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지금까지 월경이 없다” 31세 여성의 고백

celsetta@donga.com2017-03-09 17: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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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로 태어났지만 한 번도 생리를 겪은 적이 없습니다.
올해 31세(한국 나이로 33세·1985년생)인 일본 기자 하야시 아키(林亜季)씨의 고백입니다. 아사히신문사에서 일하는 아키 씨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혀 온 ‘원발성무월경’ 때문에 고민했던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털어놓았습니다. 아키 씨의 글은 7일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에 소개됐습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생리가 없다. 원발성 무월경이라고 한다. 원래 있어야 할 것이 없지만 신기하게도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생리를 하지 않는다는 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친구들이 몸이 안 좋다며 약을 먹거나 갑자기 생리가 시작된 것 같다며 편의점으로 뛰어들어가거나 하는 걸 볼 때면 '아 힘들겠구나' 싶기는 하지만 남의 일로만 느껴졌다.

매 달마다 정기적으로 몸 상태가 나빠진다니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힘들어 토하거나 응급실에 실려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괴로움을 모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의 체육복에 피가 묻은 걸 본 적 있다. “생리야?”라고 묻자 친구는 부끄러워하며 “우우웅”이라고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집에 가서 어머니께 얘기하자 어머니는 “너도 생리를 하게 되면 팥밥을 짓자꾸나(일본에서는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팥밥을 지어 먹는 풍습이 있음)”라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내 첫 월경을 축하하며 팥밥을 짓는 일은 없었다.

중학생이 돼도 월경이 오지 않자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생리를 시작하면 힘드니까, 늦게 할 수 있다면 늦게 하는 게 좋은 거야”라고 말씀하셨지만 얼굴에는 근심이 엿보였다. 그 즈음 여동생이 생리를 시작했지만 어머니는 내가 신경 쓰이셨는지 팥밥을 짓지 않으셨다.

사춘기가 돼서 다들 2차 성징이 오고 몸매도 성숙해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계속 ‘일자 몸매’ 였다. 주변 친구들은 속속 키 성장이 멈추기 시작했지만 나는 쑥쑥 자라 168cm가 됐다.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사실은 아직까지 생리가 없어”라고 털어놓자 친구는 “괜찮아! 생리는 옮는 거라고 하잖아! 내가 옮겨주지 으하하!”라고 일부러 익살을 부리며 내게 엉덩이를 쿵쿵 부딪혔다. “뭐야 그게!”라며 같이 웃었지만 왠지 친구의 그런 반응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안심이 됐다.

대학에 들어간 뒤 도쿄에서 홀로 자취하며 부모님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고, ‘나도 언젠가 부모가 되면…’ 이라고 생각하다가 아, 나는 생리가 없지. 라고 깨달았다. 산부인과에 가서 진찰받아 보니 원발성 무월경증이라고 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여성호르몬이 부족해 자궁의 성장이 중학생 수준에서 멈춰 있다는 것이다. 배란이 없으니 당연히 임신과 출산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호르몬 저하로 인한 골다공증 등 합병증이 올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충격적이었다. 그렇구나, 난 병에 걸린 거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거구나. 결혼할 애인도 없는데 아들 딸 이름을 미리 생각해 놓을 정도였던 내게는 너무나도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이럴 거라면 난 무엇 때문에 여성으로 태어난 걸까’ 라고도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않고 밤을 너무 많이 샌 게 성(性)적인 성숙을 방해한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초등학생 때부터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라디오로 팝송 같은 걸 들으면서 ‘나의 내면세계가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에 푹 빠져 있었다. 하루가 30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잠 자는 시간이 아까웠다.

사귀자고 다가오는 남자들에게는 내가 원발성 무월경이라는 것을 알렸다.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생리를 한 적이 없어요. 만약 나와 교제하다가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고 해도 아이는 바랄 수 없을 거예요. 그래도 괜찮다면 사귑시다.”

한 ‘남자 사람 친구’가 “그럼, 생리를 안 한다면 피임도구를 안 써도 되는 거야?”라고 생각 없는 말을 했을 땐 황당했다. 피임도구는 피임 뿐만 아니라 성병 예방 목적도 있는데, 정말 무지한 남자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행히 좋은 남자를 만나 부부가 됐다. 남편도 시부모님도 내 사정을 깊이 이해해 주고 있다. 전에 한 번 남편에게 “당신이 원한다면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치료나 시험관 시술 같은 방법을 찾아 볼게. 그래도 아이가 안 생겨서 힘들다면 나랑 헤어져도 괜찮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남편은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선 “왜 그런 말을 해?”라며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사이 좋게 잘 살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내가 보통 여자들과 다른 몸을 가졌음에도 아주 긍정적인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던 건 우리 부모님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두 분 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내게 정말 큰 영향을 주신 분들이다. 부모님은 절대 “여자라면 이러이러해야 한다”, “여자니까” 같은 말을 하지 않으셨다. 여성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날 키워 주셨다.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월경이 없는 것도 그냥 나라는 사람이 가진 특수한 성질 중 하나일 뿐이다. 이렇게 가르쳐 주신 부모님 덕에 나는 당당히 살아갈 수 있게 됐다. 내가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지 늘 실감하며 산다.”

남들과 다른 증상 때문에 고민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지지 덕에 자신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아키 씨. 그녀는 “남과 다르건 같건 스스로의 몸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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