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곁에서 7년간 산 남자…이것도 사랑일까

celsetta@donga.com2017-07-12 15: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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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탄츨러(좌) / 마리아 엘레나 밀라그로 데 호요스(우). 사진=Florida Keys Public Library
사랑하던 여인이 세상을 떠나자 그 시신 옆에서 7년 동안 생활한 남자가 있습니다. 1930년대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칼 탄츨러(Carl Tazler)의 오싹한 사랑(?)이야기입니다.

독일 출신 방사선사였던 탄츨러는 1930년 미국 플로리다로 이주했습니다. 그는 칼 폰 코셀(Carl von Cosel)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미국 해군 병원 방사선과에 취직해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결핵 때문에 병원을 찾은 쿠바계 여성 환자 마리아 엘레나 밀라그로 데 호요스(Maria Elena Milagro de Hoyos)를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탄츨러는 어릴 적부터 이국적인 미녀와 사랑에 빠지는 환상을 봐 왔다며 엘레나야말로 자신의 운명적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당시 엘레나는 21세에 불과했고 탄츨러는 50대였으며 심지어 아내와 두 딸까지 있었지만 그는 ‘진정한 사랑’을 찾은 기쁨에 취해 있었습니다. 엘레나는 자기 아버지 뻘인데다 유부남인 탄츨러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그는 열정적으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탄츨러가 엘레나를 위해 만들어 준 묘역. 사진=Florida Keys Public Library
탄츨러가 취해 있던 ‘사랑의 꿈’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엘레나는 1931년 10월 25일 결핵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탄츨러는 크게 슬퍼하며 엘레나의 장례식 비용을 대 주는 것은 물론 기념 묘역까지 세워 주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1년 반 동안 매일 밤마다 엘레나의 묘에 들러 그를 애도했습니다.

여기까지만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탄츨러의 ‘사랑’은 곧 소름 끼치는 집착과 광기로 변했습니다. 그는 1933년 엘레나 가족의 동의도 없이 묘를 파내고 여인의 시신을 손수레에 실어 자기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이후 그는 반쯤 부패된 엘레나의 시신을 철사와 실크 천, 왁스 등으로 ‘보수’했습니다. 안구가 있었던 자리에는 유리구슬을 끼워 넣고 갈비뼈 안과 복부에는 천조각을 채워 넣어 산 사람 형태를 흉내 냈습니다.

탄츨러는 엘레나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을 시신에 씌우기도 했습니다. 이 가발은 엘레나가 사망했을 당시 탄츨러를 측은하게 여긴 엘레나 어머니가 ‘딸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것이니 이거라도 보며 위안을 삼으라’며 그에게 건넨 물건이었습니다.

옷을 입히고 장신구로 시신을 장식했지만 냄새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의료계 종사자인 탄츨러는 냄새를 가리기 위해 많은 양의 방부제를 동원했고 엄청난 양의 향수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밤마다 ‘신부’를 끌어안고 잠이 들었고 시신을 일으켜 세워 안은 채 왈츠를 추기도 했습니다.

이 오싹한 동거는 7년 동안이나 이어졌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듯이 탄츨러의 기묘한 생활은 곧 조금씩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엘레나 가족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엘레나의 동생 플로린다(Florinda)는 탄츨러의 집을 급습했고 자기 언니의 시신이 끔찍하게 꾸며진 채 방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플로린다는 바로 경찰을 불렀고 탄츨러는 묘지 훼손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대중에게 공개된 엘레나의 시신. 사진=Florida Keys Public Library
탄츨러는 “비행선(Airship)을 만들어 엘레나의 시신을 태워 성층권까지 올라가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사진=Florida Keys Public Library
체포당한 탄츨러는 “사랑하는 엘레나의 영혼이 밤마다 스페인어로 내게 노래를 불러 주었다. 엘레나가 내게 ‘어서 나를 데리고 나가 줘요’라고 속삭였기에 묘지에서 데리고 나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조만간 비행선을 만들어 엘레나의 시신을 태우고 성층권까지 올라갈 계획이었다며 “우주에서 오는 방사선을 몸에 쬐면 잠들어 있던 세포조직이 깨어나고 엘레나는 부활할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이 충격적인 이야기는 바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탄츨러는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놀랍게도 많은 이들, 특히 여성들이 탄츨러를 동정했다는데요. 당시 사람들은 “오죽 사랑했으면 그랬겠느냐”, “로맨틱한 미치광이다”, “선처해야 한다”며 그를 안쓰럽게 여겼습니다.

이후 엘레나의 시신은 대중에게 공개된 후 2차 도굴을 막기 위해 이름 없는 묘역에 묻혔고, 탄츨러는 엘레나의 얼굴에 덮어 두었던 가면을 벗삼아 여생을 보냈습니다. 비록 제정신이 아닌 남편이었고 오랜 기간 별거하던 중이었지만 탄츨러의 부인은 남편이 평생 조용히 살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고 합니다.‌‌사랑과 광기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만 탄츨러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러 매체를 통해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는 플로리다 주 파스코 카운티에서 홀로 살다 1950년 7월 3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사망한 지 한 달 여 만에 발견된 탄츨러의 시신은 ‘가면’이 씌워진 큼직한 인형을 껴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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