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생애 마지막 드라이브' 함께한 택시기사

celsetta@donga.com2017-01-31 16:32:23
공유하기 닫기
사진 | ⓒGettyImagesBank
젊은 시절 뉴욕에서 택시기사로 일했던 작가 켄트 네번 씨에게는 평생 잊지 못 할 소중한 추억이 있습니다. 노란색 택시를 몰고 다니며 뉴욕 시민의 발이 되어 주었던 그는 어느 날 손님의 호출을 받고 한 가정집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콜택시가 도착했다는 의미로 경적을 울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몇 번 더 빵빵 울려 봐도 여전히 집 안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곧 교대시간이 다 되어 가던 참이라 네번 씨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불러 놓고 먼저 나간 건가?’ 포기하고 그냥 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는 일단 좀 더 기다려 보기로 마음먹고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딩동 소리가 울리고 잠시 후, “잠깐만요”하고 아주 약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네번 씨는 손님이 할머니라는 걸 깨닫고 참을성 있게 기다렸습니다.

문이 열리고 아흔 살은 족히 넘으셨을 것 같은 백발의 할머니가 나왔습니다. 할머니는 작은 여행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집 안은 사람이 살던 흔적을 일부러 싹 치운 듯 황량했습니다. 네번 씨는 왠지 불안감을 느끼며 할머니의 짐을 트렁크로 옮긴 뒤 얼른 팔을 잡고 천천히 부축해 드렸습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모든 승객분들을 제 어머니처럼 대해야죠.”
“아주 친절한 분이네요.”

택시에 탄 할머니는 목적지 주소를 보여주며 “시내 한가운데를 통과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고, 네번 씨는 “그러면 빙 돌아가게 돼서 요금이 많이 나올 텐데요”라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자기는 괜찮다며, 기사님만 좋다면 빙빙 돌아가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요양원에 들어가는 길이라오. 사람들이 인생 마지막에 죽으러 가는 곳 말이지. 의사가 그러는데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준비하라네.”

그제서야 네번 씨는 할머니 등 뒤로 보인 집이 을씨년스러웠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아주 잠깐 생각한 뒤, 그는 바로 미터기를 꺼 버렸습니다.

“할머니, 어디 가 보고 싶으신 데 있으세요?”



사진 | ⓒGettyImagesBank
그렇게 네번 씨와 할머니의 드라이브가 시작됐습니다. 네번 씨는 할머니를 모시고 뉴욕 시내 곳곳을 두 시간 남짓 돌아다니며 할머니가 젊은 시절 일했던 호텔,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과 살던 집, 자주 다녔던 댄스 스튜디오 등등을 다시 한 번 구경시켜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낯익은 장소를 볼 때마다 젊었던 그 때가 생각나는 듯 소녀처럼 즐겁게 이야기하셨습니다.

한참 뉴욕 시내 구경을 한 뒤, 할머니는 “이제 피곤하네. 슬슬 목적지로 가 줘요”라고 말했습니다.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요양원에 도착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요양원에 도착해 차를 세우자 간병인과 간호사들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할머니를 휠체어로 옮겼고, 네번 씨는 트렁크에서 여행가방을 꺼냈습니다.

“요금 얼마 나왔나요?”
네번 씨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0달러입니다.”

“아이고 이 사람아, 생계는 꾸리셔야지.”
“괜찮습니다. 저 손님 많아요.”

네번 씨는 미소지으며 할머니를 꼭 안아드렸고, 할머니도 네번 씨를 마주 안아주었습니다. “이 노인네에게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 줘서 고마워요.” 네번 씨는 벅찬 가슴을 안고 할머니와 다정하게 악수한 뒤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이미 교대 시간은 훌쩍 지났지만, 그는 피로하지 않았습니다. 네번 씨는 할머니와 함께 다닌 골목 구석구석을 떠올리며 시내를 한 바퀴 더 돌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작가가 된 그는 이 날의 경험을 자기 수필집에 적었습니다.


켄트 네번 씨.

“만약 그 날 할머니가 만난 사람이 잔뜩 화 나 있는 택시기사였다면 어땠을까.

‌내가 그날따라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어서 경적을 한두 번 울려본 뒤 바로 떠났더라면 어땠을까.

‌하필 그 때 내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연로하신 할머니께 퉁명스럽게 대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이런 아름다운 경험을 하지 못했겠죠. 작은 인내심과 친절을 베풀지 못한 것 때문에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소중한 순간들을 놓쳐 왔던 것일까요.”

“감동적인 순간들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옵니다. 할머니가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셨을 때, 저는 ‘아, 내가 이 할머니의 마지막 드라이브에 함께하기 위해 지금껏 택시를 몰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임무를 해낸 적은 없었습니다.”


카톡에서 소다 채널 추가하세요