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된 세월호 휴대전화에서 고(故) 단원고 강 모 교감이 세월호 출항을 반대한 정황이 나왔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5월 26일 휴대전화 2대의 데이터를 복구해 이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보고서를 공개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복구된 휴대전화에서는 출항일인 2014년 4월 15일 오후 6시 42분 "안개로 못 갈 듯"이라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전송됐다. 이어 오후 7시 2분에는 "교감을 취소 원하고"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세월호는 지난 2014년 4월 15일 오후 9시에 승객 476명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발했다. 당초 오후 6시 30분에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안개로 인해 출발이 지연됐다.
강 교감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이틀 뒤인 2014년 4월 18일 오후 4시 5분께 전남 진도군 한 야산에서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강 교감은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과 시민 20여 명을 구하고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아이들을 바닷속에 두고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갑에 있던 유서엔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에 벅차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달라. 내가 수학여행을 추진했다"고 적혀 있었다.
한편 선체조사위원회는 카카오톡을 포함한 다른 메신저 기록도 복원해 침몰 당시 상황을 재구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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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5월 26일 휴대전화 2대의 데이터를 복구해 이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보고서를 공개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복구된 휴대전화에서는 출항일인 2014년 4월 15일 오후 6시 42분 "안개로 못 갈 듯"이라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전송됐다. 이어 오후 7시 2분에는 "교감을 취소 원하고"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세월호는 지난 2014년 4월 15일 오후 9시에 승객 476명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발했다. 당초 오후 6시 30분에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안개로 인해 출발이 지연됐다.
강 교감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이틀 뒤인 2014년 4월 18일 오후 4시 5분께 전남 진도군 한 야산에서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강 교감은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과 시민 20여 명을 구하고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아이들을 바닷속에 두고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갑에 있던 유서엔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에 벅차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달라. 내가 수학여행을 추진했다"고 적혀 있었다.
한편 선체조사위원회는 카카오톡을 포함한 다른 메신저 기록도 복원해 침몰 당시 상황을 재구성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