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의 틀린 영어를 고쳐주는 한국인

주간동아2017-02-20 23: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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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3대 요직 맡은 강경화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
강경화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는 2008년 새해 결심 중 하나를 ‘무엇으로도 본모습을 가리지 않겠다’로 정하고 머리 염색을 중단했다. [동아DB]
강경화 신임 총장 정책특보(62·사무차장급·사진)는 바지 정장을 즐기고 반백인 머리를 염색하지 않는다. 그런 자신만의 스타일 덕에 유엔 안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있어도 눈에 확 띈다. 한국의 한 중견 여성 외교관은 “강 특보는 남자뿐 아니라, 여자인 내가 봐도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세련된 외모, 매끄러운 업무처리 능력, 원활한 대인관계와 함께 강 특보의 가장 큰 무기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탁월한 영어실력이다. 그는 초등학생 때 KBS 아나운서 출신인 아버지(고(故) 강찬선 씨)를 따라 미국에서 3년 정도 생활하다 귀국한 덕에 학창시절 내내 ‘영어 잘하는 학생’으로 불렸다. 이화여고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매사추세츠대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 외교관이 되고 싶어 정치외교학과에 간 것으로 아는데, 왜 외무고시를 안 봤나.

“헌법 등 고시 과목이 너무 골치 아팠다. 책을 사놓고 몇 주 공부하다 집어치웠다. 그다음 ‘교수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가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고, 서울로 돌아와 보따리 장사(시간강사 생활)를 하다 국회에서 국회의장의 영어 연설문 작성과 통역을 맡게 됐다. 그러면서 ‘이왕 외교를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외교부 문을 두드렸다.”

▼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통역을 맡으면서 유명해졌다.

“당선인 시절 DJ의 통역을 몇 번 도와드린 적이 있다. 1998년 외교부에 특채된 뒤 대통령 통역과 외교부 장관 연설문을 주로 담당했다. DJ와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의 대화를 7번이나 통역했다. DJ의 말씀은 내용이 확실하고 풍부해 비교적 통역하기가 쉬웠다.”

▼ 영어실력이 유엔 진출이나 유엔 활동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줬나.

“한국 유엔대표부의 공사참사관으로 근무하던 2004년에는 유엔여성지위위원회 의장으로 회의를 진행할 일이 많았다.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는 보수정권답게 여성 낙태 등에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여성 인권 이슈 전체가 표류하기도 했다. 그래서 의장인 내가 회의장에서 그런 미묘한 부분을 상세히 설명하고 미국과 다른 국가의 견해 차이를 조율해야 했다. 당시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그런 나를 눈여겨봤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강 특보는 대학 시간강사 시절 영문법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의 까다로운 질문에 자세히 답하고, 모르면 연구하면서 영문법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는 “영어가 모국어인 유엔 직원이 써온 보고서에서 틀린 문법을 바로잡곤 했다. 반드시 ‘왜 틀렸고, 맞는 표현이 무엇인지’를 알려줬다. 그러면 아시아인인 나를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 자기 나름 터득한 영어 공부의 왕도(王道)가 있나.

“특별한 건 없다. 굳이 말하라면 수준에 맞는 영어책을 많이 읽으라는 것이다. 외국어는 아무래도 일찍 시작하는 편이 좋은 것 같다. 내 연배엔 나처럼 초등학생 시절 해외에서 생활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덕에 운이 좋았다.”

그는 지갑에서 자신이 돌 때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애틋하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참 (부모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지’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절대 크게 잘못되는 일이 없다. 사고 치다가도 사랑의 힘으로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이다.


부형권 동아일보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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