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라서 좋은게 女강간 뉴스 들을 때?” 한영외고 소식지 논란

celsetta@donga.com2017-03-21 14: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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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서 좋을 때? 여성이 성폭행 당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난 남자니까 안심)”
“여자라서 좋을 때? 예쁘게 꾸밀 수 있을 때. 외모 가꾸기는 여자만의 특권”

2017년에 듣기에는 너무 오래 된 말 같지만, 놀랍게도 최근 한 외국어고등학교 보건소식지에 실린 글 중 일부입니다. 3월 17일 한영외국어고등학교 페이스북 익명페이지 ‘한영외고 대신 전해드립니다’에는 “이게 실화입니까”라는 말과 함께 보건소식지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사진에는 보건실 이용안내와 함께 ‘여와 남! 입장 바꿔 생각해봐요’라는 제목의 글이 적혀 있습니다. 내용 중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좋을 때
- 잘못을 해도 남자애들보다 심한 벌 안 받고 여자라고 봐줄 때
- 힘들고 무거운 것은 다 남자애들 시킬 때
- 힘든 군대 생활 안 해도 될 때
- 예쁜 외모, 옷, 긴 머리 마음껏 꾸미고 멋 부릴 수 있을 때. 남자는 할 수 없는 여자만의 특권

남자로 태어난 것이 좋을 때
- 똑 같은 일을 해도 남자가 돈을 더 받는다
- 여자보다 더 많은 직업을 택할 수 있고 주도권을 쉽게 얻을 수 있으며 출세할 확률이 높다
- 명절날 여자는 일하는데 남자는 놀고 TV 볼 때
- 여자가 강간당했다는 뉴스를 들을 때

이외에도 소식지 본문에는 ‘여자·남자로 태어난 것이 싫을 때’ 등 성별 고정관념이 담긴 내용이 이어져 있습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싫은 이유는 ‘상사에게 성희롱 당하기 쉽다’, ‘아기 낳아야 한다’등이 예시로 적혀져 있습니다. 남자로 태어난 것이 싫은 이유로는 ‘군대 가야 할 때’,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것’등이 꼽혔습니다.

이렇듯 소식지에는 적극적으로 바꿔 나가야 하는 성 역할 편견이 마치 ‘당연히 참고 살아야 하는 것들’처럼 적혀 있어 논란이 됐습니다.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한영외고 측은 20일 홈페이지에 공식 입장을 게시해 해명했습니다.

학교 측은 “많은 분들에게 불쾌감을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보건 소식’에 실린 내용은 ‘느껴봐 너의 소중함을’이라는 책에서 발췌한 것으로, 성 편견 사례를 제시하고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공감하며 양성평등을 확대해 나가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습니다. 다만 소식지 지면 문제로 자세한 설명을 실을 수 없었기에 마치 예시들이 바람직한 사고방식인 것처럼 오해를 샀다는 것입니다.

한영외고 측은 “본래 의도와는 달리 시대착오적 성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으로 읽힐 수 있는 소식지를 제작한 것은 본교의 잘못”이라고 인정하며 “(소식지를 제작한) 보건교사는 평소 양성평등을 지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상황의 원인을 제공한 점에 안타까워하며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현재 문제의 보건소식지는 회수된 상태입니다. 한영외고 측은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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