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수의 일침 “요즘 배우들, 배역 분석 대신 성형수술만”‌

abroad@donga.com2017-03-24 15:06:47
공유하기 닫기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배우 김응수에게 있어 KBS1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는 촬영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에서 올해 처음으로 제정된 방송출연자상 1호 수상자가 됐다.

“처음에 방송출연자상을 받게 되었다고 했을 때는 1호 수상자가 된 것에 대한 부담이 컸죠. 앞으로도 이 상의 수상자로서 걸맞는 연기를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상을 수상하실 2호, 3호 배우들을 위해서라도요.”

김응수는 ‘임진왜란 1592’에서 일본의 역사적 인물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연기했다. 그는 완벽한 일본어 대사 소화 능력은 물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성격, 생각 등을 여과없이 안방에 전달했다. 큰 상과 함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의 연기인생을 빛낸 인생캐릭터가 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사람이 1592년에 임진왜란을 일으켰잖아요. 전 시청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떤 사람인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시는 그런 비극의 역사가 반복되어선 안되잖아요.

사진제공│KBS 
그가 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인물은 사실 일본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수많은 배우들이 연기해 왔다. ‘노다메 칸타빌레’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다케나카 나오토나 ‘곡성’의 쿠니무라 준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맡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연기를 위해 크게 참고한 것은 없어요. 다케나카 나오토라는 배우가 연기한 걸 본 적은 있는데 백성이었을 당시 히데요시의 성격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았어요. 인물의 됨됨이가 굉장히 작게 그려진 것 같았죠. 사실 전 지금까지 이 인물을 맡아 연기한 모든 배우들은 솔직히 모두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어 그는 작심한 듯 “그동안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 속 이순신 장군과 히데요시는 모두 가짜”라며 발언을 이어갔다. 반일감정을 부추겨 시청률을 올리고 관객들을 끌어올리기 위해 진짜 이순신 장군과 히데요시의 모습을 상품화 시켰다는 것.

사진│KBS 방송 화면 캡처 
“이순신 장군은 무인인 동시에 과거 시험에 합격한 문인(文人)입니다. 시심(詩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야기죠.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그는 ‘난중일기’라는 기록을 남기고 전사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적어놔요. 얼마나 가슴에 피눈물이 흘렀을까요. 12척의 배로 수많은 적과 맞서겠다는, 언뜻 무모해 보이는 장군의 결정을 부하들이 따른 건 이순신 장군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 사람의 인품이었죠. 그런 부분들이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는 배우들에게서 보이지 않아요. 만약 앞으로도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는 배우가 나올텐데 제발 ‘난중일기’를 한번이라도 읽고 연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이순신 장군 연기는 눈에 힘을 주고 ‘공격하라!’하고 위엄있게 외친다고 다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해요.”

김응수는 인터뷰 내내 ‘기록과 자료를 읽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두 시간이 넘었던 인터뷰에서 그는 이 부분을 수차례 지적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1592’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도 김한솔 PD를 얼마나 쪼았는지 몰라요. 역사는 뭐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이순신 장군은 어떤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물어봤어요. 그 때 이 드라마의 PD들이 자신이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그만의 해석을 풀어놓더라고요. 다른 연출자나 작가들과는 달랐어요. 사실 처음에는 또 반일감정을 부추겨서 시청률이나 올리려는 것 아닌가 걱정을 했는데 PD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 작품은 걸작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는 “왜 기록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래야 배우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연기를 할 때는 우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굳건히 서 있어야 해요. 그런데 그 믿음은 배우가 얼마나 맡은 역할에 대해 철저히 공부를 했는가를 통해서 생기는 거예요. 영화 ‘검사외전’에서 제가 국회의원 역을 맡은 적이 있어요. 그 때 전 국회는 뭐하는 곳인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국회의원 월급을 얼마인지를 다 조사했었죠. 그리고 실제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유심히 살펴봐요. 그렇게 한달만 하고 나면 걸음걸이부터가 확 달라져요. 말만 들어선 몰라요. 직접 몸으로 겪어봐야 알지.”

연기를 한다는 것이 이토록 지난하고 고된 작업이었던가. 김응수는 “금방 내가 이야기 한 것들을 요즘 배우들은 잘 하지 않는다. 비과학적이고 시간도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기 때문에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대학 다닐 때 교수님들이 어떤 배역을 맡으면 ‘이 배역이 혈액형은 무엇일 것 같으냐’, ‘색으로 표현하면 어떤 색일 것 같으냐’고 물어봐요. 그러면 그걸 다 레포트로 써서 내야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아 이 캐릭터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딱 깨달아지는 순간이 와요. 그러면 그 때 연기하는 배우가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표현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사진│‘위험한 상견례’ 스틸컷
사진│KBS
사진│영화 ‘코리아’ 스틸컷
PREVNEXT
1/3
김응수는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거침없이 호기심이라고 답했다. 대본을 받고 한 배역이 주어지면 이 배역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궁금해 하고 그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요새 젊은 배우들은 저런 작업들을 하지 않고 연기를 해요. 그럴 시간에 차라리 성형수술을 해서 보기 좋은 모습으로 가꾸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하는거죠.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또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하지 않고 그 캐릭터를 이용해 배우 자신이 더 멋져 보이고 예뻐 보이려고 해요. ‘사임당’을 보세요. 거기에서 신사임당의 모습이 보이기는 합니까?

그가 말하는 작업에서 고(故) 히스 레저가 악당 조커를 연기하기 위해 그 배역이 돼 일기장을 썼다는 이야기가 연상됐다. 김응수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건 그만큼 그 배우가 배역에 대해 엄청나게 공부를 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사전에 그 배역에 대한 공부가 되어 있지 않고는 ‘아 내가 그 배역이 되어 일기를 써봐야 겠다’는 발상까지 이어질 수가 없어요, 그래야 이른바 ‘메소드’ 연기를 할 수 있죠. 이런 과정 없이 메소드 단계로 들어가 봐야 깊이가 얕아요. 그러면 대중들도 몇 작품 보다가 금방 그 배우의 역량을 다 파악해요. 그래서 대한민국 스타들의 말로는 결국 추락일 수밖에 없는거죠.”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이런 악순환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김응수는 젊은 배우들의 자세 뿐 아니라 “잘생기고 예쁘면 봐주는 대중들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걸 상품화 시켜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상품화를 하더라도 레벨이 좀 높아야죠.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있어도 대중은 그 사람이 계속 제자리면 봐주질 않아요. 대중들에게 이전보다 더 좋은 걸 보여줘야죠. 그게 바로 연기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진짜로 해야 하는 일이에요.”

‌배우에게 있어 가장 큰 바람은 무엇일까. 그동안 많은 배우들을 인터뷰한 결과 그들의 바람은 결국 하나였다. 연기를 잘하는 것, 그리고 관객들이 자신의 연기를 안심하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배우 김응수는 앞서 “호기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이 과정을 후배 배우들이 건너 뛰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런 것들이 왜 밑의 후배들로 이어지지 않았느냐고? 그건 인터넷의 발달이 첫 번째 이유죠. 조금만 검색해 보면 다 나오니까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죠. 하지만 검색을 통해서 아는 건 겉핥기에 불과해요. 그런 정보를 가지고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해요. 다른 사람에게 묻고 대화는 나누는 과정이 꼭 필요해요. 연기란 무엇인지 혹은 그 배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말이에요. 그러면 자신이 이해할 때와 새로운 해석이나 정보가 나와요.”

사진│MBC
그렇다면 과연 ‘연기를 잘한다’는 건 무엇일까. 눈물을 잘 흘리는 것일까 아니면 화내는 연기를 할 때 신이 들려야 하는 것인가.

“간단합니다. 우선 배우가 연기라는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보는 관객이 있잖아요. 연기를 잘한다는 건 배우의 행위를 통해서 관객을 감동시키는 겁니다. 감(感)이란 느낀다는 말이고 동(動)은 움직이는 거죠. 즉, 배우의 연기를 관객이 보고 무언가를 느끼고 어떤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게 해야 해요. 그게 바로 진짜 감동이고 ‘연기를 잘하는 것’이죠. 마치 지금의 시국을 보고 어떤 것을 느껴 광화문 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나아가는 것처럼요.”

우선 전혀 간단해 보이지 않는 답이다. 말은 쉽지만 이건 누가 해도 절대 쉬운 일일수가 없다. 그럼 김응수의 관점에서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 사람이 어떤 분야를 특별하게 잘하고 싶으면 연습을 해야 해요. 그것도 정말 열심히. 그거 말고는 특별한 비결이라는 건 절대 없어요. 그런데 연습은 하지 않으면서 ‘연기를 잘하고 싶어요’라고 바라기만 하면 아무 일도 안하면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하고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

김응수는 지금의 연예계를 두고 ‘진짜보다 가짜가 더 대접받는 곳’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더 귀하고 기특한 후배들에게 “운이 터질 때까지 실력으로 버텨야 하고 그러려면 계속 연마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요새 젊은 배우들과 대사를 맞춰보면 저보다 훨씬 잘하는 배우들을 만나곤 해요. 차승원이나 김수현 같은 배우들이 그렇죠. 특히 김수현은 ‘해를 품은 달’에서 딱 한두 마디 나눠보니까 굉장히 기본기가 탄탄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게다가 인성까지 바른 친구예요. 딱 봐도 잘될 수밖에 없는 배우였어요. 그런 친구들을 볼 때마다 저도 그들과 같은 시간대를 살고 싶어져요. 그래서 계속 제 자신을 부수죠.”

그는 그렇게 자신을 파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의 ‘배우 김응수’가 됐다. 41세까지 드라마는 쳐다보지 않던 김응수는 이제 드라마 현장에서도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배우라는 직업은 결국 남을 속이는 직업이에요. 그들에게 최고의 칭찬은 ‘진짜 의사 같아’, ‘진짜 변호사 같아’ 라는 감탄이거든요. 즉 속이는 기술이 높으면 높을수록 큰 배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러려면 결국은 계속 공부하고 연습하는 수밖에 없죠. 그랬는데도 결국 밑천이 다 드러나면 그 때는 당연히 배우를 그만둬야죠.”

카톡에서 소다 채널 추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