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4m’ 환풍구에 갇혀 있던 美교환학생, “왜 들어갔냐” 물으니…

celsetta@donga.com2017-05-16 14: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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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갇혀 있던 호텔 뒤편 환풍구 입구. 사진=뉴스1
“Help me(도와주세요)…”

5월 12일, 설비점검을 위해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 건물을 찾은 소독업체 직원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람 목소리에 발길을 멈췄습니다. 아주 작고 희미한 소리였지만 분명 사람 목소리였습니다. 직원은 깜짝 놀라 주변을 찾아보았고, 환풍구 안에 웬 젊은 외국인 남성이 갇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소독업체 직원이 신고해 준 덕에 가까스로 환풍구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A씨(21)는 구조되자마자 물을 다섯 병이나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사람이 갇혀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나온 호텔 관계자들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알고 보니 A씨는 10일 실종신고된 외국인 교환학생이었습니다.

16일 뉴스1 보도에 따르면 A씨가 갇혀 있던 환풍구는 가로세로 폭이 60cm*50cm에 불과하고 깊이는 4m나 되어 건강한 성인 남성이라 해도 자력으로 탈출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A씨는 9일 새벽 5시 경 친구들과 신촌 인근에서 술을 마시고 헤어진 뒤 근처를 배회하다 오전 6시 경 돌연 호텔 담을 기어올랐습니다. 높이가 2m나 되는 담벼락 위를 곡예하듯 아슬아슬하게 걸어간 A씨는 환풍구를 발견한 뒤 뚜껑을 뜯어내고 주저 없이 환풍구 안으로 몸을 날렸습니다.

술이 깬 다음에야 자기가 어디에 들어와 있는지 파악한 A씨.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평소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후미진 곳이라 듣는 이가 전혀 없었습니다. A씨는 “거기는 대체 왜 들어갔냐”고 묻는 경찰에 “저도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만 반복했습니다. 경찰관은 “술이 원수”라며 허탈하게 웃었습니다.

A씨가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던 데는 천운도 따랐습니다. 소독업체 직원이 방문하기로 한 것은 원래 5월 첫째 주였으나 12일로 점검일정이 연기된 것입니다. 만약 점검이 미뤄지지 않고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A씨의 간절한 외침을 들어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아들이 죽을 뻔 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에서 날아온 A씨 부모님, 사라진 친구 걱정에 잠 못 이루던 친구들은 일제히 달려와 A씨를 부둥켜 안았습니다. 다행히 A씨는 병원 검진 결과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으며 학교에도 평소처럼 출석했습니다.

술 때문에 어리석은 짓을 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A씨. 과음하지 말고 본인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마시는 게 현명한 주도(酒道)라는 걸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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