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도우려다 차별당한 외국인 “한국선 남 돕지 마라”

celsetta@donga.com2017-04-04 14: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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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차에 치일 뻔 한 아이를 구하려고 고함을 질렀다가 오히려 인종차별 당한 외국인이 한국 사회에 일침을 던졌습니다.

2001년부터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콜롬비아 국적 남성 레오 멘도자(Leo Mendoza·43)씨는 지난 3월 31일 페이스북에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 보세요(A REMINDER OF FOREIGNNESS)”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16년 동안 살아 본 결과 한국 경찰이 외국인 편을 들어 줄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CNN기자 출신인 멘도자 씨는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멘도자 씨는 3월 30일 오후 부산 수영구 망미동 한 대형마트에서 아내와 쇼핑한 뒤 주차장으로 가다가 진입하는 차에 치일 위기에 처한 남자아이(5)를 발견했습니다. 아이는 위험한 줄 모르고 뛰어다니고 있었고, 아이 뒤에는 어머니로 보이는 젊은 여성과 할아버지 할머니로 보이는 남녀가 있었지만 세 어른 모두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진=레오 멘도자 씨 페이스북(@shindogsleo)
차량 운전자도 작은 아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멘도자 씨의 한국인 아내 진 씨가 크게 고함을 질렀고 멘도자 씨도 거의 동시에 멈추라고 소리쳤습니다. 운전자는 그제서야 깜짝 놀라 아이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멘도자 씨 부부가 소리쳐준 덕에 간발의 차로 사고를 면했습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멘도자 씨는 아이 어머니에게 “위험한 주차장에서 아이를 제대로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영어로 충고했습니다. 하지만 아이 할아버지(이하 A씨)는 “당신들이 뭔데 남의 집 아이 일에 간섭이냐”고 화를 내며 “개XX”라고 욕설도 퍼부었습니다.

말싸움이 시작되자 건장한 체격의 A씨는 멘도자 씨를 바닥에 넘어뜨린 뒤 몸으로 깔아뭉개며 위협했습니다. 진 씨가 증거를 남기려고 촬영하자 아이 어머니는 진 씨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가기도 했습니다. 마트 직원이 달려와 말렸지만 A씨는 계속 멘도자 씨를 모욕했습니다.

A씨와 멘도자 씨는 결국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A씨는 경찰들 앞에서도 “폴란드 놈”, “폴란드가 아니라 콜롬비아라고? 더 못한 데서 왔네, 재수 없는 콜롬비아 XX”라며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멘도자 씨는 경찰에게 “A씨가 차별 발언을 하지 못하게 제지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은 “’깜둥이’라고 한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 저런 말 정도는 별 것 아니다”라며 합의하라고 권유했습니다.

합의금을 마다하고 사과만 받은 채 귀가한 멘도자 씨는 화가 가라앉지 않아 페이스북에 자초지종을 적어 공유했습니다. 멘도자 씨가 쓴 글은 1800회 이상 공유되었으며 800여 건의 위로·공감 댓글이 달렸습니다.

사진=레오 멘도자 씨 페이스북(@shindogsleo)
멘도자 씨의 글이 SNS에서 화제가 되자 부산 경찰은 직접 사과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습니다. 멘도자 씨는 4월 3일 다시 글을 올려 “부산 연제경찰서 서장님이 직접 전화해 사과하셨다. 인종이나 국가로 사람을 차별하는 행동을 더 엄격히 단속하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믿어 보겠다. 인종차별자들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경찰이 이런 일을 그냥 넘기지 말고 강경히 대응해야 한다”며 사건이 원만하게 끝났음을 알렸습니다.

표면상으로는 잘 해결된 일처럼 보이지만 이번 사건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 문제와 시민 간 예의 부재를 단적으로 드러낸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네티즌들은 “’우리 애 기 죽이지 마라’면서 위험한 주차장에서 아이 손도 안 잡고 다니나”, “도와주려고 소리지른 건데 적반하장이다”, “언어폭력, 신체폭력에 외국인 차별까지 ‘뻔뻔함 종결자’급이다”라며 A씨를 비판하고 멘도자 씨에게 위로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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