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벽한 검은색' 반타 블랙 독점한 예술가, 이래도 되나”

celsetta@donga.com2017-04-06 18: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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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99.96%까지 흡수하는 신물질 '반타 블랙' 도료를 칠한 조각상. 입체감이 완전히 사라져 포토샵 등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으로 칠한 것처럼 보인다. 사진=Surrey Nano Systems
‌‘검은색보다 더 검은’ 신물질 ‘반타 블랙(Vanta black)’ 독점권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머리카락 굵기의 100만분의 1수준으로 가느다란 탄소 구조체들로 이루어져 있어 빛을 99.96%까지 흡수하는 반타 블랙은 2014년 영국 서리나노시스템이 개발했습니다.

‌반타 블랙을 칠한 물건은 입체감이 사라지고 마치 블랙홀처럼 검은 공간으로 보이게 됩니다. 일반적인 검은 색 도료는 눈에 보이는 빛만 흡수하지만 반타 블랙은 적외선까지 완전히 흡수해 초현실적인 느낌을 줍니다.

반타 블랙은 과학, 군사, 우주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임새가 높다고 평가되고 있지만 예술활동 목적으로는 현재 전 세계에서 단 한 명밖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인도 출신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입니다. 카푸어는 개발사에 거액을 지불하고 반타 블랙 페인트 독점 사용 계약을 맺었습니다.



아니쉬 카푸어. 사진=artreport.com

‌물론 전 세계 예술가들과 예술 애호가들은 카푸어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특정 도료를 단 한 명이 독점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카푸어는 정당하게 계약해 상품 독점권을 얻은 것뿐이니 자기 행동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는 반타블랙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 곧 반타블랙 페인트를 사용한 조각 작품들을 선보일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스튜어트 샘플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분홍색 다운 분홍'. 사진=stuartsemple.com
이런 카푸어를 풍자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아니쉬 카푸어만 쓸 수 없는 색’을 만든 사람도 등장했습니다. 영국 예술가 스튜어트 셈플(Stuart Semple)은 ‘세상에서 가장 분홍색 다운 분홍(World’s pinkest pink)’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이 가루 도료를 50g당 3.99파운드(약 5600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셈플은 “이 도료는 전 세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단 아니쉬 카푸어 본인, 아니쉬 카푸어를 위해 일하는 사람, 아니쉬 카푸어 관계자는 절대 사용할 수 없다. 검은색을 공유하지 않는 카푸어는 이 분홍색을 쓸 자격이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예술가들은 “반타 블랙은 지금까지 없었던 검은색이다. 반타 블랙 도료를 예술에 쓴다면 상상도 못 했던 작품들이 나올 수 있다. 아니쉬 카푸어는 반타 블랙을 독점함으로써 전 세계 예술계 발전을 방해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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