. 사진=권혁성 PD hskwon@donga.com
일 잘 하는 서 씨도 입사 초기에는 한국어가 미숙해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캐나다에서 일할 때처럼 필요한 말만 직설적으로 하다 보니 ‘무례하다’, ‘하대하는 것 같다’ 등의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고객 서비스도 직접 담당하던 사업 초기에는 환불 문의하는 고객에게 “환불 안 돼요”라고 말했다가 대표를 통해 컴플레인이 들어온 적도 있습니다.

팀원들도 서 씨에게 “같이 일하는 건 너무 좋은데 말하는 방식 때문에 힘들다”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서 씨는 한국어 말하기 책 5권을 사서 읽으며 말하는 방식을 고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메일을 보낼 때는 삼성 다니는 친구한테 미리 보여주고 ‘어때?’ ‘재수 없어?’ 이렇게 물어보곤 했어요”라고 전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에 서 씨는 훌륭한 팀원들과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는 “저는 운이 정말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너무 좋은 사람들이랑 일하고 있어요. 캐나다에서 스타트업하는 친구들이 ‘그런 사람 어디서 구해?’라고 물어볼 정도예요”라며 자부심을 보였습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사람들이 ’성인 어학교육’ 하면 패스트캠퍼스 랭귀지 브랜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제가 한국어를 배워서 인생이 완전히 변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줄 수 있는 어학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김가영 기자 kimgaong@donga.com

카톡에서 소다 채널 추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